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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Oct 01. 2021

잊을 수 없는 수도원의 한 모금의 포도주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_9

걷기 2구간 : [팜플로나] - [ 에스테야 ~ 로스아르코스 ] - [로그로뇨] - 21km
[ 걷기 2구간 지도, 에스테야부터 로스 아르코스 까지 ]



여행의 4일째 날이 밝았다.
어제 걷기 1구간을 완주한 기분과 몸과 마음을 푼 덕분에 잠은 푹 자지 못했어도 컨디션은 최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차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지 새벽 2-3시에 한 번은 꼭 잠에서 깨고 그 이후 시간을 잠을 잘 들지 못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5시에 일어나 상형철 원장님의 집필하시는 원고를 1시간가량 정독한 후에 씻고 식사를 하러 나갔다.  


오늘도 빵과 커피만 마시는 아침. 충분히 먹고 싶으나 식사 준비가 좀 늦어지기도 해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오늘도 2일째 걷기를 시작했다. 오늘 고도원 님이 던져주신 화두는 "고통" "고통이 준 선물" 이었다.  오늘 많이 생각을 하게 하는 화두라 생각된다. 고통을 멀리 떨어뜨리고 관계없이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삶을 살게 되면 우리네의 삶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고통이 준 선물은?

어제보다 기온이 내려간 듯 쌀쌀한 아침이다. 에스테야로 이동하여 걷기 시작했다. 에스테야는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하여 무역 활성화가 많이 이루어진 도시로 에스테야는 '별'을 의미한다며 약 11세기에 형성된 도시라고 하니 꽤 오래된 도시이다.  에스테야부터 로스 사르고스까지는 총 21km로 거리로 고도의 변화 없는 평탄한 오솔길로 이루어진 길이라는 설명이다.


다들 오늘도 활기차게  완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새로이 Pace Maker가 된 같은 조 이영숙 님과의 걷기, 어제와 같이 걷기를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초반부터 speed를 내는데 한편 걱정이 앞선다.  중간에 지칠까 봐..... 

[ 수도원 입구에는 가을 꽃이 활짝 피어 있다 ] 

그래. 어제는 쫓아가기 힘든 위치에서 걸었지만 오늘은 페이스를 맞추어 걸을 수 있는 정반대의 상황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어제와 정반대로 후미에서 천천히 길을 걸으며 순례길이 제공하는 풍광을 음미하자. 넓지 않은 길을 출발하여 얼마 못 가서 순례자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처음에는 왜 안 가고 있지. 아침시간부터 카페가 나와도 대부분 걷기에 집중하는 시간인데? 아침 여행객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무슨 일인가 봤더니 여행 오기 전 책에서 보았던 수도꼭지에서 포도주가 나온다는 이라쳬수도원이었다.


이라체 수도원에는 '포도주의 샘'이라는 수도꼭지가 있다.  수도원 옆 와인공장에 붙은 수도꼭지에서 포도주가 나오는 곳인데 사제들이 순례길을 걷는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포도주를 담가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수도꼭지를 달아서 틀면 포도주가 나오게. 한쪽에서는 물이, 한쪽에서는 포도주가 나온다. 다들 포도주 맛을 보기 위해 서 있다. 정말로 맛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말로만 책에서만 보던 것이라서 우리 일행도 서서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여행 후에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재미있는 구경을 하고 다시 길을 걷는 중에 아까 맛 본 포도주가 맛있다고 하시는데 우리 일행 중에는 아무도 받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 이라체 수도원에서 준비한 포도주를 받는 모습, 한쪽에서는 포도주가 한쪽에서는 생수가 나온다 ]


그런데 다들 아쉬운 표정!

아! 나에게 받아왔으면 하는 눈빛이 저절로 느껴져 발길을 다시 돌렸다. 헐 이렇게 아리체 수도원 포도주가 인기가 있을 줄은.....
기다란 줄을 서있는데 아침 여행객들 외에도 외국인들도 서 있었으며 혹시 수도꼭지에 연결된 포도주통이 얼마나 큰지 모르지만 혹시 내 앞에서 끊어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드디어 차례가 되어 기념사진도 찍고 200ml도 안 되는 생수병에 가득 담아오게 되었다.


어떤 분들은 큰 물병에 받을 때 외국 사람 순례자가 우리 한국 사람들을 본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말도 있어서 내년에는 주의사항으로 넣어야 되지 않을까? 한 모금씩만 받고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여기서 먹는 한 모금은 금주 여행에서 예외라고. 실제로 순례길을 설명하는 책자에도 순례자 대부분은 길을 걷는 중에 술을 마시지 않고 무겁게 포도주를 병에 담아 가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아침 여행객들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것 같았다. 순례자들을 위해 수도원에서 후한 인심을 쓰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감사한 마음에 맛만 즐기고 사진 몇 장만 찍고 갈 뿐이라고 한다.

