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진 Jun 07. 2022

메모하는 습관을 갖자

영어공부 잘하기 3

선생님 수업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영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과목을 공부할 때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전 글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 바가 있다. 그런데, 수업을 귀담아듣다 보면 선생님이 어떤 개념을 설명하고자 할 때 늘 반복하는 패턴이 있다. 영어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생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문법을 공부할 때, 선생님이 개념 설명과 함께 제시하는 예문의 형태로 나타나기가 쉽다.


사실, 영어 교과서를 살펴보면 문법을 학습하는 단원에는 의례히 Pattern Drills이라 해서, 본문(Main Text)에 나오는 중요한 문법적인 패턴이나 관용적인 어구를 학생들이 반복해서 연습하도록 꾸며놓고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선생님이 수업 중에 되풀이해서 설명해 주는 문법 예문인데, 교과서의 Pattern Drills가 미리 계획된 학습목표에 따라 해당 단원에서만 제시된 pattern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도록 꾸며져 있다면, 이에 비해 선생님이 설명을 위해 보여주는 예문은, 달리 학습해야 할 문법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학생들이 성가셔하는 어휘 학습을 할 때도 선생님의 수업을 귀담아듣는 것이 매우 효율적이다. 영어든 우리말이든, 결국 언어란 것은 '말'과 '글'을 이르는 것으로, 중요한 어휘란 말과 글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것을 일컫는다. 특히, '나'를 중심으로 해서 물리적이나 심리적으로 방사(放射)되어 확장되는 어휘들과 인간의 '생로병사 희로애락(生老病死 喜怒哀樂)'과 관계되는 말들은 일상적인 말과 글에서 사용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어휘들이야 말로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학습해 두어야 할  중요 어휘인 것이다.


그런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도 있듯이, 중요한 것을 이해하고 머릿속에 저장하는 과정이 순조롭지 않다면 결국 제대로 된 학습이 이루어지기가 힘들어진다. 바로 여기에 메모의 중요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언어적 소양을 타고 난 학생과 노력으로 부족한 재능을 메꿔나가는 학생이다. 언어적 소양을 타고 난 학생은 영어를 공부를 시작할 때 제대로 된 학습 방법과 매칭(matching)이 되면 가르치는 쪽이나 배우는 쪽 모두 영어를 공부함에 어려움이 없다. 잘 듣고 쉽게 말을 하며, 단어를 외는데도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타고난 언어적 재능이나 소양에만 기대고 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보통 중 3에 이르러 발전이 한계를 보고, 그 언저리에서 재능도 소멸이 되고 만다.


이와는 달리,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메꿔온 학생은 발전 속도는 더디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꾸준히 실력이 향상되는 추세를 보인다. 처음에는 단어나 표현을 익히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무턱대고 머리로 외우려고만 덤벼서 그런데, 요령이 쌓이면서 학습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된. 그러나 노력 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한계란 것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이 역시 특별한 변화나 학습 방법의 개선이 없으면, 중 3 언저리에서 그만 발전이 정체되어 버린다.


대체로, 학생들은 이 두 가지 양상의 어느 한쪽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고등학교 시절을 맞이한다. 그리고 스스로 손에서 책을 떼지 않는 한, 나름 최선을 다 해 노력하고 있노라 자위한다. 하지만, 어느 한순간 주변으로 눈을 돌려보니 여러분보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몇 발짝이나 앞서 달려가고 있는 친구들이 보인다. 아니, 저 녀석, 소싯적에 내 발아래서 놀던 놈이 아니야?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끼며, 자신감이 맨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만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 쪽인가? 발전이 정체되어 경계의 아래쪽을 여전히 헤매고 있가, 아니면 이미 그 너머에서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영어를 지도하면서 너무나 안타까울 때가 있었다. 학기마다 한 번씩 치르는 영어 듣기 평가를 치르고 나서인데, 예전보다 문제를 구성하는 담화(dialogue)의 수준이 월등하게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학년의 평균 성적이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올 때 특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개의 문제 가운데 15개 가까이를 정답으로 맞추곤 했으니 백분위 점수로는 75점가량이다. 또한, 수업시간에 reading을 시켜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발음이나 문장을 읽는 리듬감은 오히려 가르치는 쪽이 부끄러울 정도로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났다. 그런데도 현실은, 교실마다 재능 있는 영포자로 넘쳐나고, 수업 중에는 영어에 등 돌린 아이들을 돌아가며 깨우느라 진이 다 빠져버린다.


