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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Sep 03. 2022

소리 없는 아우성

운동장을 돌다가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경로와 관련된 소식을 먼저 확인했다. 지난 몇 해에 걸쳐 대한해협으로 빠져나가는 서너 번의 태풍으로 인해 베란다 창이 크게 흔들리고 난 후로, 전보다 창틀의 유격(裕隔)이 눈에 띄게 넓어져서 이젠 별로 심하지 않은 바람에도 덜컹대는 창문 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렸다. 힌남노는, 과거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끼친 사라나 매미보다 더 큰 태풍으로,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재난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하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상 뉴스를 확인하고는 휴대폰 창을 막 닫으려는데, 화면의 카카오 스토리 아이콘에 빨간 글씨의 숫자가 눈에 쏙 들어왔다. 요즘,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김미아'란 이름으로 친구 요청을 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로맨스 스캠이 목적인 듯 보인다. 친구 요청을 '무시'로 처리하고자 창을 다시 여는데, 카카오 스토리 메인 화면에 눈에 익은 밤톨 두 알이 눈에 익숙하기에 확인을 하니 '과거의 오늘 있었던 추억들'을 소환하 사진이다. 바로 2014년 오늘에 올린 카카오 스토리 속 글과 사진들인데, 약간의 내용 수정을 거쳐 새로 보충한 글을 이 자리로 옮긴다.


                소리 없는 아우성!
(운동장을 돌다가 우연히 손에 넣은 햇밤 세 톨을 날 것으로 까먹으며 이 글을 쓴다.)

이른 봄부터 밤나무 그늘이 짙어가는 운동장을 돌며, 이 삶의 몸부림이 끝나는 지점은 과연 어디쯤 될까 늘 그게 궁금했다.


두어 그루의 밤나무가 운동장 철망 너머로 자라고 있음을  우연히 처음 알았고, 운동장 구석진 곳에도 거의 땅에 닿을 듯 또 한 그루의 어린 밤나무 자라나 진한 향기와 함께 어김없이 늦은 봄의 밤꽃을 피우 있었다.


아이들의 왕래가 빈번한 족구장 근처, 그것도 호기심 가득한 개구쟁이 중고등학생들의 눈길을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겨우 사람 키높이 이를 정도의 밤나무 가지에서 밤송이가 오롯이 열렸을 때, 난 모처럼 만에 누려보는 생소한 눈의 호사(豪奢)가 늦여름이 가기도 전에 아이들 손에 꺾이거나 부러져 사라지지 않을까 안절부절이었다.


부러져나간 나뭇가지에 달려, 미처 여물지도 못한 채 갈색으로 쪼그라들 밤송이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어쩌면 이것이 바로 네놈들 밤송이에게 닥쳐올 운명아니겠느냐고, 질책할 말들까지 마음속에 미리 요량해 두었 것이다.

그러나 밤송이들아. 너네들은 온몸 무성하게 가시를 둘렀었더구나! 아이들 눈길이 왜 그토록 무덤덤했는지  이유를 깨우치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를 조마조마 마음으로 바라보던 내게, 마침내 밤송이 하나 입을 벌려 소중한 햇밤  톨을 떨어트려 기어이 내 손에 넣을 수 도록 해주었다.


약삭빠른 녀석들이 가시 바늘 끝이 주는 신랄(辛辣)한 통증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한 듯싶은데, 세상 일이란 이처럼 예상치도 못한 서로의 타협 속에서 하루하루를 넘기 무탈하게 새로운 계절로 들어서 있었다.


소강당() 처마의 물받침을 따라 흘러내린 빗물이 소리 죽여 방울방울 떨어지고, 근처 철망 틈으로 활짝 핀 이름 모를 야생화 꽃잎 위로 모기 한 마리 느긋이 내려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


유유자적(悠悠自適) 유분수(有分數)지, 한가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어찌 보면 사람인 내가 아니라, 한낱 미물(微物)에 지나지  이놈 모기일 거란 생각이 문득 들면서, 놈의 무량(無量) 여유로움이 한없이 부러워졌다.


포승() 묶인 듯 철망에 얽혀 있는  색 바랜 잎사귀는 내게 무슨 사연을 들려주려는 것일까? 꼼짝달싹할 수 없는 몸이 되어 한 여름 햇살에 온전히 메말라 갈 수밖에 없는 처절함에 절로 진저리까지 만, 그래서인지 생기(生氣)를 내려놓은 삶의 무게가 오히려 더 가벼워 보인다.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워야 할지 모른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필부(匹夫)의 인생이라면, 어쩌면 생의 끝에 다다른 이 메마른 잎사귀 하나가 내게  해답의 단초(端初) 일러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철망 사이를 숨차게 넝쿨져 타고 오르는 들풀의 안간힘 지켜보는 것으로 운동장 돌기를 었지만, 오늘도 난 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함께 했다. 더 이상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어느 날 , 비어 있는 운동장 모퉁이를 돌면서 마음속에 찌든 속된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침내 난 들과 하나가  수 있었다.

