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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May 08. 2022

물가(物價), 너 마저도

늦은 아침을 먹게 되었다. 그 사이를 잠시 기다리지 못해 커피를 사려고 아파트 상가로 내려간다. 가는 걸음에 심부름으로 삼겹살과 양파를 사 와야 했으므로 미리 장바구니를 챙겼다. 한 해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지금 내 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삼겹살을 이만 원어치를 달라고 했는데 저울 위에 놓인 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다. 조금 더 살까 하고 고민하다 슬쩍 아랫배를 스캔해 보고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대여섯 개의 고만고만한 양파가 들어있는 양파 한 망의 가격표에는 원이 약간 넘는 금액이 찍혀 있다. 일일이 손으로 꾹꾹 눌러보고는 단단한 놈만 들어있는 것으로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다음은 우유인데, 1,000ml 우유 한 팩의 가격이 양파 한 망의 가격과 비슷하다. 같은 회사 제품을 원 플러스 원으로 묶어 파는 것도 있, 낱개로 살 때보다는 합산한 가격이 팔백 원가량 더 저렴했다. 잠시 망설이다, 지난번에도 묶음으로 샀다가 유효 기간이 넘어설 때까지도 마저 마시지 못해 아깝게 버린 우유 생각 나서, 진열된 들 가운데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날짜 좋은  팩만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대에서 보너스 점수까지 알뜰히 적립후에, 건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향한다. 가볍게 눈인사 주문하려는데, 주인 아가씨가 먼저 아는 체를 하며 말을 걸어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원액에다 얼음만 넣는 거지예? 몇 잔 드리면 될 까예?"


사실, 조금 전 마트에서 미리 우유를  이유가 지금 주문하는 커피로 아이스 라테만들어 마시기 위해서이다. 집에 가서 우유와 섞으면 한 잔 당 천 원을 아낄 수 있으니 두 잔이면 천 원, 주문할 때 약간 쪽팔리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가성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주문해 간 커피로 각자의 입맛에 맞도록 물을 타서 마실 것이라 짐작하고, 톨 사이즈컵에다 얼음이 넘치도록 조심조심 고 있는 주인 아가씨의 마음씨가 고맙기만 하다. 더욱이 일곱 잔 주문할 때마다 한 잔의 무료 쿠폰 적립되고, 스타벅스나 심지어는 맥도널드조차 이미 커피값을 인상했는데 이곳은 여전히 현재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 주니 기분 인지는 몰라도 커피맛이 한층 더 좋은 듯하다.


장바구니와 커피를 양손에 나눠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난 주말 들렀던 단골 물횟집이 문득 생각났다. 물회 맛집으로 널리 알려진 이곳은 일반 물회의 가격이 만 삼천 원으로 다른  보다 천 원에서 천 원가량 저렴해서, 주말이면 어느 정도의 웨이팅까지 감수해야 하는 곳이다. 물미역 무침을 비롯한 밑반찬에다 홍합과 멍게까지 으로 함께 나오고, 당연히 끓여주는 매운탕에다 식사 중에 추가 반찬을 여러 번 해도 싫어하는 기색조차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 집 물회 가격이 올랐다. 그것도 물경 이원씩이나 인상되어 만 오천 원이라니. 기분 나쁘다기보다는 뭔가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고 만 것 같은, 진한 아쉬움과 함께 섭섭하기까지 한 생각이 불쑥 솟구치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셰익스피어의 희곡 '쥴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를 공부할 때, 루투스(Brutus)의 마지막 칼에 찔려 죽음을 목전에 둔 시저가 최후로 부르짖은 말인 '루투스  마저도?'란 인상적인 대사(臺詞)가 불현듯 머릿속 파고든다. 감히, '죽전 횟집, 너 마저도!'


아들처럼 아꼈던 브루투스대한 배신감에 함께, 숨 막힐 듯한 야속함이 절절하게 묻어나시저의 대사 속 심정은, 주어진 상황만 약간 다를지언정 지금의 내 마음속 심정과 다름없는 것은 아닐까? 금세 어처구니없는 연상(聯想)이란 생각이 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다만, 서로 믿음을 주고받아 온 상대방에 대한 신뢰일방적으로 깨어지면, 그 정도만 다를 뿐 깊은 상처가 되어 지속적인 아픔으로 남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이리라.


결국 모든 생각이 물가로 귀결되고 다. 그날, 오고 가면서 보았던 알뜰 주유소의 리터 당 가격이 천구백 원을 훌쩍 넘어서 있고, 내가 즐겨 먹는 세 개짜리 묶음 보리 건빵이 천 원에서 천 이백 원으로 올랐으며, 컵 라면의 개당 가격도 대부분 천 오백 원을 넘어선 데다 소주나 맥주와 같은 일반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주류의 가격은 이미 올라도 너무 올랐다.


'그래, 이것은 결국 내가 장바구니를 들면서부터 알게 된 일들이야.' 한편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면서도, 오늘내일 다르게 치솟고 있는 물가만 떠올리왠지 삶이 고달파지면서, 무거워진 장바구니만큼 내딛는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도 덩달아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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