어느 날, 1학년 수업 중에 반을 돌아가며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수학습으로 영어를 시작한 학령(學齡)과 파닉스(phonics, 발음 중심 어학교수법)를 배운 경험이 있는 지의 여부를 물은 것인데, 요즘은 영어의 시작이 파닉스를 위주로 영어유치원이나 어린이집부터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하니 사실은 한 묶음의 질문으로 봐도 무방했다. 이 질문에 대부분 학생들이 주저 없이 손을 들어 수긍하면서,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에 이를 때까지 과외나 보습학원을 통해 영어공부만큼은 끊임이 없었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 이런 재능 있는 영어 영재들을 줄곧 영포자의 나락으로 내몰고 있었다니.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학생들에게 학습 부담을 주는 것은 금물이다. 이들은 중학교까지 줄곧 외우는 일로 뼛속까지 지쳐있는 학생들이다. 목적 없이 단어를 외고, 영문도 모른 채 교과서의 문장을 달달 외우기만 해 왔다. 스스로 깨우치며 하는 학습의 효율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인 것이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보니, 교과서의 본문은 예전처럼 깡그리 외우면 되니까 그래도 만만해 보이는데, 부교재나 모의고사에서 만나는 범위 밖 영어 지문은 통째로 외울 만한 력이 되지도 않고 시간도 없다. 더욱이, 수행평가로 치르는 서술형 주관식은 보습학원에서 내어주는 예상문제지를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더라도 10개의 문제 가운데 단 한 문제조차 풀어내기가 버겁다. 왜냐고? 공부해야 할 분량이 그토록 많은 예상문제지 이건만 도무지 똑같은 문제를 찾으래야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다시 말해,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은 학생들에게 영어에 대한 부담과 염증만 부추길 인 것이다.


C는 포항에서 평준화가 시작된 초창기의 학생이다. 명문 사립고 학교의 평판을 믿고 입학한 학생인데, 일반 반에서는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이었다. 3, 4등급을 오르락내리락하긴 했는데,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과외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었지만 재능이나 기울인 노력에 비해 성적은 제대로 나오진 않았고, 뭔가 보이지 않는 벽에 단단히 가로막힌 모습이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가 나온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오후, C가 교무실로 상담을 받으러 왔다. 사전에 약속을 해두었기에, 당시 자신이 공부하고 있던 영어 관련 교재 일체를 가져왔는데, 과연 미리 짐작하던 그대로였다. 우선, 어휘와 관련된 교재는 2학년 교과서나 부교재의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는데 1학년 때부터 지속적으로 공부해 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이사이에 끼워 둔 평가 문제는 주로 난도가 높은 어휘를 묻는 문제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문법은 원서로 된 교재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이 책을 공부하고 있는지, 차마 그 자리에서 C에게 묻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주로 교과서 영어 지문 속 문법 내용을 평이하게 묻는 직전의 서술형 수행평가에서 빵점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읽기 교재 역시, 당시의 상위 1% 학생들만  난도 높은 독해 관련 교재를 공부하고 있었는데, 아마 수업을 따라가기조차 전전긍긍할게 분명했다.


