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을 다닐 여건이 안 되거나, 번역 학원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어떤 학원을 다녀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통번역 대학원 입시 학원의 번역반을 다녔고, 통번역 대학원 입시에서 2번 떨어졌다. 결국 붙지 못했다. 그러나 2년 동안 통번역 대학원 입시 학원에서 구른 건 결과적으로 나에게 좋은 선택이었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주제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고, JLPT N1에 합격한 정도였던 일본어를 대폭 향상시켜 주었으며, 굉장히 많은 한자를 습득하게 해 주었다. 일본어 작문에도 굉장히 도움이 되었고 일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연습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합격 불합격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 것이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그때 익힌 일본어를 나는 여태까지 우려먹고 있다. 앞으로도 한참 우릴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대한민국 사교육의 도움을 톡톡히 보았기에 나는 누군가가 번역 공부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통번역 대학원 입시학원 번역반을 다녀보라고 종종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학원을 다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계로 시간을 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학원에 다니지 않고 독학해 보고 싶은 욕심도 이해한다.
그래서 번역을 독학한다고 칠 때, 어떤 방법이 좋으냐라고 물으면 추천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원서와 전문가의 번역문을 대조해보기. 독학을 한다고 치면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송구스럽게도 나는 이 방법을 열심히 실천하지는 않았다. 사유는 학원 선생님이 내준 과제 하느라 시간이 없었다.ㅠㅠ 학원에서 배운 거 하루 종일 복습하면서 소화하려면 정말 빡세다.
어쨌든 학원을 다니지 않을 경우, 혼자서 독학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는 원문과 전문가의 번역문을 대조해 보는 방법이 역시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학에도 유의할 점이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번역 독학 시 유의할 점에 대해서 각 장르로 분류하여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현직 번역가 선생님들께서는 귀엽다고 웃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상 번역
몇 년 전에 손을 놓고 이제는 타임코드를 찍지 않는 자막 번역만 하는 번역가라 영상 번역에 대해 말하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영상 번역을 독학하기 위해 아마 원서 대본 스크립트와 전문가가 번역한 한국어 자막을 구할 것이다. 그리고 영상을 보고 들으면서 대본 스크립트를 참고하며 번역해 보고, 전문가의 한국어 자막과 비교해 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초보자가 아니라 연습을 꽤 많이 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번역과 전문가의 번역을 비교하다가 "뭐야, 이건 ~~~ 이렇게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데? 왜 이렇게 번역한 거야?"라고 전문가를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에게는 수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전문가는 전문가다.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더 자연스러운 번역이 있다는 걸 당연히 알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번역을 싣지 못하는 이유는, 글자 수 제한과 가이드라인 등등 숨겨진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대본 스크립트가 제공되지 않고 리스닝에만 의존해 번역해야 할 때도 있다. 당장 추정되는 제약만 해도 이러하다. 한정된 글자 길이와 가이드라인 속에서 분투해야 하는 번역가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독학을 진행해주길 바란다.
☆도서 번역
도서 번역도 아직 작업한 권수가 적은 초짜라 쉽게 말을 얹기가 그렇다. 그래,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더라... 어쨌든 그럼에도 말을 더해본다.
원서와 번역본을 구해서 한 글자 한 글자 공부해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대단한 소설책들만 골라서 연습한다면 그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든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든가;;;;; 취미로 하는 연습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실전을 위한 연습이라면... 음...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볼 거 같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처음 원서와 번역본을 대조해서 '연습'해보는 레벨이라면(물론 각각의 레벨이 다르지만) 원서 자체가 너무 까다롭다. 그야말로 문학 작품이니까. 아직 레벨 1인 마리오가 끝판왕 쿠파를 잡으러 가는 격이다. 게다가 열심히 연습해서 첫 데뷔를 한다고 쳐보자. 과연 처음 데뷔한 번역가에게 출판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맡... 맡길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고 본다. 엄청난 괴물 신인이면 가능하겠지? 소설책으로 데뷔를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확률적으로 따져봤을 때 인문서, 교양서, 건강, 실용 서적, 에세이로 데뷔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한국어 소설책과 교양서의 톤이 다르듯, 도서 번역에서도 각 분야의 톤이 다르기에 연습한다면 다양한 장르를 연습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번역가 개개인의 스타일 차이도 있다. 그렇기에 이 번역본의 문장만이 반드시 최선이며 정답이라고 쉽게 치부할 순 없다.
그러나 원서와 번역서를 체크하면서 독학하는 방법의 제일 큰 어려움은 따로 있다.
원서든 번역서든 웬만해서는 책이 쫙쫙 펴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붙들고 있기 힘들다. 원서가 문고본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그 작은 책을 어떻게 붙들고 해야 할까. 스마트한 시대라서 E-book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힘들긴 힘들다.
☆산업 번역
일단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에 구하기 쉽지 않다. 관광이나 마케팅 분야는 그나마 낫다. 유명한 기업의 관광, 마케팅 사이트는 일문 홈페이지나 영문 홈페이지를 전문 번역회사를 이용해 한국어 홈페이지로 번역해 놓은 케이스가 매우 많다. 그러니 원문 홈페이지와 한국어 홈페이지를 대조해가면서 전문 번역가의 번역을 확인해 보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모든 번역이 괜찮은 번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찌어찌 샘플 테스트에 통과했지만 이제 1건밖에 실적을 올리지 못했으며 경험이 없고 샘플 테스트를 어쩌다 통과한 번역가의 결과물이 실전 홈페이지에 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심하시길. 이 홈페이지가 확실히 규모가 있는 회사의 홈페이지며, 홈페이지 담당자가 체계가 잘 갖춰진 회사에 번역을 의뢰했다면, 번역회사의 검수자가 번역가의 번역을 감수했을 것이며, 네이티브 체크도 진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회사의 내부 검수자가 검수를 한 뒤에 홈페이지에 번역이 실릴 것이다. 아, 그러면 참고해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보면, 리뷰어가 이상한 사람일 경우, 네이티브 체크가 이상할 경우, 회사 내부 검수자가 이상할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번역가의 번역이 멀쩡해도 최종에는 이상한 번역이 반영되는 케이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드물겠지만.
그리고 케이스에 따라 다른데, 번역 회사의 검수자가 없이 그대로 번역가의 번역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번역 회사에서는 멀쩡히 번역해서 제출했는데 내부 검수자가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도 있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최대한 피하는 방법은 공기관 홈페이지나 대기업의 홈페이지를 위주로 연습해 보는 방법 등이 있다. 보통 공식 홈페이지나 팸플릿들은 그래도 엄격하게 검수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게임 번역은 원문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나마 게임 홈페이지의 캐릭터 소개 같은 게 있기는 하지만, 실전 스토리나 UI가 들어있는 스트링 파일은 회사 내부자료에 속하니 원문 자체를 구하기 힘들다. 원문을 구한다고 해도 번역문 파일을 구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같은 게임을 원어판으로 플레이해보고 한국어판으로도 플레이해보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