서른여섯은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이다. 선생님이란 호칭은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여섯 살의 젊은 교사가 감당하기에 가볍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마다할 수 없는 노릇이다. 십여 년 가까운 세월, 선생님소리를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노장(老將)해진다. 뒷짐 지고 걷는 걸음이 편할 때가 있고, 최소 열 살은 더 나이 많은 학부형을 상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애늙은이의 말투가 입에 밴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세계관이 형성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 초행(初行)에 나설 때의 내가 그랬다. 닥치지 않은 일을 미리 우려할 필요는 없다. 혈기방장(血氣方壯)하게,배낭을 봇짐 삼아 떠나는 젊은이들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그러나 미국 상공을 저공(低空)비행할 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풍경을 내려다보면서평소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우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레이트 플레인스(Great plains, 대평원)에 압도당했다. 야트막한 구릉(丘陵)조차 드물게 보이는 청록빛의 대평원 사이로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되풀이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田자(字) 형태의 야구장이 한 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동시에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네 면의 야구장을 한 곳으로 묶어놓은 것이,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미국에서 한 달 가까이 있으면서 절실히 느낀 것은, 지금껏 보고 들어 온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서른여섯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알게 모르게 쌓아 온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에 봉착(逢着)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컬처 쇼크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다룬 영어수업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내용도 적지 않았고.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야구장의 경우처럼, 미국을 여행하면서 규모의 크기나 양적인 한계를 미처 가늠하지 못해 충격을 받는 일이 허다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부터이어서 하는 이야기는Morgantown에서 첫 주를 보내면서 경험했던 이런저런 일들과 관련된 것이다. 선생님이 아닌 서른여섯의 자연인으로서 바라본 30여 년 전 미국 이야기는, 바야흐로 Morgantown의 첫나들이로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 연수단이 머물고 있는 기숙사 Summit Hall에서 다운타운까지 나가려면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여유만 있다면, 대학 건물 사이를 걷다가 마을로 이어지는 언덕길을 따라 트래킹하는 것이다. 자연경관을 즐기면서 연수를 받느라 부족해진 운동을 보충하는 장점이 있다. 다음은 택시를 타는 것이다. 일과 후,1분이라도 아쉬운 저녁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과 다운타운의 의과대학 사이를 잇는 prt(personal rapid transit, 개별 고속 운송 시스템)를 이용하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두 개 밖에 없었다던 prt는 운전사를 따로 두지 않는 소형 궤도 전철과 유사했는데, 지상에서 높이 솟은 곳을 달릴 때는 마치 케이블카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운타운의 상점은 대부분 노포(老舖, 대물림하는 점포)로, 도시의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실제, 상점 안으로 들어가 진열된 상품을 살펴보니 신상품들 사이로 사용한 흔적이 역력(歷歷)한 중고품이 적지 않았다. 상점 주인의 말을 빌자면, 신상품을 구입하려 할 땐 주로 다운타운 외곽에 있는 복합 쇼핑몰이나 창고형 매장인 K 마트를찾아 쇼핑을 한다고 한다. 골목마다 홈 메이드의 수제품이나 공예품, 중고 서적을 팔고 있는 서점이 한데 어울려 정겨운 골목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가나 동네 어귀의 목 좋은 곳에서 열리는 거라지 세일(garage sale)이나 플리 마켓(flea market, 벼룩시장)도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중고서점에서 추리소설 몇 권과 거라지 세일의 매물(賣物)로 나온오르골 피아노를 샀는데, 오르골 피아노는 태어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둘째를 위한 선물이었다. 태엽이 풀리면서 들리는 피아노 연주는 갓난아기의 막 열리기 시작한 귀에 청아(淸雅)한 멜로디를들려줄 게 분명했다.동행한 여자 선생님은 비즈 목걸이를, 다른 남자 선생님은 해바라기 정물화 한 점을 제각기 샀는데, 비싼 편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마치 진품(眞品)처럼 보여,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표현이 결코 허튼 말은 아니었다.
애초부터쇼핑을 겸한 다운타운 나들이의 초점은 Morgantown에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복합 쇼핑몰에 맞춰져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은 복합 쇼핑몰은 아직은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쇼핑 시스템이었다. 축구장 크기의 몇 배에 이를 듯한 대형 주차장에다 다양한 업종의 상점들이 구획(區劃)을 나누어 들어서 있어서, 쇼핑은 물론이고외식을 하거나 영화관람, 여가와 취미활동까지 가능했다. 우선, 포항의 지방 백화점 정도는압살(壓殺)할 만큼 규모가 큰 데다취급하고 있는 상품도 방대했다.
