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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02. 2021

고통은 좋은 거야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0

사람이라면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고 겪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 이리라. 그러나 고통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어쩔 수 없는 아니 반드시 경험하는 한 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고통은 좋지 않은 거야라고 하며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고통 속에서 나에게 주는 메시지, 신의 뜻을 발견하는 것일 것이다.
이 고통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얼까? 나의 약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짚어주려고 하는가?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고통으로 난 상처가 아무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 상처가 난 자리가 흔적이 남지만 다른 부위보다 더 강하게 강화되어 나의 일부가 된다. 감기가 들더라도 이겨내면 그것보다 센 감기 군이 아니면 이겨낼 수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태어날 때 상처 없이 깨끗한 흠 없는 모습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 많은 상처를 안고 마치는 것은 신의 섭리일 것이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 고통과 세월의 비바람을 다 겪은 상태에서 삶을 시작하면 삶이 재미가 없으니까, 그러면서 삶의 곳곳에 숨겨진 보물을 하나하나씩 찾아 거기에 쓰인 의미를 읽어야 한다.


내가 겪은 고통이 여전에 나를 겪고 있는 고통이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지만 이것이 지나간 후에는 내가 경험한 것이 다른 이에게 전해줄 때에 그 고통을 없애 줄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경감시켜주는 진통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아니면 단지 참고하는데 도움이라도 되면 충분하다. 먼저 겪은 사례로 전해주어도 좋으리라.



나에게 있어서 두어 가지 고통이 준 예를 들자면 어렸을 태의  가난, 그리고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둘째 아이의 양쪽 귀가 청각장애 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나는 충분히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가운데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런 경험이 없었다고 하면 지금의 나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아버지의 사업의 실패와 재기 등의 반복으로 인해 중고등학교 때 등록금을 제대로 내면서 학교에 다니 적이 없었다. 다들 3분기 등록금을 낼 때 난 1분기  등록금을 간신히 냈을 정도이니까 이런 형편이라서 그런지 아마도 남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한 이유도 있었고 반항이나 탈선도 하지 않고 엄친아로 성장했을지도 그리고 물질의 소중함도 남들보다 일찍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둘째가 청각장애인 것을 두 돌이 지나서 알고 '와우 수술'을 하고 재활훈련을 통해 귀에 거는 보청기로 지금은 정상인의 95%를 듣고 생활하는 우리 둘째를 보면서 장애인과 그 부모들의 아픔을 볼 수 있었고 우리 둘째는 들리지 않는 장애만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고 들리지  않는 아이들이나 부모를 보게 되면 나의 경험을 들려주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알려주곤 한다. 이 계기를 통해 신앙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나와 내 가족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자라다 보면 곧게 일직선으로 자라지는 못할 것이다. 바람에 꺾이고 부러지고 휘기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고 본다. 특히 옹이가 생기거나 상처가 나면 그 부분은 더 단단해지고 더 두꺼운 껍질이 덮이게 된다. 몇 백 년씩 지난 고목들을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멋진 외관에 감탄을 하는데 가까이서 가보면 그 두꺼운 몸통과 가지는 얼마 수령이 되지 않은 나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상처 외 꺾임과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지나왔기 때문에 그런 멋진 나무로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그래프로 표현한다고 하면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고 높낮이가 변화무쌍하게 많고 그 그래프를 현재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기쁨이나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준 경험이 더 자주 있지 않았을까? 그것이 지난 후에는 다시 상승하는 그래프로 전환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고통의 그래프는 떨어지는 부분을 급격히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그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고 다시 상승 방한으로 치고 올라가게 할 때 완만하게 전환하게 하는 점이 우리 고통의 시점이고 점이 아닐까 한다. 수학적으로 곡선도 세밀하게 쪼개면즉, 미분하면 직선이 되고 그 순간의 직선을 조금씩 조금씩 모으면즉 적분하면 곡선이 될 수 있다.


우리의 현재의 고통을 보면 날카로운 직선이지만 이 직선들도 시간의 축에 놓고 보면 아름다운 곡선이 되리라. 고통의 순간에 잊지 말 것은 지금은 곧장 뻗은 직선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보면 그것은 아름다운 곡선의 한 점 이리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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