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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진 Sep 24. 2022

Forail(철길숲)을 걷다

오늘은, 지인(知人)들과 10여 년을 함께 해 온 골프 동호회의 9월 월례회를 '철길(Forail) 걸어보기' 행사로 대신했다. 2년 전 11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 이듬해 학교를 퇴직하고나서부터는 예상치못했던 일들 연이어 벌어지고, 코로나로 인한 감염을 우려해서 여러 행사가 불가피하게 주말에만 잡히다 보니, 토요일과 일요일 모여 함께 즐기던 스크린 골프에는 짬을 내기가 어려웠고, 결국은 모임에도 발걸음이 멀어게 되었다. 더욱이,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땐 우르르 몰려다니며 실내 골프를  일조차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일로 여겼으니, 이를 스스로 빌미로 삼아 모임 얼굴 내미는 일이 뜸해지자 얼마 안 가서 골프 자체에 대한 흥미까지 잃어버리 말았던 것이다.


몇몇 다른 회원들 사이에도 월례회의 참여율이 떨어지자,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해 7월부터는 가볍게 행장(行裝)을 꾸려 가까운 산으로 트래킹을 하던지, 아니면 바닷길을 따라 먼길을 걷는 로 월례회 행사대신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이번 9월 월례회 행사로 기획된 것이 바로 철길 함께 걸어보기였던 것이다. 숲은, 지난해 교단떠나고 나서 한참 걷는 일에 빠져 있을 때 종종 시간을 내걷곤 하던 길이었고, 때마침 이 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소회(所懷)둘로 나누어 적어  글이 있어  자리에서 소개를 하고자 한다.



Forail(철길숲)을 걷다 1


어제, 바닷길을 걷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미리 오늘의 출발점으로 생각해  곳이 있다. 바로 유성여고 앞, 신동아 아파트 옆으로 길이 길게 시작되는 철길 숲 동쪽 끝 구간(區間)이  바로 그곳이다.


일제 강점기(日帝 强占期)에, 북한 지역의 농수산물과 석탄을 비롯한 천연자원을 수탈(收奪)하기 위하여 부산으로부터 멀리 원산까지 아우르는 동해중부선노반(路盤) 공사가 시작되었다. 예전 창포동 뒷산 자락에 있던 작은굴과 마장지(馬場地) 부근 산허리에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큰굴은 철로 터널 공사까지 모두 끝냈지만 해방이 됨으로써 철길 위로 궤도(軌道) 올리지 못한 채 지난 역사의 상처와 세월의 흔적만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바로 이곳이 철길숲의 동쪽 끝 출발점이다. 세월이 흘러, 옛 철로 주변으로 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철길숲으로 쓰임새가 바뀔 때까지는, 하염없는 세월 동안 미완(未完)의 상태로 남아 그저 쓸모조차 없는 애물단지로 방치(放置)되었던 것이다.


포항 시민들의 오랜 숙원(宿願)이던 포항 역사(驛舍)의 흥해 이전(移轉)이 이루어지고 KTX가 포항역까지 노선을 연장하면서, 옛날 동해중부선이 끊어진 혈맥(血脈)을 다시 이어 강원도와 북한 지역을 아울러 러시아까지 지평(地平)을 넓히는 것이 이제 우리 후세(後世) 사람들의 염원(念願)이 되었다. 소소(小小)할  있지만, 오늘은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슴에 안기분 좋게 Forail을 따라 Go Go!


지난날, 연탄공장(당연히, 연료인 석탄과 이를 상품화 한 연탄은 주로 철도로 운송을 했었다)이 있던 곳을 지나면 이내 나루끝에 이른다. 나루끝은 예전 내가 근무했던 고등학교가 개교(開校)하고 나서 20여 년 간 줄곧 자리를 지켰던 곳이다. 교사 임용 면접을 받으러 처음 포항에 들렀을 때, 나루끝이란 말을 듣고는 이 지명(地名) 의미하는 연고(緣故)가 무엇인지 도무지 머릿속으로 그려지질 않았다. 하지만 포항 지역할거(割據)하고 있는 죽도(竹島)나 송도(松島) 같은 지명에 익숙해지고 난 후에 비로소, 이곳 포항 땅처음에는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바다를 두르고 있고 육지와 이어지뭍의 사이사이를 가르며 흐르는 물길이야 말로 사람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잡는 데 있어 우선적인 준거(準據)음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 포기함으로써, 갑작스럽게 면접 날 잡혀 제대로 된 준비도 못한 채 어물쩍 면접을 받던 그날 있었던 일과, 이에 아랑곳없이 핀포인트로 세세하게 면접을 생전의 교장선생님 모습이 마치 엊그제 일인  기억 저편에서 생생하기만 데, 언제 시간이 나면 이 날 있었던 일 역시 꼭 글로 남겨두 싶다.


