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녀의 기억
여느 때처럼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가을이었다.
참새가 지저귀고, 바람은 나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계절은 그렇게,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있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다정함은 서툴지만 세심하게 나를 챙겨주는 남편과의 짧은 통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시작된 설거지.
창문을 반쯤 열어두고 흘러나오는 라디오.
김나희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지루하다고 말하면 억울하고,
완벽하다고 말하면 거짓 같은 하루.
그런 하루를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사람.
차분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김나희는 그런 사람이었다.
노란 포스트잇에 적어둔 장바구니 메모를 보며
오늘 저녁은 뭘 해줄까 고민하던 그때,
핸드폰을 확인했다.
익숙한 병원 번호였다.
집안일을 하던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고,
부재중 알림을 본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가슴 언저리를 무겁게 눌렀다.
‘못 받았으니까, 별일 아니기를.’
다시 걸기까지 몇 초도 안 되는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신호음이 가는 동안 손에 쥔 행주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느꼈다.
그리고 곧,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나희 보호자님 맞으시죠?
여기 병원 응급실입니다. 이재희 씨가…
지금 의식불명 상태로 이송됐습니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멈춘 것 같았다.
라디오는 여전히 흘러나오고,
세탁기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나희는 말없이 행주를 내려두고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차 키를 움켜쥐었다.
발에 슬리퍼를 신을 겨를도 없이 현관문을 열고,
차 문을 세게 닫으며 시동을 걸었다.
⸻
병원 주차장에 가기도 전에 응급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문으로 달려갔다. 자동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치자 그제야 모든 게 현실처럼 다가왔다.
“저기요! 선생님! 여기요!”
지나가는 의사의 팔을 붙잡았다.
“제 아들이… 이재희요. 지금 여기 있다고 전화받았어요.
어디 있어요, 제발… 제발…”
놀란 간호사가 급히 다가왔다.
“보호자분 되시죠? 이재희 씨, 지금 CT 마치고 올라가고 있어요.
중환자실로 안내해 드릴게요. 괜찮으세요?”
김나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며
간호사의 팔을 꽉 붙들었다.
그리고, 소리 내지 못한 눈물이 어느새 조용히 벌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날, 김나희의 시간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