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번역에 대해서-일본어 번역 중심
산업 번역은 무엇인가?
산업 번역의 의미와 영역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일단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산업 번역'이라는 말이 검색되지 않는다.
나는 도서 번역과 영상 번역을 제외한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쓰이는 번역이 산업 번역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계 매뉴얼이라든지, 관광지 팸플릿, 호텔 안내문, 기계 UI, 소프트웨어 UI의 현지화 작업, 가게의 홍보 전단지나 음식점 메뉴, 회사 내부 자료, 여행 사이트의 관광 기사,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된 게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 등... 이 모든 것을 나는 산업 번역으로 부르고 있다. 누군가는 기술번역이라고도 부르던데, 내 생각에는 산업 번역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산업 번역가로써 일을 시작하여 현재 9년 차 산업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프리랜서 번역가 수업>이 나올 때만 해도 5년 차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되었다. 10년 차 되면 자축 파티라도 해야 하나. '9년 차'라는 햇수는 내가 어느 번역 회사에 정식으로 프리랜서로 등록되고 실제로 일을 받은 해부터 카운트한 숫자이다. 물론 1년 차 때는 번역 일을 1건밖에 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이................... 옛날에는 영상 번역도 했고, 지금은 도서 번역도 병행하고 있는데 정말 일이 오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하겠다고 손을 든 바람에 그렇게 된 거 같다.
산업 번역은 도서 번역과는 달리 보통 글자 수 단위로 단가가 책정된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소규모 업체라든가 번역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든가, 업체가 전문 번역회사가 아닌 일반 회사일 경우에는 '건당' 또는 '페이지당'으로 가격이 책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이나 관광 번역, 기계 매뉴얼, 홈페이지 번역, 팸플릿 번역 등에서는 보통 글자 수로 단가가 정해진다.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일본어에는 띄어쓰기가 없으므로 1글자에 얼마라는 식으로 단가가 책정되며,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할 때는 띄어쓰기가 있으므로 1단어당 얼마라는 식으로 단가가 책정된다.
그리고 CAT Tool. 산업 번역에서는 분량이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로 CAT Tool을 많이 사용한다. CAT Tool이란, 번역 작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구글이나 파파고 같은 자동 번역툴은 아니며,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워드의 글자들을 모두 추출해 글자에만 집중하여 번역할 수 있게 도와준다. CAT Tool에서 글자를 불러와 작업한 뒤, 내보내기를 하면 원문 서식 그대로 번역문이 출력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문장이나 단어의 통일성을 맞춰준다.
물론, 반드시 어느 곳에서나 CAT Tool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CAT Tool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업체도 있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규모가 큰 업체들은 분량이 큰 프로젝트를 의뢰할 때 대부분 CAT Tool로 작업의 의뢰했다. CAT Tool에는 트라도스 스튜디오, 메모큐, 멤소스, 스마트캣 등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산업 번역의 분량은 각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26자를 번역해 달라는 아주 작은 프로젝트도 있으며, 200,000자를 번역해달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도 있다. 기간도 각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26자의 작은 프로젝트지만 마감일이 오늘이나 내일이 아닌 경우도 있다. 3일 뒤에 보내달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200,000자를 번역해달라고 해서 2달쯤 넉넉하게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다. 20만 자 중에 2만 자씩 완성해서 일주일마다 보내달라고 한다든가, 20만 자를 1달 안에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분량이 많은 프로젝트는 마감의 안정성을 위해 보통 여러 번역가에게 글자 수를 나누어 동시에 의뢰하기도 한다. A 번역가에게 4만 자, B 번역가에게 9만 자, C 번역가에게 7만 자. 이런 식으로. 그리고 번역을 검수하고 리뷰하는 작업자로 다른 프리랜서를 고용해서 검수를 진행한다. 보통은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검수를 진행하는데, 아주 가끔 검수하지 않고 자신의 번역을 곧바로 클라이언트에게 넘기는 경우도 있긴 하다.
이 정도면 얼추 정리가 되려나?
'꼭 이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대개 이렇고, 아닌 경우도 가끔 있다.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식의 뉘앙스가 많은 듯한데, 정말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한 내용이므로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명시해 둔다.
이 일을 한지 이제 9년 차라니... 초반 2년 동안은 회사에 취업했다가 그만뒀다가를 1년에 한 3번쯤 하면서 사회에 민폐를 끼치며 번역을 했는데 -_-;;; 그래도 그 이후에는 회사에 취업하지 않고 잘 버틴듯하다.
그러니 올해도 회사에 취업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버텨보도록 하겠다. 아니, 사실 이제는 취업 못할 거 같아... 아침에 출퇴근한 기억이 희미해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