모든 교재를 덮고 난 후, 사흘 후에 다시 한번 찾아오란 말을 하고 C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가져온 교재의 내용 가운데서, 교과서 수준의 어휘 따로 추출해 단어 테스트 문제지를 만들고, 문법 책에서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 다룬 교과서 지문  예문들로 문법 문제를 재구성했다. 독해 교재에서는 고 2 교과서 어휘 범주 내의 쉬운 지문 네댓 개를 골라 수능형 문제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다음 날 교재를 돌려주면서, 이틀 후에 테스트를 해 볼 테니 철저히 준비하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결과는? 학교 정기고사나 모의고사와 비슷한 득점 양상을 보였다. 학습하는 방향과 방법이 애초부터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영어 듣기는 원래 나무랄 데가 없었다. 2학년 들어 진행 2개월 간의 수업을 복기해 보았는데 C의 수업태도는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었다. 이번엔 학교의 수업용 교재를 가져오게 해서 점검을 해 보았다. 교과서나 부교재가 금방 받은 새책이나 거의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시종 정신을 다른 데 팔면서 학습 내용을 듣는 족족 이쪽 귀에서 저쪽 귀로 흘려보냈던 것이다. 당장, 수업 중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이나 어휘들은 일일이 별도의 노트에 정리해서 앞으로 수업이 끝날 때마다 점검받으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우선은, 수업 시간에 한 눈 팔지 않고 집중해서 들을 수 있도록 수업 태도부터 제대로 가다듬게 할 요량이었다.


2주 간격으로, 학습한 결과까지 점검했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교과서 어휘들이나, 심지어 중학교 때 익혀두었던 기초 어휘들조차 제대로 외우고 있못함알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아울러 문법이란, 쉽고 활용도가 높은 어휘들의 문장 속 쓰임새와 다름 아니란 사실을 수업 중에 구문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그제야 훨훨 벗어던진 듯 상담을 받는 내내 C의 표정이 그지없이 밝아 보였다.


C는 한참이 지난 후에 또 이런 말도 했다. 최초의 상담이 있은 5월부터, 수업 중에 집중해서 들으면서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려 노력했다는데, 12월 기말시험을 앞두고부터는 수업 중에 전개될 내용이 어느 정도는 미리 그려지더란다. 무엇보다도 그때부터는 수업한 내용을 삼분의 이 이상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수업을 들으면서 틈틈이 메모한 내용을 바탕으로 서술형 문제를 재구성해 보았는데, 거의 다 시험 문제 반영되더란 것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실은, 시험 문제 출제만한 내용은 수업 중 몇 번이고 반복해서 밑줄을 긋게 거나 별표로 강조해 미리 일러주었던 내용이란 이다.


C는 이듬해 서울의 이름과 같은 대학의 영문과로 진학을 했다. 그해 5월인가 전화를 하던 중에, 처음 본 토익시험에서 900점 이상의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고등학교 수업 중에 틈틈이 시험을 본 어휘 실력 만으로도 고득점을 받는데  어려움었다고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덧붙여, 수업 중에 메모를 하거나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몰라보게 향상되어, 정신없이 바쁜 대학생활 중에도 전공기초나 교양과정을 공부할 때 무척 도움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결국, 메모하는 습관은 공부에 대한 자기 암시이며, 학습의지가 표면적으로 발화된 것이다. 귀담아듣는 행위가 메모로 이어지고, 머릿속 생각이 충만해지면 여러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꾸준히 샘솟게 된다. 영어로 국한해서 말하자면 메모는 수업 중에 전해 듣는 학습내용을, 이해한 중요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행위를 말하므로, 항상 학습 행위가 자기 주도적으로 이루어진다. 사고력과 인지력은 끊임없이 선순환되기에 메모를 통해 되풀이해서 학습된 내용은 지속력이 을 수밖에 없고, 한번 이해한 내용은 머릿속을 쉽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여러분의 영어 실력은 펜 끝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4부 '그래도 문법은 중요하다'로 이어집니다.



이전 02화 선생님 수업에 귀 기울이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