나루끝은 내가 햇수로 꼬박 6년 간을 살았던 하숙집이 있던 곳이다. 잠시 철길 비탈을 내려와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아직은 별 변함이 없어 보이 골목길로 발걸음을 옮겨보지만 실상 눈앞으로 펼쳐진 풍경은 아주 생경(生硬)스럽기만 하다. 하숙집이 있던 자리엔 3층짜리 원룸이 새로 들어서 있어 어쩐지 낯설기만 한데, 단지 맞은편 3층 아파트 두 동은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수구초심(首邱初心) 마음에 약간의 위로가 되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첫 목적지인 구(舊) 포항 역사바로 눈앞이다. 기존의 역사를 허물고, 건물 둘레의 넓은 공간을 정비하여 포항시내 요충지로 사방을 이어주 교차로(交叉路)로 바뀌었다. 처음 출발했던 동쪽 끝에서 구 포항 역사까지가 바로 철길의 첫 구간인데, 아직은 건물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포항역을 지나서부터, 두 번째로 완성된 새로운 철길숲이 효자역 구간까지 이어져 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과거에 이용한 적은 별로 없지만 지난 기억을 더듬어 포항역의 옛 모습을 떠올려 다. 아주 오래전, 첫눈 내리던 어느 날 우연히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본 포항 역사의 쓸쓸한 모습이 오래 동안 마음속에 머물렀다. 이곳을 출발해서 경주로 향하는 완행열차와 그 행로(行路)의 쓸쓸함을 모티브로 삼아  시 있어 글에다 잇는다.


<첫눈 내리는 날엔>


첫눈 내리는 날엔

기차를 타자

기다려 줄 사람 없이

기다리는 경주행 열차


설렘과 그리움으로

들어 선 역전驛前 다방,

커피 향 배인 등받이 의자로

나른한 졸음 쏟아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로

분분히 눈발 날리면

아련히 들려오는 기적汽笛 소리

어지러이 패인 발자국 쫓아

서둘러 문을 나선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것은

추억뿐이 아니련

흐려진 기억 속으로

첫눈 내리던 그날


까만 밤하늘엔

흰 별들, 

함박눈으로 쏟아지고

그댈 안은 손으로

간간이 눈물 훔치던 밤


경주로 달리는 기차는

서두름이 없다

첫눈 잦아드는 어둠 속,

반겨 줄 사람 없이

떠나가는 완행열차


첫눈 내리는 날

첫눈은

안타까움이다


봄날, 철길나들이를 다녀온 소감의 첫 글은 이 시로 졸(卒)한다.



《Forail(철길숲)을 걷다 2》


포항 도심(都心)을 벗어나 흥해 이인리에 새로운 역사를 마련하고, 동대구역에서 포항역까지 KTX 노선을 연장함으로써 포항은 교통의 오지(奧地)라는 그간의 오명(汚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있게 었다.


그런데, 어느 도시든 역 주변에는 나그네들이 유숙(留宿)하면서 객고(客苦)를 푸는 사창가(私娼街)가 흔히 자리 잡고 있고, 무슨 연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역 주변의 미로(迷路)와 같은 이 음습(陰濕)한 골목길 일대를 포항 사람들은 흔히 '중앙대학'이라 다. 길거리 여인들이 모습을 감춘 그 골목길을 따라 이제는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철길숲이 조성되어, 언제든 시민들이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핫한 골목길로 탈바꿈하고 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긴 해도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포항역을 벗어난 철길숲 곳곳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철의 도시 포항의 특징을 살리고자, 시에서는 포스코의 협찬(協贊)을 받아 포항 스틸 아트 축제(Pohang Steel Art Festival)를 해마다 열고 유망 작가의 작품들을 공모(公募)하는데, 그해 전시(展示)가 끝나면 이를 선별(選別) 구입하여 포항 대표하는 명소에다 작품 특징맞도록 안배(按排)하고, 이들 작품들은 다시 시차(時差)를 두 다른 지역으로 순환배치(循環配置) 하기도 한다.