우선은, 쇼핑몰을 찾은 목적부터 충실히 따르기로 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나누어 줄 적당한 선물을 골라야 하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과 영어과에서 여비에 보태 쓰라고 적지 않은 돈을 손에 쥐어 주었기에 연수를 출발하는 순간부터 선물 고를 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쇼핑몰의 잡화점을 둘러보던 중 눈에 쏙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쓰리 세븐(777)'손톱깎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고리 달린 '트림(trim)' 손톱깎기였다. 개당1달러 50센트이니, 당시 환율로 1,500원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었다. 넉넉잡아 70개를 사도 105달러 밖에 되지 않아 부담이 크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에게 줄 선물로는,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원 플러스 원으로 고급 영양제 두 통을 샀다. 밀린 숙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나니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듯 속이 편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이미 밤이 늦어 택시를 타기로 했다. 뉴욕의 유명한 영업용 택시처럼 이곳 택시도 옐로 캡(yellow cap)이라 불렸다. 특이한 점은 운전석이 철망이나 강화유리로 보호되어 있고, 그 사이로 난 구멍을 통해서 택시비를 내거나 거스름돈을 돌려받는 식이었다. 일행을 네 명씩 나누다 보니, 우리가 탄 택시는 나를 포함해 두 명만 타게 되었는데 기숙사로 가는 길에 현지인이 합승(合乘)하게 되었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청년으로, 알고 보니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다. 시내에서 파트타임을 하고 귀가하는 길이었는데, 파트타임을 하는 목적이 자신의 힘으로 중고차를 사기 위해서란다. 장래희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공사 현장에서 2, 3년 경험을 쌓은 후에 토목과 관련된 학과로 진학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실무분야의 커리어를 쌓아 이를 토대로 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목적인 것이다. 미국 청소년의 자립심과 함께대학전형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날 저녁, 기숙사의 발코니에는 미리 온 진객(珍客)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사이,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대학의 카페촌으로 밤마실을 다니던 중 bar에서 연주를 하는 밴드 멤버들과 안면을 트게 되었다. 대학 주변의 생맥주 한 잔 가격은 1달러에 지나지 않아 무더운 여름밤을 식히는 데는 bar의 생맥주가 제격이었고, 결국 단골 bar의 밴드 멤버들과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된 것이었다. 그저께 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기숙사로 놀러 오라 농담 삼아 던진 말에 덥석 미끼를 물었던 것이다.
아무튼, 한국에서 갖고 온 소주 팩과, 밑반찬으로 준비해 둔 고추장, 멸치와 김이 기본 안주로 깔렸다. 밴드 멤버들도 나름 준비해 온 캔맥주와 스낵 등 안줏거리로 상차림을 하니 제법 넉넉한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여기에, 이들의 공연을 쫓아다니는 그루피(groupie, 록밴드의 열성 여자 팬)도 함께 했는데, 밴드 멤버들에 비해 나이가 한참 어려 보였다. 10여 명이 술자리를 함께 하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말이 잘 통하는 사람 서너 명씩 그룹으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내가 함께 한 그룹에는 밴드 리더와 그의 여자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화가 한참 무르익어 가던 중 그루피 가운데 한 여자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쪽으로 삿대질하며 뭐라 지껄이는데 속사포 같은 말투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로 인해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일순, 냉랭한 분위기가 장내에 감돌았다. 간간이 귀에 걸리는 말이,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신을 두고 성적 희롱(sexual harassment)을 했다는 것이다. 팽팽하던 긴장을 가라앉히고 서로의 말을 조분 조분 따져보니, 우리 연수단 가운데서 쉰을 바라보는 선생님 한 분이 금발의 여자 아이(blondie)를 보고, "Hey, blondie. Youare so beautiful!"이라 말을 건넸다 한다. 그런데, 'blondie'와 'beautiful'이란 표현은 지금 같은 사적(private)인 자리에서 어린 '금발(blondie)'여자 아이에게 용납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이 든 사람이 '아름다운(beautiful)'이란 말로 미모를 칭찬하면, 성관계를 암시하는 말로여겨져성희롱과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Yor are so cute!"라 했으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갈 일이, 큰 싸움으로 번질 만큼 심각한 해프닝이 되고 말았다. 오해가 풀렸기에 망정이지, 미국까지 와서 망신살이 뻗칠 수도 있을만큼 위기의 순간이었다.
'777' 손톱깎기란 말이 이왕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 한 때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쓰리 세븐(777)' 손톱깎기는 이런저런 사유로 적자를 견디지 못해 인수합병(M&A)의 매물로 나오는 등 강소기업(強小企業)의 영광에 종말(終末)을 맞았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로, 컬처 쇼크에 버금갈 일이다. 왕년의 '쓰리 세븐(777)' 손톱깎기는 '777'이란 상표로 보잉사와 미국 내 공동 사용권을 가질 정도로 그 위세(威勢)가 대단했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날의 영화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777'은 우리나라에서 '은밀함'으로 통용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777 사령부'라고 말할 때의 '777'을 가리키는 것으로, 예하 부대에 근무하긴 했어도 내가 한때 복무했던 부대이름이었다. 통신 감청을 통해 북한을 비롯해 대외 첩보를 수집하며, 보안을 극도로 중시하는 군 정보기관 특성상은밀함이 생명인데, 공교롭게도 '777'을 기관의 공식 별칭으로 삼고 있다. 요즘, '777부대'의 사령관이 특정고의 인맥(人脈)에 따른 정실인사(情實人事)라 해서 국민들에게 가벼운 충격과 함께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젊은 날, 미국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컬처 쇼크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수롭지도 않은 일일 수도 있다. 미국이란 나라를 직접 가보진 못해도,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가상(假像)이긴 하지만 실시간 탐방이 가능해진 것이다. 드론을 띄워, 인간의 눈으론 확인할 수 없는 대자연 구석구석을 찾아 매의 눈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복합 쇼핑몰이나 대형 마트를 웬만한 중소 도시나 읍 단위 마을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고, 통신을 이용한 중고물품 거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컬처 쇼크 운운하며 떠들어 대는 것은 나이 어린 세대들 보기에는 그저 시답잖은 일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30여 년 전의 나처럼 노장해 보일 때가 많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가상공간을 통해 우리들 세대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쓰리 세븐(777)' 손톱깎기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고 쓴 맛을 봐야 진정한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험의 가치야 말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다.'777 사령부'의 '777'이 아무리은밀함을 상징한다 하더라도 세상에 알려야 할 내용이 있다면 거칠 것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명분이 서고 충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밀실인사, 밀실행정의 폐해(弊害)가 나중에라도 밝혀지게 되면, 연후의 충격이컬처 쇼크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란 말이 있다. 나 역시 젊은 시절, 마국 여행을 통해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이처럼 두서없는 생각이라도 거침없이 옮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오르골 피아노의 청명(淸明)한 멜로디처럼 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는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