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라디오
오프닝
너무도 건강한 아이는 아파보고 싶었습니다. 병원에 입원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깁스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시험 보는 날 학교 가기 싫었던 아이의 마음이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학교가 가고 싶은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악
-거미 (어른아이)
거미 - 어른아이 [가사/Lyrics] - YouTube
사연
건강하게 태어난 것도 있지만 미련스럽게 참아서 병원은 진짜 죽을 거 같다 싶으면 갔습니다.
어릴 적에 오빠가 허약체질이다 보니 오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다녔습니다. 또 남자라 여기저기 잘 부러지고 금이 가고, 찢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오빠가 병원에 갈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걸 보고는 아파도 아프다 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았습니다.
몸이 안 좋다 싶으면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잠들었습니다. 그냥 졸려서 잔다고 말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보통 괜찮아진 걸 보면 건강은 타고났나 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도 아프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시험 보는 날은 진짜 아파서 결석을 했으면 좋겠다 싶었고,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집에 하루 종일 누워있고 싶었습니다. 딱 그럴 때뿐이었지만 학교 다니는 초, 중, 고 12년을 모두 개근했습니다.
병원 입원도 아이 낳은 날 딱 하루 했습니다. 자정부터 오후 1시 이전에 자연분만으로 낳으면 하루 입원하고 바로 다음 날 퇴원해야 한다는 병원규정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오후 12시 15분에 태어나서 45분 차이로 다음 날 퇴원했습니다.
병원은 진짜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갔습니다. 위와 장은 언제나 안 좋기에 참는 게 익숙하지만 2~3년 주기로 오는 급성 위경련이 나면 갑니다. 어지간한 건 여전히 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새벽, 책을 보고 필사를 한 뒤 밥을 하려고 일어서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습니다. 넘어지는 순간 '뚝'소리가 귀에 들렸습니다. 새벽이기에 조용해서 들릴 수밖에 없는 소리였습니다. 너무 아파서 "악"소리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였습니다. 어디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소리와 통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였습니다. 밥을 해서 아이를 학교를 보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부어오르는 다리가 질질 끌면서 아이의 아침상을 차려줬습니다. 아이는 다행히도 평소보다 일찍 나갔습니다. 아이가 나가고 남편을 불러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 입구에서도 들어갈 수 없어 남편이 바로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앉았습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접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기 후에 진료를 봤습니다. 부어있는 발을 보시고는 바로 골절 일듯 싶다고 하셨고, X레이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반깁스를 바로 했습니다. 부기가 빠져야 통깁스를 할 수 있다고 일주일 뒤에 와서 통깁스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발이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좋으니까 입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냐고 물으셨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엄마니까요.
아직 아이가 방학을 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병원이 무서웠습니다. 아이를 낳고 딱 하루 입원을 했을 때도 남편이 옆에 있어줬는데 이번에 입원하면 아이를 혼자 둘 수 없기에 제가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게 더 무서워서 집에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반깁스를 한 상태로 화장실 가는 것도 불편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불편했습니다.
시험날 학교가 가기 싫어서 (시험날을 제외한 날은 학교 생활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깁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맘 편하게 아플 수도 없고, 챙겨야 할 아이가 있으니 지금은 깁스를 하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깁스를 한 게 이토록 불편한 걸 알았다면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이제 와서 후회가 됩니다. 타고난 건강체질이 이토록 감사할 일인지 이제 와서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엄살을 피우는 사람도 아닌데 아프다는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남편이랑 아이가 바라보는 표정이 안쓰러운데 저는 그들이 더 안쓰럽습니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을 이렇게 불편한 동거를 해야 한다니 밥도 잘 안 넘어갑니다.
그래도 약을 먹어야 하기에 우걱우걱 먹어야겠지요.
음악
-에이트 (심장이 없어)
에이트(8Eight) - 심장이 없어 [가사/Lyrics]
클로징
연말에 무슨 일이냐고 남편이 되묻습니다. 저는 올해 액땜 다해서 내년에 대박 나려고 한다고 말하며 웃습니다. 이렇게라도 웃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안심을 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습니다. 건강은 자부하는 게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배웁니다.
오늘도 수고 많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