[ 포도주는 목을 축일만큼 소량을 받아가면 순례자의 센스 ]


포도주를 받고 심부름을 훌륭히 완수한 어린아이 심정으로 건네주니 포도주를 한 모금씩 돌려가며 먹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매우 흡족해하는 모습. 아마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최고급 와인을 마신 후의 표정도 오늘 이보다는 더 좋을 수 없으리라. 고도원 님이 금지하신 금주를 서슴없이 대낮에 행하고  좋아하는 모습은 하지 말라는 행동을 수학여행 가서 몰래하는 음주를 하는 학생들처럼......


그러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여행을 즐기시는구나!  그 한 모금의 포도주는 스페인에서는 얼마든지 싸게 사 먹을 수 있는데. 이 작은 것에 다들 기뻐하는 모습에 우리가 순수해지면서 치유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라체 수도원에서 만들어 놓은 수도꼭지에서 포도주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첫 번째 예수님의 이적이 떠오르는지...

[ 수도원이 있는 동네를 지나가는데 가지들이 이어진 나무들이 있다 ]

차라리 포도주 수도꼭지만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텐데  물과  포도주가 같이 나오니 혹시 해가 지면 물이 나온 곳에서도 포도주가 나오는 기적이 생기지는 않으려나.... 상상도 해본다.


순례길에 펼쳐진 길은 평탄한 길이고 햇빛도 비치다가 구름도 끼고 적당히 바람도 불어준다. 온통 벽이 푸른 덩굴로 덮인 주택가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나무 등을 구경하며 지나가니 멀리 보이는 산 정상에는 요새 같은 성도 보이고 언덕 위를 넘어서니  예쁜 성당이 보인다. 하늘에는 유유히 나는 솔개 같은 새가 보인다. 작은 새와 달리 날갯짓도 많이 하지 않으면서 바람을 타고 유유히 나르고 있다. 아스케타에 처음으로 앉아 휴식을 추하며 커피와 과일을 나누어 먹는다. Sue님, 김명조 님, 이영숙 님과 같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쉬어가는데도 서로를 위해 커피 한잔을 사겠다는 이런 풍경. 너무나도 좋다. 이런 분위기

[ 넓은 들판길을 페이스 메이커와 길동무가 되어 걷는 뒷모습은 너무 아름답다 ]


더 걷다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이곳은 우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 잡은 곳. 같이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가운데 조송희 님이 순례자 길을 상징하는 조가비를 사신다고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고도원 님과 윤나라 실장님의 배낭에 달린 것을 보고서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조장도 시켜주는 영광도 주셔서 우리 조원을 위해 순례자 길을 상징하는 조가비 기념품을 13개를 구입했다. 나누어서 우리 6조가 똑같은 조가비를 달고 다니는 모습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점심 중에 우리 일행을 지나가는 한국 학생과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는 우리 큰애도 한 링컨학교 수료생인데 한 명이 수료생이고  이들은 프랑스 생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고 있다.  산티아고 길을 마치고 포르투갈로 내려가는 길도 걸을 계획이라고 하니 너무나도 대견하고 그 아이들의 눈빛과 인상이 너무 좋고 이쁘게만 보이는지. 그들은 고1과 고2와 선생님 3분.


그들에게 먹을 것과 모든 것을 나누어주시는 여행객들, 또한 유로를 집어주시기도 하는데 그들이 너무 이뻐서 일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가는 길에 축복이 있으리라. 40-50대 넘어서 그것도 800km를 온전히 걷는 것도 아닌데 10대에 이 길을 걸어가는 그들이 부럽고 이 경험이 그들 앞에 펼쳐질 인생을 얼마나 멋있게 할는지 상상이 간다.


그리고 계속되는 순례길. 오후 들어서는 바람이 세차지고 다들 외투 하니씩 꺼내 입고 복장을 단단히 한다. 나만 반팔을 입고 있다. 다들 건강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가방 속에 있는 점퍼를 꺼내 입기 귀찮아서 인지 모른다. 점심 전부터 힘들어하는 이영숙 님을 재촉하면서 걸음을 바삐했다. 길은 쭉 직선으로  뻗어 있고 하늘은 오전과 달리 비는 오지 않지만 하늘은 흐리고 구름이 매우 낮게 깔리어 있다. 길은 전부 누런 황톳길로 자로 잰 듯한 직선 길과 가로수로 뻗어 있고 그 길을 간다. 길을 가다 돌로 만든 이정표 위에 멋있는 등산화 한 짝이 올려져 있고 등산화 안에는 야생화가 심겨 있는데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발상이 신선했다. 

