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0으로부터
살짝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스치는 소리,
커튼이 살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고요한 소리들 사이,
귀 안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삐 소리가 맴돌았다.
감은 눈 위로 부드럽게 빛이 드리우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벽은 아주 흰색이었고,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며칠… 아니, 몇 달이 지났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삐 소리가 점차 잦아들 무렵,
드르륵—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와 이것저것 체크하는 듯했다.
어…?
눈이 마주쳤다.
“헙! 선생님! 선생님!”
놀란 표정과 함께 간호사는 급히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초췌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재희 씨, 제 말 들리세요?”
그가 말했다.
“제 말 들리시면, 눈을 두 번 깜빡여 주세요.”
나는 간신히, 아주 천천히 눈을 두 번 감았다 떴다.
그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간호사님, 활력 징후 다시 확인하시고, 보호자분… 대기 중이면 바로 알려주세요.”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긴 시간이었는데…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 순간부터,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눈을 뜬 지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정신은 또렷해졌지만,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건 몸인데,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머리였다.
팔을 들어보려 했다.
손가락 하나라도.
하지만 팔은 사라진 듯했다.
쇠사슬에 묶인 것처럼,
몸은 고요했고 무거웠다.
손끝이 있던 자리에 감각이 없었다.
가슴이 조여왔다.
‘왜 이러지?’
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공기가 폐에 닿지 않는 기분이었다.
소리를 내고 싶었다.
누구라도, 누군가라도 부르고 싶었다.
그런데 목 안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몸은 내 것인데, 내 말은 듣지 않았다.
나는 안에 있었고,
내 몸은 바깥에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아주 느리게,
무너지고 있었다.
혹시…
평생 이대로일까.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차가운 무게가 가슴 위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의 기억은 그렇게 0으로부터 다시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