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11
걷기 3구간 [로그로뇨] - [나헤라 ~ 산토 도밍고] - [빌바오] : 21km
우리들은 동일한 행동이나 패턴이 반복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거기에 최대한 적응하려고 한다.
이제 걷기가 3일째 들어서는 날이다. 첫째 날의 설렘을 시작해서 둘째 날의 수도원의 포도주의 기억도 생생한데 오늘은 셋째 날의 걷는 아침 하루 이틀 사이로 아침 날씨가 추워져 다들 복장이 대부분 바람을 견디기 위해 스카프나 목에 쇼울을 걸친 모습이 눈에 띈다.
어제 오후부터 아침 여행객들의 걸음걸이가 약간은 느려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이상 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의외로 걷기 좋은 시골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단조로은 길이라면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걷는 것을 그냥 걸을 수 있다. 어제처럼 뜻밖의 포도주 같은 이벤트가 없다면 말이다.
나헤라부터 산토도밍고까지 21km 길이다.
버스로 출발지에 이동하여 전체적으로 몸을 한번 풀고 출발한다. 바람은 불지만 아침햇살이 비치고 나헤라의 입구에는 첫날처럼 산티아고까지 580km가 남았다는 사람 키만 한 나무로 만들어진 이정표에서 다들 한 장씩 인증숏을 찍고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오늘의 페이스 메이커는 같은 조 김명조 님이시다. 고향은 안동이신데 결혼 후에 부산에서 사신다고 하신다. PT로 준비하시고 오셨다고 하니 오늘은 중간 속도로 가야겠다. 맨 선두에서도 맨 후미에서도 걸어봤으니 오늘은 중간에서 걸어야겠다.
오늘의 화두와 수칙은 "내 얼굴의 풍경을 바꾸자", "내 인생 풍경을 바꾸어보자"이다
매일 아침에 낭독해주시는 아침편지와 화두가 그날 걸어가는 것과 나름대로 맞아 들어가는 느낌!
이것도 사전에 디자인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에게 산티아고는 어떤 풍경을 보여 주려고 하나 은근히 기대도 되는 시작이다.
오늘의 길은 넓은 들판에 좌우로 이등분한 것처럼 거의 일직선으로 뻗어져 있고 좌우에 올리브가 넓게 펼쳐져 있어 우리가 식사마다 빵을 찍어먹고 음식마다 들어있는 것이 여기서 다 재배되는 것이리라. 거의 농가는 보이지 않고 들판에 펼쳐진 수확물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넓고 큰데 이렇게 넓은 곳을 어떻게 경작할까 고민해 본다. 하긴 내 땅도 아닌데 뭔 걱정을 하나, 우리나라에서 보던 재배지의 규모에 압도당한다.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까지의 거리는 N-120의 도로를 따라 반 정도는 도로 옆길을 걷고 나머지 반은 시리뉴엘라를 거쳐 걷는 길이다. 땅은 일부가 젖어 있어 발에 닿는 느낌이 약간은 푹신한 길을 걷는 느낌으로 아침 여행객들은 걷는다. 앞에서 걷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두렁의 끝부분에 콩 등을 심어 놓은 것처럼 아주 작은 포도송이가 열려 있고 포도는 아직 수확을 하지 않은 상태라 충분히 익어 매우 작은 포도송이들이 땅에 떨어져 발효되고 있는 것도 보인다.
앞에 가시는 고도원 님이 땅에 떨어진 포도송이를 하나 주워 조금씩 맛보라고 나누어 주신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딴 것이 아니라 떨어진 것을 주웠을 뿐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리고 나누어 주신다. 다 같이 공범(?).
이것은 포도라기보다는 포도알이 거의 콩 수준의 작은 알맹이. 작은 송이로 조금씩 나누어 입에 넣어본다 예상 밖으로 달달하고 충분히 익은 포도맛은 일품. 씹히는 알맹이라기보다는 포도즙 한 방울이 혀에 닿는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제 오후에 길거리에서 우리를 맞이해주면서 과일을 판 어느 행상의 맛과도 비슷하다. 이런 포도로 어제 수도원에서 먹은 포도주를 담그는 것일 것이다. 어느 집의 처마 밑에는 청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는데 재배용이라기보다는 관상용이라 생각된다. 너무 탐스러워 사진기로 한 컷을 담아본다. 나중에 사진으로도 스페인에는 포도가 참 많이 열려 있었다고 추억을 되새기리라.
