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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Jun 20. 2022

영어 듣기는 상위 등급의 지름길

영어공부 잘하기 6

글을 이어가다 보니, 글 내용이 영어에 고민이 많은 학생들을 상담할 때의 상황으로 되돌아 간 듯하여 사뭇 당혹스럽다. 사실 이 묶음의 글 하나하나는,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영어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이다. 글의 초점이 영어 공부를 잘해서 본인이 원하는 만큼 성적을 올리는 데 있으니, 글을 관심 있게 읽으리라 짐작되는 대상은 주로 중고등학교 학생이나 이들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아닐까 한다.


영어는 발화자가 듣고(listening), 말하고 (speaking), 읽고(reading), 쓰는(writing) 네 가지 기능(four skills)에 두루 능할 때, 흔히들 그 사람의 언어적 소양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영어가 모국어(mother tongue)가 아닌 사람들은 이 네 가지 기능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노력 없이 손쉽게 익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듣기가 그러한데, 일반적인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은, 그저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영어 듣기가 손쉽게 해결될 있으리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실생활 영어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제대로 익히기가 어려운 것이 듣기 영역인데 요즘 대부분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초등학교 3~4학년 136시간, 5~6학년 204시간을 원어민 교사와 영어 전문 교사의 도움으로  파닉스(phonics, 발음 중심 어학 교수법) 기반의 듣기와 말하기 수업을 하고 상급학교로 진학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특히,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영어 발음 규칙을 익히고 나면 듣기가 그만큼 손쉬워지는데, 실제 지필 고사 성적과는 별도로 영어 듣기 성적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학생들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문제가 되는 것은 처음부터 듣지 않으려는 것이다. 소위, 영포자(영어 포기자의 줄임말)들인데, 이런 학생들조차도 1학기와 2학기 두 차례로 나눠 시행하는 시도 교육청 영어 듣기 평가에서, 아무리 못해도 20문제 중 10문제 가까이는 너끈히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영어를 의식적으로 포기하기 전인, 초등학교 시절 파닉스 위주의 영어 수업을 한 데 힘입은 바 크다고 볼 수 있다.


J는 첫 시간부터 나에게 거의 적의(敵意)에 가까운 눈길을 쏘아붙이던 학생이었다. 두 시간 연강 수업의 첫 시간, 교사 소개와 1학기 수업 계획을 설명할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잠시 쉬는 시간을 마치고 두 번째 본 수업으로 넘어가자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포항 지역에서 평준화가 시작된 이후 이미 서너 해가 지난 후라서, 흔치는 않아도 첫 시간부터 영포자를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이 단박에 보아도 표정이 적대적이었다. 갑자기 교실 전체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꼴깍꼴깍 학생들 침 넘어가는 소리만 겨우 들릴 지경이었다.


숨을 깊이 다시 한번 고르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침착하자'라고 되뇌었다. 사실 열일곱 나이는 아직 볼살 통통한 철없는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교무실 옆 상담실로 불러 놓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소곳해져 있었다. 사실, 나무라거나 질책하려고 부른 것도 아닌데, 녀석은 지레짐작으로 이전부터 본인 스스로 길들여 놓은 행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약속을 미리 했다. 다음 주 이 시간에 영어 듣기로 치르게 될 시험에서 절반 이상을 맞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한 시험으로 치른 바로 이전 해의 제1회 시도 교육청 1학년 영어 듣기 평가에서 놀랍게도 20문제 중 13문제나 맞추었다. 본인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스스로 쌓아 두었던 앙금을 다 털어낸 듯 바로 이어진 시간부터 눈 부릅뜨고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J는 알고 보니, 사실 기초가 약한 학생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게임에 빠져, 이른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해 늘 수면부족에 시달렸는데, 과목 불문하고 오전 시간 내내 습관적으로 잠에 취해 있었것이다. 중학시절,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한 때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마음속 상처까지 털어놓은 것은 그로부터 두 달 가까이 지나 중간고사 성적을 받아보고 난 후였다. 고맙게도, 그날 이후 영어 시간만큼은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수업에 참여를 해왔던 것이다.


J는, 특히 영어 듣기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건 당시 유행하는 미드(미국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 저녁 몰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즐겨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게다가, 화요일 7교시 특별활동으로는 내가 개설한 미드 반을 지원했는데, 미드 반의 운영 목적은 반원들의 영어 듣기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어 듣기 수업 시간에는 수업 중 들은 내용의 스크립트를 반복해서 읽어 보기를 권유했는데, 이는 생활 영어의 대화나 담화를 구성하고 있는 어휘나 표현들이 대부분 기초적인 것이고, 스스로 기초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부담 없이 영어를 다시 시작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학습자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3학년이 되자 학생회 대의원이었던 J는 리더십 전형으로 지방대학의 사회계열 학과로 진학하였다. 주목할 사실은, 학년이 오를수록 시도 교육청 영어 듣기 평가나 수능의 영어 듣기 문항을 거의 틀리지 않았는데, 실제 수능에서는 영어영역이 최상위 등급이랄 수 있는 2등급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시작이 영포자였던 J의 밑천이란 다름 아니라, 그나마 그때까지  남아 있던 약간의 영어 청해력(聽解力)이었던 것이다.


