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은 제자리
(2020년 8월 23일 일두들)
나는 어떤 선택의 결과로 오늘 하루를 살게 되었을까.
5년 전에도 일두들의 여름은 푸르고 상쾌했다. 나는 주말이어서 청송에 들렀을 테고, 당연히 저 일두들 사잇길을 걷고 풍경을 담고 다시 일상의 주거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사진첩을 열어 보면 언제부터인가 일두들의 풍경이 드문드문 빠지지 않고 찍혀 있었다. 풍경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는데, 나는 더 이상 주말 주중 가릴 것 없이 일두들을 떠나지 않았고, 지금은 일두들 바로 아래 살고 있었다.
일상의 풍경이 일두들이 되었다. 어떤 선택의 결과였고, 그 선택들이 나를 비껴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선택의 주인이 나였으면서도, 나는 그 선택들 마다 외길이었던 것인지 사뭇 궁금해 뒤를 돌아보게 된다. 선택의 이유를 알게 되면 내일과 다음 선택에는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게 될는지도.
먼저 어떤 선택을 꼬집어 이유를 찾을까 오래 생각했다. 요즘 머리 꼭대기에 선 질문이 '어떤 선택'이었는지 그 선택을 찾아서 나무라든 다독이든 이유를 추궁하고 싶었다.
첫 단추는 아무래도 수학이 싫어서 선택한 춘천의 국립대 관광경영학과가 내 삶의 결정적 갈랫길이었다. 수능 성적이 남루했던지라 선택지가 없었는데, 그 당시 담임이었던 수학 교과 담당의 이재영선생님께서 내 수능 성적으로 춘천에 있는 국립대는 갈 수 있을 거라고 던지듯 말하고 교실을 떠나셨다. 초라한 성적에 대학은 갈 수 있을까 막연한 김에 들은 이야기라 솔깃했고, 진학 상담 때 살펴보니 춘천 말고 대전에 있는 국립대 경영학과도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나. 나는 경영학과에 수학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추정에 긴 고민 없이 수학이 덜 쓰일 것 같은 관광경영학과에 원서를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가, 나, 다군 별 원서를 지원할 수 있었는데, 어차피 더 나은 대학에 기웃거릴 형편이 안되었던 터라 가군에만 원서를 넣었고, 나는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춘천 10년 살이가 시작된 선택은 수학 기피였고, 그 선택으로 복수 전공, 대학원 진학, 수목원 입사로 이어지는 외길에 얹힌 것으로 압축된다.
좋아하는 것을 우선하기보다 싫어하는 것을 먼저 기피했다. 아무래도 뼛속 깊이 배인 촌놈 정서 때문일 게다. 작은 학교가 부끄러워 소풍을 가지 않은 그 습관이 내 평생을 따라다니며 나를 웃고 울게 했다. 지금도 여전히 싫어하는 것을 기피하는 습관은 여전하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는데, 지금도 저 놈의 싫어 병은 나를 가장 크게 흔드는 이유다.
싫어하는 것을 마다해 가며 지내온 삶이 평탄할 수 있었을까. 시시때때로 선택의 국면마다 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우선순위의 맨 앞에 두었더라면 나는 어떤 하루를 만나게 되었을는지.
스스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했으면서도 아이에게는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순 없어,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할 때가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어 내심 양심 어딘가가 날카로운 것에 긁힌다.
그래서 나름 내 생의 형벌로서 나는 들에서 노동을 할 때가 가장 마음 편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장화라도 신은 날이면 장화 안이 물에 잠긴 것처럼 땀으로 차올라 저벅 거린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보내는 위로는 '이 노동이 내가 지은 잘못의 형벌일 거야'라고 읊조리는데, 그러면 몸은 누더기가 되어도 마음은 한결 편했다.
이제 나름 나도 42살이 되면서 내 세계관은 더 이상 흐트러짐 없이 견고했다. 나만의 성에 내가 갇혀 살았는데, 그 성벽은 내가 싫어서 기피한 경계를 따라 외벽이 세워졌고 막다른 벽들 사잇길로 내가 걸어왔을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은 20년을 거쳐 처음 떠났던 곳으로 돌아온 이곳에서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것 만으로 하루에 하루씩 버거웠다. 하루살이처럼 살면서도 매일 흘러가는 하루가 너무 빨랐고, 어물쩍거리다 보니 벌써 7월 하고 스무날이 지나버렸다.
어떤 선택은 꼬리가 길면서도 종착역이 있는 기찻길 같았는데 어느새 나는 종점에 당도해 있었다. 하루에 하루씩 살아서 매일 굽이친 거 같았는데, 결국 나는 종착역이 뻔한 레일 위에 있으면서도 대항해시대를 살 것 같은 낭만에 출렁이다 허우적거린 날들이 많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 하루하루들은 내게 과분했다. 과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 때문이다. 그 모든 날의 그들 모두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반짝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그리고 소싯적부터 배워온 음주 습관 때문에 바늘 도둑 소 도둑 되듯이 그 못된 습관이 커서는 술고래가 될 만큼 절어 살았는데, 그 취한 날 모두 그 반짝이는 사람들과 한 추억이 있어 지금도 회상하는 것만으로 취기가 돌기도 한다.
마흔이 되던 해, 다음 20년이 무서워 나는 어떤 선택을 했다. 그 결과 떠난 곳으로 돌아왔고 일상의 풍경에 한결 같은 일두들이 있었다.
하루에 하루씩. 돌고 돌아 제자리.
안부들 여쭙는다. 당신의 선택에 건승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