하늘에는 흰 뭉게구름이 유난히도 낮게 걸려있다. 하얀 솜뭉치를 넓게 펼쳐 놓은 듯하고 작은 언덕이라고 할까 낮은 구릉이 모자를 쓴 것처럼 걸려 있다. 국도를 따라 난 길은 정말로 사진 등에서나 볼 수 있게 평화로운 풍광을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멀리는 위로 향하는 나무들이 위로 쭉쭉 뻗어 있으면서 아직은 푸름름을 간직하기도 하고 일부는 이제부터 그 푸르름을 벗고 노랗게 변신해가는 것이 우리 아침 여행객들의 마음에 감탄과 감동을 주면서 자연이 주는 치유, healing이 일어나고 있었다. 큰 도로를 넘어서는 얇은 언덕과 구릉으로 이루어진 작은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걷는 언덕 길 좌우에는 빨간 앵두로 보이는 열매들이 자신을 봐다랄 고 하듯이 그 빨간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2-3시간을 걸으니 이제는 걷는 여행객들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뒤돌아보니 아침지기 유하연 님이 혼자서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위에서 손을 흔드니 반갑게 답례로 손을 흔든다. 정말로 아름다운 노란색의 흔들림.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중간에 보이던 카페가 보이지 않으니 걸어도 약간은 지치고 재미 삼아 커피 한잔 마시고 가야 하는데 약간은 길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시장하기도 하고 낮은 언덕을 오르면서 페이스 메이커인 김명조 님에게 이 언덕을 넘어서 점심을 먹고 가자는 제안에 언덕에 오르자마자 멀리 마을이 보이는데 마을 입구 공터에 벌써 아침 여행자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우리도 주저 없이 자리를 깔고 앉아 신발과 양발도 벗어던지고 풀밭에 앉아 점심으로 싸준 참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오전을 마무리한다. 다른 날 같았으면 따뜻하고 찐한 커피를 같이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오래 앉아 있으려 해도 바람도 불어 점심을 먹자마자 다시 발길을 옮기는데 좌측에 보이는 골프장, 그런데 골프장 옆에 카페처럼 보이는 곳에 우리 아침 여행객들이 보이길래 둘러보니 일부는 거기서 브런치 카페처럼 점심과 커피를 드시고 계셨다. 좀 참을 걸 하는 후회를 뒤로하고 따뜻한 커피 한잔이 모든 것이 여행을 더 감사하게 한다. 따뜻한 한잔의 커피가 우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것은 이 여행에서 우리의 모든 것을 잊고 온전히 한 끼의 식사와 커피 한잔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제 약 6-7km 남은 것 같은데 힘차게 내딛는데 얼마를 가다 보니 정말로 사진을 찍을 만한 포인트가 등장했다. 앞에는 낮은 능선과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고 그 좌우에 펼쳐진 밭은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팔레트에 다른 색의 물감을 담아 놓은 것처럼, 녹색, 연한 녹색 그릭 진 갈색, 연한 갈색, 갈색과 연두색을 섞어 놓은 곳, 한편으로는 추수가 끝나 색 바랜 노란색으로 나뉘어 있고 우리가 걸어갈 길은 하늘과 땅이 맞붙어 있어 하늘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늘로 이어진 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며 여행자들이 뒷모습을 사진기에 담느라 바쁘다.
나도 그 길의 중심에 있어 두 팔을 벌리고
" 난 자유다. 난 힐링받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다"하는 마음으로 포즈를 취하고 여러 컷을 가슴과 마음에 담았다. 한국에서 본 구름과 파란 하늘과 달랐다. 언덕의 능선이 어쩌면 뛰어나오는 모습이나 나무 한그루 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그 너머로 새하얀 구름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 밑에는 밭을 줄을 그어 놓은 것처럼 하늘로 쭉쭉 그어 놓은 모습이 사람이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보기 좋았다.
오늘의 종착지인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성당과 전망대를 구경하기 위해 짐을 짐을 상점에 맡기고 입장표를 샀다. 성당을 구경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 마음에 탐탐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니 기존에 보던 성당과 달리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특별히 와닿지 않았고 단지 성모 마리아가 내가 그동안 알았던 것과 많이 달라서 좀 당황했고 건너편에 있는 전망대라고나 할까? 종탑에 올라갔다.
좁고 가파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아래가 보이게 구멍을 뚫어 놓았고 그 밑으로 보이는 높이 감은 한층 올라갈수록 더하였다. 맨 꼭대기에는 2천여 명이 보이는 산토 도밍고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커다란 종들이 하나씩 매여 있고 그 종탑 주위로는 사방으로 도시의 건물들이 방사형으로 퍼져 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지붕과 건물들이 전부 다 붉은색이라는 것. 스페인의 특이점은 붉은 기와나 붉은 벽돌로 다 집을 지었는데, 여기에 와서 벽돌 장사나 할까? 전부 붉은색이네....