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의 듣기 배점은 100점 만점 가운데서 37점이다. 37점은 2점짜리 14문항 28점과 3점짜리 3문항 9점이 합쳐진 이다. 그런데, 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은 10점 단위의 절대평가로 전체 등급을 나누는데, 상위 등급이랄 수 있는 3등급은 70점부터이고, 2등급은 80점, 1등급은 90점부터이다. 다시 말해, 70점 이상을 받으면 상위 등급인 3등급 이상을 아 수시의 상위 대학 최저 등급컷을 통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17개 듣기 문제를 모두 맞히면 100점 가운데 37점을 미리 확보한 셈이니, 읽기 시험에선 33점에 해당하는 문제 수만 맞추면 3등급의 기준점인 70점이 된다. 그런데, 듣기 17문제는 마음먹고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누구든 쉽게 모두 맞힐 수가 있다. 그 이유는, 평가원의 출제의도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다. 즉, 정상적인 고등학교 영어 교과 과정 내에서만 문제 출제가 이뤄지는데, 대화나 담화를 듣고 답을 고르는 방식이 5개의 선택지 가운데 숨어 있는 정답 하나를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답이 되는 선택지가 이래도 답을 아니냐는 식으로 두드러진 정보가 바탕이 되어 문제 출제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16번과 17번 문항만 단일 담화문에 따르는 2개의 복수 문제로 출제되고, 다른 문제들은 모두가 단일 문항이다.


사실 각종 영어 듣기 시험이 힘든 점은, 귀담아들은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들은 내용 속에 틀린 정보가 섞여 있는 선택지를 오답으로 골라내는 것이  어려운 법인데, 수능의 듣기 문항은 정오(正誤)를 단순 판단하듯 옳고 그름이 너무나 명백한 선택지로 문제 구성이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볼 땐, 잘못 듣거나 듣기 힘들거나 순간적으로 놓친 부분이 있더라도, 끝까지 들으면 정답을 골라내는 데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답을 찾는 데 있어 복수의 단서가 주어지던가, 쉽게 들리는 최소의 정보만으로도 답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문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원어민(native speaker)의 발음 역시 미국식 표준 영어로 리듬이나 템포가 알아듣기에 까다롭지 않고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니, 영어 듣기야 말로 영어를 시작하는 첫걸음이자 바탕이라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다. 아울러 영어의 최상위 등급을 노리는 학생이라면 듣기를 소홀히 했다가 자칫 치명상을 입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듣기를 한두 문제 실수로 틀리고 나면, 읽기 시험에서 변별력을 기하기 위해 출제되는 문법 문제나 빈칸 추론 등 3점짜리 킬러 문제를 복수로 더 틀리기라도 한다면 1등급은 물 건너갈 것이고, 이는 네 개 영역에서 등급의 합으로 5를 맞추기가 거의 힘들어져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최고 학과의 최저 등급컷을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서울대의 지역균형 선발은 데믹의 영향으로 학교 수업이 영향을 받았다는 전제하에 2022년 학년도 이전, 4개 영역 중 3개 영역의 합 6이 최저 기준이었던 것이 2022학년도에는 3개 영역 각 3등급 이내로 완화되었다가 2023학년도엔 3개 영역 합이 7등급으로 기준이 다소 강화되었는데, 탐구 영역은 두 개 영역의 합을 나눈 정수를 등급으로 인정한다. 사실, 영어를 제외한 다른 과목은 상대 평가여서 최상위 등급을 받기가 그만큼 어렵고, 영어 영역도 EBS와 연계되는 문제가 줄면서 절대평가로 인한 변별력 확보를 위해 문제가 해마다 어렵게 되는 추세이므로, 3등급 이상을 받기 위해선 여전히 쉽게 출제되고 있는 듣기 영역 공부를 절대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여기서 이 글을 이어가며 쓴 목적은 영어 듣기 방법을 세세히 일러주기 위함이 아니라, 듣기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아 초등학교부터 이어진 듣기 학습의 소중한 경험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이다. 마지막으로 일러두고 싶은 말은, 하루 학습을 마무리하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일정 수준의 교재를 택해 잊지 말고 반복해서 들어보라는 것다.


영어는 실용적인 과목이라 할 수 있다.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 학교를 찾은 제자들이 학창 시절 영어 공부가 대학이나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도 영어 공부의 향도(嚮導)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된다. 취업난이 어려운 현실에서 승진을 위한 경쟁마저 치열해진 이 시기에, 이들은 학창 시절부터 부단히 단련해 온 영어 실력이 현재의 자신을 만든 바탕이 되었음을 드러내 놓고 자랑스러워했다. 기실, 마음속으로 더 기쁘고 자랑스러운 사람이 바로 자신들 눈앞에 있음을, 이들은 돌아서 문밖을 나설 때까지도 잘 알지를 못한다.


7부 '도록이면 영어 지문을 많이 읽자'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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