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잃어버린 날

3화. 아는 사람이야기

by 글쟁이


눈을 떴다는 사실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마도

눈을 뜨지 못할 때도

나를 찾아왔던 것 같다.

문득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낯선 얼굴들이,

익숙한 이름을 내 입에 올렸다.

그들은 모두 나를 ‘안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 속에는

걱정과 미안함, 그리움과 후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조용한 병실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야, 너 진짜 웃긴 놈이다.

내가 누구냐? 과제 대신 해줬던 윤찬섭이다, 인마.”


친구라는 남자는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고, 내 책상에 슬쩍 올려두었다.

보아하니 과자 봉지였다.


“네가 깨어나면 꼭 줘야지 하고 사놨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살짝 부은 눈을 내 시선에서 피했다.



“재희야, 안녕?”

단정한 말투의 여자가 들어왔다.

내게 선배라고 했다.

학회에서, 조별과제에서, 자주 함께 밤을 새웠다고.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도,

밤새웠다는 그 이야기들도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내 옆에 앉아있다

조용히 나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어서… 고마워.”



“너 그때 미끄럼틀에서 떨어졌던 거 기억나?”

사촌누나라는 여자는

그 얘기를 웃으며 꺼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나는 어릴 때 정말 개구쟁이였다고 했다.

그 웃음이 참 따뜻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살짝 묻힌 슬픔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하윤이라는 여자가 들어왔다.


“야, 멍청아.”

익숙하고 편안한 말투였지만,

그 말투 속에도 떨림이 있었다.


그녀는 내 이마를 가볍게 쳤다.

그러곤 아무 말 없이

내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

나는 기다릴 거야.

너니까.”


그 말에 가슴이 뭉클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



마지막으로

병실 문이 아주 조용히 열렸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 앞에 섰다.

멀리서도 그 눈빛만은 보였다.

차가운 침묵 속에서,

심장이 미세하게 요동쳤다.


누군가 그녀를 ‘유다인’이라 불렀다.


그 이름이 가슴을 스쳤다.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감정이었다.


그녀는 한 걸음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고,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그 뒷모습은 모든 대사보다 많은 말을 남겼다.


나는 그 순간,

비로소 잊은 것의 무게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하루.

하지만 그날,

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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