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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09. 2022

그래도 문법은 중요하다

영어공부 잘하기 4

며칠 상가(喪家)에서의 일이다. 대구공고 화공과를 졸업하고, 화학 관련 대기업에서 정년(停年)을 한 집안 아재가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골 중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자신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어 알파벳도 모르더란 것이다. 사실, 아재보다 여덟 살 아래인 나도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대소문자를 구별하여 쓸 수 있을 정도였고, 영어수업 시간에 한 달 가까이 펜습자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필기체까지 마저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위로 형이 있는 친구들은 기본적인 문법이나 어휘를 어느 정도 미리 공부하고 나서 중학교로 진학을 한 듯 보였다. 알파벳송을 부르면서 글자를 소리로 익히고, 펜습자를 통해 낱낱의 문자와 낯이 익어갈 무렵엔 어설프긴 해도 문장을 야무지게 읽는 친구들도 속속 생겨났다. 하지만, 한글조차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한 교실에서 영어는 여전히 함부로 덤벼들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이선배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모두 와~ 하고 웃어버린 영어 선생님은 처음부터 웃음기를 거둔 얼굴로 교실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닦달했는데, 알파벳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학생들에게 영어수업 시간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어떨 때는 삼십 센티 쇠자를 모로 세워 손등을 때리는 일도 있었는데, 어떤 아이는 아픔을 참지 못해 손을 빼다 그만 손톱이 맞아 손톱이 까맣게 죽어가는 일도 있었다.


친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마음에 야속한 마음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글자를 익히지 못하면 한 발짝도 앞으로 뗄 수 없는 것이 남의 나라 공부인지라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알파벳을 그럭저럭 익히고 나니, 아이 엠, 유 알 어쩌고 저쩌고 받아 적도록 하고, 아이 마이 미 마인 등 도무지 영문도 모르는 말과 함께 무조건 외우도록 만들었다. 이쯤 가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놓아둔 덫에 한 번쯤 걸리고 마는데, 나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 앞에 느닷없이 불러 세워 외우도록 했는데, 수십 번 미리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얼토당토않게 처음부터 더듬어대고 말았다. 생손톱이 빠질 만큼 아린 고통도 참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친구들 앞에서 처음 맛 본 좌절감은 이후로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공부를 성가셔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고 있는데, 단어 외우기와 문법공부이다. 단어는 외워도 외워도 도무지 끝이 없고, 문법은 우리말 설명으로 읽으면 그래도 이해할 만 한데 같은 내용을 영어 문장 속에서 물으면 그야말로 난해하기가 그지없다. 노력이든 시간이든 영어 공부의 대부분을 여기다 쏟아붓고 있는데, 어느 쪽으로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결국,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까지도 처음 시작할 무렵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채,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영어는 그럭저럭 하는 통상적인 과목 가운데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그래서, 난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늘 당부해 는 말이 있다. '나는 여러분을 전혀 모른다.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어느 중학교에서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았는지 아무것도 이는  없다. 하지만, 누구든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 알고 기초부터 시작하겠다'라는 말로 첫 수업의 시작을 알리며, 한 가지 단서를 덧붙인다. 바로,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다. 3개월만 나에게 귀를 빌려주면, 다른 것은 몰라도 영어 문법의 기초는 확실히 잡아주겠다'라는 말이었.


사실, 수학능력시험의 영어영역에서 출제되는 문법은 한 문제에 불과하다. 하지만, 학교의 정기고사 시험문제는 대부분 수능 형식으로 출제를 하기는 하지만, 전체 문항에서 문법을 묻는 문제 수가 많아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은 데다, 난도 높은 주관식이나 서술형 문제로도 흔히 출제될 수 있기에 상위 등급을 노리는 학생이라면 평소 문법 공부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수능의 영어영역과는 달리 학교 시험은 범위가 명확하고 제한적이어서 준비만 제대로 하면 누구든 좋은 성적을 올릴 수가 있고, 이것이 바로 올바른 수업 태도가 전제되어야 할 명백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법 공부를 이미 포기했거나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레 두려움부터 갖게 되는 이유는, 사실 아이들이 너무 이른 시기부터 문법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의 어린 학생에게 가주어나 진주어 운운하며 부정사와 동명사의 명사적 기능을 설명한다고 가정해 보라. 비인칭 독립 분사구문이란 용어는 또 어떤가? 지나친 비유이긴 해도, 버젓이 이런 내용이 실려 있는 영어교재를 무거운 책가방에 넣고 이웃집 아이들이 영어전문 학원으로 오가는 것을 보고 기막혀 적이 있었다. 앞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무려 7, 8년간을 이런 무시무시한 문법 용어들과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결국, 제풀에 지친 나머지 정작 힘을 내야 할 순간에 이르러선 상처 투성이의 험한 꼴만 보이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은 초등학생이 처한 입장과전혀 다르다. 우선 문법 용어의 우리말 뜻을 낱낱이 이해하기가 훨씬 손쉽는 것이다. 고등학생 정도인지력이면, 주어가 문장의 중심어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보어란 도와서 설명하는 말임을 알며, 문장 속 부사나 형용사의 품사적인 기능에 대해서도 곧잘 알아듣는다. 특히, 문법을 설명할 때는 적절한 예문을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시험 문제로 출제되는 교과서의 본문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내어 문법 예문으로 적극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실제로 3개월의 기간이면, 교과서 본문을 통해 영문법에서 다뤄지는 모든  문법적 요소들을 기초부터 시작해서 비교적 까다로운 영역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반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누구든 처음 시작할 때 힘들어서 그렇지, 올바른 수업 태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리 낯설고 까다로운 개념일지라도 반복 학습을 통해 손쉽게 이해할 수 있게 는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문법 공부를 하겠다며 문법 전문서에만 매달리다 이내 포기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아왔다. 말하자면 피땀 흘려 공부한 결과가 문법 따로 영어 따로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귀차니즘에 빠져 평소 등한시했던 영어 수업에 차츰 재미를 붙이거나 이에 몰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영어 실력 자체에 큰 변화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여러 번 목격했다. 동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책임을 지고 지도한 경우가 교사 경력의 대부분이었으므로, 개별 학생의 학습 방식이나 수업 태도를 장기적으로 관찰하는 것에는 누구보다도 장점이 있었다. 결국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무리 늦었다 하더라도 문법을 차근차근 익혀가며 영어공부를 한 학생이 지름길만 쫒는 학생들보다 오히려 학습 발전 속도가 더욱 빠르고 보다 효율적이란 사실이다.


