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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15. 2022

어휘는 쌀이다

영어공부 잘하기 5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효율을 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획을 세워야 하고,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영어공부도 마찬가지이다.


1학년 학생들이 입학을 하고 나서, 영어수업의 첫 시간을 진행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렌다. 잠시, 마음속 여러 가지 궁금증을 속으로 다스리며 간단한 테스트를 하는데, 내용은 교과서 1과의 어휘와 기본 문법 테스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어휘 테스트는 제시된 영어단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연습과 우리말을 영어 단어로 적는 문제로 구성이 되어 있고, 문법 테스트는 단원 전체에 걸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문법 영역을 주, 객관식 형태의 문제로 제시하는데, 둘 다 학생들이 학습한 수준이나 정도를 미리 파악해 보는데 목적이 있다.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은 대체로 세 갈래이다. 거침없이 답안지를 채우는 학생과, 어느 정도 시간이 들더라도 답안지를 끝까지 메꿔보려고 애를 쓰는 학생, 그리고 전혀 관심조차 없는 학생이다. 대체로, 작성된 답안지의 패턴은 앞으로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보일 답안 작성자의 수업태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이 같은 답안지 작성의 패턴이 향후 성적과 같은 학습 결과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별한 변화의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 한, 지금까지 유지해 온 학습 행태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선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의도한 만큼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다.


결국은 학습의 효율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여기선 어휘와 관련한 내용만으로 좁혀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먼저, 답안을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학생을 실제 시험 본 결과로 분류하면 영어를 썩 잘하는 학생과 실력이 그저 그런 학생으로 나눌 수 있다. 이유는, 단어를 처음 외울 때 그 단어가 영어 문장 속에서 갖는 문맥상의 의미나 문법적인 역할까지 수렴해서 학습하느냐, 아니면 맹목적으로 단순히 우리말 뜻만 외우고 마느냐에서 오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방학이 끝나고 나서 검사받아야 할 일기를 개학을 불과 하루 이틀 앞두고 몰아 쓴 기억이 누구에게든 있을 것이다. 내용의 내실이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날짜에 맞춰 써도 된다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인데, 이는 일기의 본질과는 사실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처럼 어 외우기도 몰아서 하려고 드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학생들이 있다. 이렇게 외운 단어들은 외운 속도나 단어의 수에 비례해서 시간이 지나면 이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차라리 단원별로 제시된 단어를 제때 외우거나, 이마저 귀찮거나 힘이 든다면 수업 시간 중이라도 선생님 말에 귀 기울여 보도록 하자. 언어란 말과 글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니, 문자로 외는 것이 힘들다면 반복해 들어서 익힐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릴 적 모국어를 익힐 때는 문자에 의한 글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말에 의한 반복된 소리를 통해 익히는 것이 먼저였지 않던가!


영어에 손을 놓고 있던 학생들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관찰하면 무척 흥미롭다. 변화를 위해선, 학생들이 먼저 영어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인간은 언어적 재능(lingual competence) 누구라 할 것 없이 타고나므로 영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지속적으로 자존감을 살려주면서 시간을 넉넉히 두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변화의 싹은 틀림없이 돋게 마련이다. 칭찬과 보상이 충분히 주어지면서, 쉬운 단어로 시작해서 보다 어려운 단어로 옮겨가는 어휘 학습의 선순환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학습의 효율성 역시 그만큼 더 커지게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대구 근교에서 통학하던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에서 영어의 기초를 놓쳤다고 생각하던 차에 주변을 돌아보니, 최상위권 대학 본고사를 준비하던 3 형들 못지않게 벌써 정통 종합 영어를 완독 한 녀석들이 온 사방즐비했다. 두어 차례의 시험에서 학급 평균에도 못 미쳤던 영어 성적에 좌절하고 있던 친구는, 어느 날 동아 콘사이스라는 3색 인쇄된 포켓 영어 사전을 학교로 들고 오더니 그날부터 바로 외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이미 외운 단어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찢어버리기까지 하는데, 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발상에 기가 막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눈 아래로만 보였던 친구의 영어 실력은 그해 겨울이 되면서 웬만큼 영어를 잘한다는 학생들 보다도 뛰어나게 되었고, 결국 지방 국립대의 영문과로 진학을 하더니 나중에는 어려서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방송사의 기자가 되었다.


P군은 내가 가르친 학생인데, 이 학생 역시 사교육과는 거리가 먼 포항 인근의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본교로 진학을 했다. 3학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놓우수반에 합류한 학생인데, 주위 학생들보다 영어와 수학 과목이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학년 초라 사용하지 않는 교사용 부교재가 교무실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는데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볼만한 어휘책과 참고서를 몇 권 골라 공부해 보라고 던져 주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지나자 이번엔 P군 스스로 교무실을 찾아오더니 자신이 볼 만한 책으로 몇 권을 골라갔다.


P군은 선지원 후시험으로 치른 그해 대학 학력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의 명문 사립인 S대학 무역학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긴  영어실력 때문에 무역학과로의 진로 선택을 두고 고민이 많았으나, 오히려 P군의 영어에 대한 소양을 눈여겨보아 온 입장에선 오히려 그 이후로의 발전이 더 기대가 되었다. P군은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졸업을  눈앞에 둔 그해 행정고시의 외교 직렬에 합격하여, 고등학교 시절엔 꿈도 꾸지 못했던 외교관이 되어 공직자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걷고 있다. 물론, 각종 임용 시험에서 본인이 준비하기에 가장 손쉬웠던 과목이 영어이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들의 영어학습에 불을 댕긴 것은 아마도 단어학습이 먼저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낱개의 어휘 하나하나는 사실상 영어 공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런지도 모른다. 방바닥에 어지러이 널린 낱낱의 쌀알 한 톨은 그저 생쌀 한 톨에 지나지 않아 익혀 먹을 수도, 생쌀 그대로 먹어 허기를 지울 수도 없다. 그러나 낱알이 모여 한 움큼만 되어도 밥을 지어 한 끼, 아껴 먹을 땐 하루의 끼니로도 너끈 있다.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개의 알고 있는 단어가 문장 속에 보이면 전체 문장의 의미를 유추하기 쉬워지고, 알고 있는 단어들이 무리 지어 있는 문장을 자주보다 보면 그 속에 내재된 규칙들을 문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손쉬워진다.


내게만 어려운 영어란 것은 처음부터 틀린 말이다. 언어로서의 영어는 다양한 장르의 문학과 고문(古文), 혹은 비문학을 심도 있게 공부해야 할 국어와는 공부의 접근 방식부터 다른 것이다. 본인에게 내재된 영어의 언어적 재능을 격발해라. 격발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탄환은 바로 영어 단어이다. 영어 단어는 곧 낱알의 쌀이며, 낱알이 한 톨 두 톨 모여야 비로소 식량의 구실을 하여 비로소 여러분의 소중한 생명을 연장시켜 줄 것이다.


6부 '영어 듣기는 상위 등급의 지름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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