                            (2014년 9월 3일 씀)


내게 몰아(沒我)의 순간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그건 학교에서 떨어진 밤을 때였을 것이다. 학교 운동장 울타리 너머 밤나무 숲에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밤이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었다. 비닐봉지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잠시 쉬는 시간을 틈 타 밤숲을 다녀오면 주운 밤으로 비닐 한 봉지를 채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겉껍질만 벗기고 속껍질 채로 알밤을 그 자리서 오독오독 씹어 먹으면 토종밤인 약밤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상 서랍 속이나 집 냉장고에 주운 알밤이 가득 차 있어도, 아침에 학교로 출근하면 이내 울타리 너머 이 궁금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속으로 들어갔다가 온몸이 산모기에 물려 겉으로 드러난 살이란 살이 온통 부풀어 올라 흡사 벌집을 건드린 듯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해가 수록 요령이 생겨, 양팔에 토시를 두르거나 긴팔 셔츠를 입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바닥이 코팅된 면장갑까지 끼고 나면 모기에 물리거나 밤가시로 손이 찔릴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멋모르고, 주워 온 을 물로 씻은 후 봉지에 가득 담아 김치냉장고 아래칸에 며칠을 두고 얼렸다가 한참 후에 먹으려고 삶아보니, 마치 잘게 썬 묵을 먹는 듯 단맛은 오간데 없고 물컹물컹한 식감(食感)이 혀끝에 남아 기겁하고 뱉은 기억이 난다. 게다가, 밤나무에서 밤이 처음 떨어지고 난 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겉은 멀쩡해도 주운 밤톨 속에 벌레가 들어서는데, 그때부턴 멀쩡한 밤도 단맛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그저 주울 때의 재미만 안겨줄 뿐이었다.


퇴직을 하던 그 해, 3층 교무실은 진로와 진학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특별실로 꾸며졌다. 땀범벅이 되어 비닐봉지 가득 밤을 주어다 놓으면, 다음날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이를 삶아 학교로 가져왔다. 밤 철이 끝날 때까지 거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울타리 너머의 밤숲을 드나들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는 숲 속에 머무는 그 한 시간이 나 혼자만 오롯이 누리는 명상(冥想)의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던 퇴직 이후의 삶을 마음속에 그리면서 지나 세월  흘러온 궤적(軌跡)되돌아보고는 했다.


밤을 주으며 땀투성이로 산비탈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그 순간만큼은 이제까지의 나를 묻고, 또 앞으로의 나를 파헤치던 순간이었셈인데, 산들바람이 선들선들 불어오거나 낯선 새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면 어느새 쉬는 시간이 다 끝나 있었던 것이다. 울타리로 난 샛길을 통해 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느닷없이 몸을 드러내면, 족구를 하다 말고 멀뚱멀뚱한 눈길을 보내던 아이들 얼굴이 여전히 눈에 밟힐 듯 선하다.


며칠 전 포항 KTX 역사()로 손님을 맞으러 가는 길에 시간이 나서 잠시 학교에 들른 적이 있었다. 얼핏 보니 구내매점 뒤, 두 그루 큰 밤나무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지마다 밤송이가 실하게 달렸다. 교무실 안에는 휴일임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출근해서 수능을 목전에 둔 3학년 학생들을 지도하거나 자율학습을 감독하느라 정신이 없다. 2년 사이에 새로운 선생님들로 물갈이가 많이 된 탓인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선생님들 사이에는 낯선 얼굴이 드물지 않았다.


휴게실로 자리를 옮겨 서로 반가움을 나누는데, 선생님 한 분이 미리 짐작하고 있던 말을 여지없이 꺼낸다. 말인즉슨, 학교로 밤을 주으러 오라는 이야기이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수능을 목전(目前)에 둔 지금 이 시기의 치열함을 모르지 않기에 그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뿐이다. 리모델링을 한 교사 휴게실처럼 새로운 선생님들로 가득 찬  교무실이 낯설 , 문득 교사로서의 지난 삶이 오늘은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창문 밖의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아직 바람은 심하게 불지 않지만, 잠시 외출해서 베란다 창틀에 붙일 테이프를 넉넉하게 사 왔다. 월요일을 전후해서 힌남노가 내륙으로 상륙한다고 하니, 아마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이곳으로도 태풍이 거세게 몰아칠 것이다.


대숲이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아우성을 치듯 며칠 전 꿈속에서 까만 밤숲이 밤새도록 울었다. 나뭇가지로부터 툭툭 떨어지고 있는 밤송이와 알밤이 웅크린 내 몸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등짝을 아프게 두들겼다. 하필이면, 왜 이런 고통스러운 꿈을 꾸었을까? 혹시 깊숙이 박혀 미처 빼내지 못한 시가 있어, 여태껏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었던 걸까? 하긴, 어떨 땐 철망 울타리 너머로 넘어온 뱀을 본 기억이 꿈속에서 되살아 난 적도 있었다. 그저 의미 없이 본 꿈속 기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쪼록 힌남노가 큰 탈을 내지 않고 이 땅을 스쳐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저 밤숲의 나뭇가지나 밤새도록 흔들고, 이로 말미암아 후드득 밤톨이나 넉넉히 떨어져 이 가을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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