어법이란 말과 글에 내재된 규칙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을 말하니, 이를 기반으로 영어를 공부하면 논리적인 언어 학습이 가능해지고, 나중에 장문의 난도 높은 영어 지문을 읽을 때도 우리말로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진다. 최근, 수능의 영어영역은 절대평가이긴 하나, EBS 교재와의 연계성이 줄고 글의 난도는 몰라보게 높아져서, 10점 단위로 끊는 등급이 상대평가를 하는 다른 과목의 등급 퍼센티지와 거의 맞먹을 만큼 문제가 어렵게 출제되고 있는 형국이다. 말하자면, 90점까지 영어 1등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과목의 상대평가 1등급인 4% 가까이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문법을 소홀히 한 결과, 3점짜리 문법 문제는 의도치 않게  킬러 문제로 낙인찍혀 해마다 수능에서 영어의 최상위 등급을 가늠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아무리 성가시더라도 문법은 때맞춰 공부를 해 두어야 한다.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고는 하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을 직접 지도한 경험에서 일러두자면 고등학교 시절이 문법을 가장 잘 이해해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최적기(最適期)라는 사실이다. 현재의 실력으로도 결코 늦지 않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 중의 선생님 말씀부터 귀담아 들어라. 오늘은 언뜻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일 이어서 듣게  마찬가지 내용의 수업 어느 한순간 네 귀 속을 마구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바탕 혼란스러움이 가시고 나, 어느새 다음으로 선생님이 수업할 내용이 머릿속에 잔잔히 그려질 것이다. 비로소, 여러 갈래의 길이 낱낱이 보이면서 여러분이 앞으로 내디뎌야 할 방향이 보다 선연해진다. 그러면  것이다.


제자들 가운데는 아이비리그와 같은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이가 더러 있다.  유학 중 가장 힘든 일이야 당연히 영어를 익히는 일이였겠지만, 난생처음으로 가 본 미국 땅에서 오히려 처음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던 일 또한 영어를 극복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국내에서 이미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후였으니, 영어문법과 어휘력의 기초가 탄탄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이를 바탕으로 학업에 골몰하여 단기 어학연수를 따로 밟지 않고도 2년 만에 석사 학위를 거뜬히 취득했다 하니, 영어로 공부한 전공(專攻) 분야의 지적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지닌 바 영어 실력 자체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 뛰어난 것이다.


나중에, 모교에서 후배들을 앞에 두고 한 충고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먹지 않은 말이 있는데, 바로 고등학교 시절 영문법 공부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앞으로, 수도 없이 치러야 할 각종 영어시험이나 자격시험을 순조롭게 대처하는 첫 번째 조건이 우월한 어법 실력을 갖추는 것이고, 이를 가장 손쉽고도 탄탄하게 기를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이 다름 아닌 학교에서 이뤄지는 영어 수업이라고 단정지었다.


물론, 문법 실력이 그저 수업을 귀담아듣는다고 해서 저절로 쌓이는 것은 아니다. 본인의 피나는 노력과 끈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학교와 선생님과 가정에서 영어 학습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절한 동기 유발이나 칭찬, 보상이 계속해서 유기적으로 잇따라야 한다. 성적과 같은 눈앞의 결과만 보고 질책을 일삼는다면, 이미 힘들어 기가 죽어 있는 아이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더 지게 만든 꼴이 되어, 결국 중도에서 그만 아이를 주저앉히 말 것이다.


어휘가 한 톨 한 톨의 쌀이라면, 어법 실력은 한 움큼씩 모인 쌀을 물에 불려 밥으로 익게 만드는 불의 온기와도 같은 것이다. 한 곳으로 모아 완성되도록 만드는 힘! 그래서 문법은 영어 공부에 있어 그 어떤 것 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5부 '어휘는 한 톨의 쌀이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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