산토 도밍고 대성전 뒤에 있는 닭장과 살아 있는 닭 두 마리의 전설이 있어서 인지 곳곳에 닭으로 된 조각물이나 상점에는 기념품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수탉과 암탉의 기적"이 12세기 때부터 내려오는 전설인데 잘생긴 독일 청년이 여인숙의 딸의 연정을 거절한 것 때문에 누명을 쓰고 교수형에 처해지고 나중에 산티아고의 자비로 다시 살아난다는 내용으로 순례자들이 내미는 빵조각을 먹거나 닭의 깃털을 손으로 만지거나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길조라고 여긴다고 하는데...... 난 여기 도착해서 치킨 한 조각도 먹지 못했는데,,, 아니
치킨도 많이 먹지 않아서 이런 여행의 행운이 있는 건가.
늦게 도착한 여행자들이 시간에 쫓겨 종탑을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오늘의 숙소인 빌바오로 향하였다. 여기서부터 빌바오까지 약 110km을 이동한다.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고 하는데 엄청나게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건 내일 일이고. 그리고 오늘 저녁은 중국 식당이라는 소리에 다들 얼굴에 미소를 띄운다. 오래간만에 자장면이라도 먹어볼까, 아니면 얼큰한 짬뽕 국물도 생각들 하는지
오늘 걸은 피곤함도 한방에.... ㅋㅋ
꽤 큰 도시라고 하는데 도심에 들어서니 차 막히는 것 보니 꽤 큰 도시인 것은 틀림이 없다. 도착한 호텔도 Melia Hotel로 꽤 크고 도심 한가운데라 좋다. 객실에 들어서니 창문에 펼쳐진 광경이 공원 같은 데서 개들과 산책하는 등의 모습이 너무 좋다. 다들 피곤함을 씻고 도착한 것은 호텔 맞은편에 있는 상가 간물의 중국 식당. 뷔페 형식이라고 하는데 일부 음식은 접시에 담아서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담아서 즉석으로 요리해 달라고 하며 되는데 정작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 흔한 짬뽕 국물도 없이 단지 중국 식당이었다.
우리 조는 다시 모여서 오늘 저녁 외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고대현 사장님에게 여쭈어보고 오늘 저녁에 산책할 것이 어디냐고 물으니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라고 하는 말에 대충 듣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젯밤에 찍은 사진을 공유한 터라 다들 야경에 감탄을 하면서 걸었다.
시내 한 복판으로 흐르는 강 주변에는 우리나라 고수부지와 같이 강 주변에 펼쳐진 야경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우리 공식 작가인 조송희 님께서도 카메라로 빌바오의 야간 산책을 즐기는 우리들을 카메라에 담아내기에 여념이 없었고 우리들은 감독의 지시에 따라 다양한 포즈를 마음껏 뽐내었다. 아침 여행객 여인들도 가을 저녁을 충분히 만끽하고 계셨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즐겁게 박자를 맞추는 모습을 보니
보는 사람마저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한편에는 찐한 키스와 포옹으로 애정행각을 벌이는 스페인 커플도 이곳저곳에 있고 뺄 것도 없는데 쉬임 없이 조깅하는 남녀들도 보이는 빌바오 강변은 너무 좋게 보인다. 우리 조만 밖으로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서는 5조도 눈에 뜨인다. 아침편지 여행객들이 빌바오 밤거리를 다 접수하고 있는 것 같다.
구겐하임 미술관 외관을 둘러보고 길가에 있는 노천카페에 앉아 진한 원두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그 기분이 예사롭지 않다. 든든한 저녁을 먹고 아름다운 빌바오 강변을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산책을 한 후에 노천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입에 대니 커피 향도 새로운 것이 이분들이 오늘 20km를 걷고 버스로 약 100km이 사을 타고 이동하신 분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기가 넘쳐 보인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에 갑자기 커피를 부어서 스푼으로 떠 드시는 것이 아닌가? 취향도 독특하다고 하시는데 우리 조 여성분들이 이것을 '아포가토'라고 메뉴라고 귀띔해주신다. 이런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다니...... 맛을 보니 여성분들이 좋아할 맛이 난다. 3일간의 걷기에서 일을 이야기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사이, 일찍 호텔로 돌아가서 쉬려고 가신 최경해 님과 유미예 님이 호텔을 찾지 못하시고 돌아오신다. 이진환 님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서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는 사이 우리 모임도 하루를 마감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밤 풍경을 보여준 빌바오가 내일은 어떤 얼굴로 우리를 내일 맞이해 줄 건가? 하는 기대감에 잠자리에 든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빌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