잠시 시간을 두고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걷는데, 새로이 조성된 주위 경관(景觀)과는 상당히 이질적(異質的)인 것들이 눈에 띄었다. 목각(木刻)으로 된 장승들 옆에 길게 늘어서 있는, 과거 이 지역을 다스렸던 고을 현감(縣監)과 관찰사(觀察使)들의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바로 그것이다. 신고(辛苦)한 세월의 풍상(風霜)을 겪은 듯, 비문(碑文)에는 켜켜이 이끼가 끼어 있고 비석(碑石) 모서리 곳곳엔 험하게 패인 흔적들도 남아 있는데, 공덕비를 통해 이들이 몸소 보여준 청렴(淸廉)과 선정(善政)이야말로 현세(現世)의 우리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절로 고개숙여졌다.   


이를 지나쳐 한참 걸으니 '불의 정원(庭園)'이 눈앞으로 보인다. 철길숲을 조성하기 위한 용수(用水)로 활용하고자 관정(管井)을 뚫던 중, 애초 원했던 물이 아니라 암반(巖盤) 지층에 매장된 가스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불길이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당시 이곳을 감리(監理)하던 사람이 바로 내 어릴 적 친구인데, 그는 유능한 조경기술사(造景技術士)로 이 분야에 해박(該博)한 이학박사(理學博士)이기도 다. 한바탕 소동을 겪은 후 포항시와 협의(協議)를 거쳐 이곳은 '불의 정원'이라 명명(命名)되었고, 이내 철길숲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어 포항 시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철길숲 두 번째 구간의 마지막 끝은 효자 건널목인데, 내친김에 이를 지나쳐 효자역까지를 오늘 산책의 반환점(返還點)으로 삼았다. 이미 만보(萬步)의 걸음을 훨씬 넘어서고 있어서 조금 피곤하기는 했어 마음 한쪽은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옛날 이 인근에는 효자역만큼이나 유명한 장소가 있었으니, 7번 국도(國道)를 타고 포항으로 들어 설 때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효자 검문소(檢問所)가 바로 그곳이다. 눈매가 매서운 훤칠한 키의 해병대 헌병(憲兵)이 철모 챙 끝에서 손끝을 파르르 떨며 각진 거수경례를 한 , 버스 통로를 오가며 신분증을 보자고 할손을 내밀 때는 방위 출신 총각 선생의 오금이 괜스레 저려오기까지 했었다.


되돌아갈 때는, 오던 길에 미리 눈 여겨 두었 인상적인 장소와 조형물들여유 있게 하나씩 사진에 담았다. 먼저 택한 것이 선로(線路) 주변의 가로수와 언덕 위의 예쁜 집들, 여전한 역동성(力動性)을 내뿜으며 언덕 위에 당당히 버티고 선 기관차(機關車)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러 다양한 풍경들 속에서도 가장 깊은 울림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곳은 하숙집과 그 주변 골목길, 그리고 포항역을 감싸고 있는 미로같이 얽힌 샛길과 철길옆으로 나지막이 담장을 고 돌아가는 정겨운 골목길이다. 이는, 오랫동안 몸 부대끼며 살았던 대구 변두리의 우리 집 앞 골목길과 다름이 없는데, 비록, 얼핏 보기에는 누추(陋醜)하고 비루(鄙陋)해 보여도 결코 천박(賤薄)스럽지 않은, 고향 같은 살가움이 여기저기 스며 있는 곳이다.


그래서, 오늘 전체 여정(旅程)의 마무리를 골목길 탐방에다 방점(傍點)을 찍고, 한 때 맬랑콜리(melancholy)한 심경에서 골목길을 소재로 써 둔 한 편의 시가 있어 이를 전체 글의 마무리로 갈음하고자 한다.