[ 산티아고 가는 길을 상징하는 조가비와 노란 화살표, 그 위에 등산화에 핀 들꽃 ]

누군가는 해 놓았을 텐데.  어떤 사연이 있는 건지?

아니면 순례자들이 보고 감탄하라고 했을까, 다들 사진기로 한 장씩 찍고 있는데 난 누구의 작품인지 마음에 담고 싶다.

그러나 힘든 길은 아니지만 쉽게 끝나지 않는 길을 걷는다. 건물은 하나 보이지 않고 낮은 언덕만 보인다. 다들 저 모퉁이만 돌면 최종 목적지가 보이기만을 기다리며 걷는다. 최종적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로스 아르코스를 도착했을 때는 시계는 4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어 뒤쳐진 발걸음을 계속 걷고 있다.  

[ 가을 걷이가 시작되는 스페인, 대부분 농작물이 수확되어 있는 길을 걷는다 ]
[ 때로는 같이, 어떤 때는 혼자서 길을 걷는 순례길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

도착하여 성당 주변에서 사진도 찍고  알베르게에 들어가 스탬프도 찍으니 벽면에는 조가비 형상을 크게 만들어 놓고 약 26개의 나라말로 적혀있다. 'Welcome' , 'VITE  JTE', '반가워요' 등등 한국말도 포함하여 쓰여있고 빈 팻말도 보인다. 쓰여 있지 않은 것은 새로운 말도 넣으라는 배려. 그리고 보이는 것은 여기서부터 예루살렘은 3580km, 로마는 1746km이고 산티아고는 아직도 640km 떨어져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도착하여 사진을 찍고 마을은 작아 특별히 돌아본 것이 없기도 하고 어제와는 달리 맨 후미로 도착했으니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이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  우리 숙소가 있는 로그로뇨의 NH Herencia Hotel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서니 어제와는 방 크기나 시설이 정말로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긴 늘 좋을 수는 없으니까?

[ 순례자 여권을 찍어주는 카페 안에 각 나랏말이 적혀 있다 ]


오늘의 걷기가 끝나서 짐을 풀고 식사를 해야 하는데 먼저 조별 모임을 하였다. 그 이유는 호텔에서 준비한 저녁이 8시가 되어서야 준비된다고 하니 시간이  더 당길 수도 없어서  6시 30분 704호실 조송희 님과 최영미 님의 숙소에서 모여서 오늘 산 조가비를 나누어주고 좀 더 개인적인 여행 참가 이유를 알기 위해 한분씩 5분이란 시간을 두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틀 전 전체 모임과는 달리 정말로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온 여행, 그리고 개인의 신상 털기,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니 한결 더 가까워지게 되고 서로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어 더욱 좋은 것 같다. 더욱이 찬준 님은 부인이신 재연님의 권유로 오셨는데 신청서 작성란에 '임재연 님과 같음'이라고 간단히 쓰셨다는 말에 빵 터졌다.  


우리 조는 조송희 님. 유미예 님, 최경해 님, 김명조 님. 이지환 님과 임은희 님은 다른 아침여행에 참석한 경험이 있고 나머지 반인 상형철 원장님, 최미영 님, 원은미 님, 이영숙 님. 박찬준 님과 임재연 님 그리고 나를 포함해서 아침여행이 처음인데 경험자와 여행을 처음 온 분으로 구성되어 정말로 환상의 구성이었다. 앞으로의 남은 여행이 기대되는 저녁이다.


스페인에 와서는 밤에 돌아다닐 수 없어 팜플로나에서는 늦은 시간에 나가 봤는데 호텔이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돌아온 적이 있는데 여기는 성당도 멀지 않아 걸어서 5분. 성당으로 가는 길은 얼마 전 케이블 TV '꽃보다 할배'에서 본 것과 같은 백열등의 노란 불빛이 자아내는 유럽의 밤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지만 성당 주위를 둘러보니 상가와 음식점이  늘어서 있고 사진을 몇 장 찍으니 밤의 길거리 풍경이  너무 좋아 보였다. 내일부터는 우리 조원들을 꼬드겨서 밤에도 걷기 산책을 해야겠다. 이 좋은 곳을 낮만 보고는 갈 수 없으니까,.....

[ 순례자들을 상징하는 동상이 길 거리에 세워져 있다 ]
[ 저녁 후에 자유 시간에 다닌 도심의 야경은 정말로 아름답고 황홀했다. 특히 조명이 더욱 멋지게 만든다 ]

걷기 2일 차도 이렇게 숨 가쁘게 흘러갔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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