<그 골목길>    


그 골목길엔 사람이 살지 않네    

바람이 잠시 머물며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네    

    

흙이 숨 쉬던 자리였다네    

    

빗물 고인 웅덩이엔     

타다만 연탄 재,     

마지막 입김을 토하며    

사라지네, 사라지고 있네    

    

그 서늘한 느낌을 나는 잊지 못하네    

    

돌아서 가야 할 길     

멀기만 했네    

어깨 위로 푸른 별 쏟아지면    

사내는 외로웠다네    

    

어둠이 스며든 골목길    

가로등 불 밝히면    

그녀의  창가에서

난 기다리네,    

기다리고 있었네    

        

어둠 속, 숨어 보리라

바람인 듯 머물다 가리라   

수없이 되뇌던 다짐    

     

그 골목길, 이제 그녀는 없다네    

그리움만 재가 되어     

그 골목길에 잠들어 있네    

    

창백한 새벽어둠이     

사내의 그림자를 지우네        

흐려진 기억 속으로    

묵묵히 사라져 가네


지난 'Forail(철길숲)을 걷다 1'에 이어 쓰는 글인데, 여전히 봄비 내리는 바깥 풍경은 기온이 몹시 내려서인지, 아니면 아직도 수그러들고 있지 않는 오미크론 탓인지는 몰라도 계절에 걸맞지 않게 사뭇 을씨년스럽기까지 다. 내일은 날이 갠다고 하니 가볍게 행장 꾸려 가까운 산이나 찾으 다. 날씨 탓에다, 여전히 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의 기세에 며칠 몸을 사린 탓인지 하릴없이 허리둘레만 자꾸 늘어 가는데, 탈(脫) 마스크 하고 맘껏 바깥나들이할 수 있을 그런 세상은 아직은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2021. 3. 19)



생각해 보니, 작년 봄에 철길숲을 다녀온 후로 편도나 구간의 사잇길을 걸은 적은 있어도 온전히 시작부터 걸어서 반환점을 되돌아오기는 지난해 이 글을 쓴 후로 처음이다. 그리고, 계절은 봄에서 한 해를 걸러 가을로 접어든 지금에야 이 길을 다시 걸으니,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조경(造景)으로 심어놓은 초목(草木)에 이르기까지 물색이 완연히 다르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부터, 오늘 있었던 행사보다는 철길 숲 자체에 관한 글을 쓰기로 작정하자, 자연스럽게 작년 봄에 써 두었던 글이 먼저 머릿속에 올랐다. 이제, 도심을 동서로 길게 관통하던 철길은 시민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찾을 수 있 산책로이자 편히 쉬어가는 안식처가 되었다. 고가다리 아래쪽 그늘진 곳에는 지방 특산물 시장이 들어서서 휴일을 맞아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길게 행렬을 이루고 걷고 있는 남녀노소의 손에는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전을 호소하는 팻말이 하나씩 들려있어 철길숲을 오가는 사람들 눈길을 모으고 있다.


모처럼 만에 가을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철길 숲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송골송골 맺힌 땀을 금세 식혀준다. 참으로 청량하기 그지없는 가을 날씨인데,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벌써 뱃속은 시장기로 아우성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볍게 운동 삼아 나선 길이 라긴 해도 오늘만큼은 넘쳐나는 식욕에다 내 몸과 마음을 모두 내던지고 싶다.



철길숲이 시작되는 동쪽 끝과 3월의 철길숲
옛 하숙집이 있던 곳에 들어 선 3층 원룸
지난 해 3월의 장승과 주변 조형물
지난 해 3월, 언덕 위의 집
올 해 가을의 철길숲과 조형물
철길숲 조형물과 환경보호를 호소하며 걷는 사람들
철길숲 조형물과 특산물 시장 풍경
불의 정원 모습
올 해 가을, 언덕 위의 집과 사색하는 조형물
철길숲을 수호하는 장승들
철길숲 조형물 1
철길숲 조형물 2
철길숲 안내도와 아름다운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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