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속에서
빛나고 있는 코리아나

: 쿠바 여행의 둘째 날_한국 문화원_1

by 지음

어제 밤늦게 잠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몇 번이나 잠이 깬다.

시차가 적응되지 않기에 한두 시간 자다가 깨고 다시 잠을 깨는 것을 반복했다. 어둡기 시작하던 창문은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한다. 새벽 5시를 넘어 창문을 열어보니 아직 어둡다. 다소 바람이 세게 부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시간 정도를 누워 있으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내도 벌써 잠이 깬 것 같다. 부부가 여행 와서 웬일로 따로 자느냐고? 어젯밤에 들어서니 싱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시차에 적응하려고 비행기에서 잠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같이 한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따로 자는 게 좋을 것 같다. 탱크 지나가는 소리 같은 나의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멀리 온 타국 땅에서도 잠을 설치게 할 수 없지는 않은가


20200202_071652.jpg [ 쿠바에서 맞이하는 첫날 아침, 멀리서 해가 붉게 떠오르고 있다 ]


객실 창 밖 먼 곳에서 빨간 기운이 비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쪽이 일출이 시작되는 동쪽인 것 같다. 창문 밖 정경은 평화로운 한적한 마을처럼 느껴진다. 왼쪽에는 호텔의 야외 수영장이 보이고 정면에는 야자수 등이 곳곳에 심겨 있는 푸른 정원이다. 오늘 하루 일정은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것이다. 일찍 나갈 채비를 하고 아침에 호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후문 쪽으로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조용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른 아침이라 호텔 식당은 한적했다. 일행 중 두 분이 벌써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계셨다.

20200202_065904.jpg [ 숙소에서 내려온 창 밖의 풍경, 호텔 내에 야자수와 야외 수영장이 보인다 ]


아침은 보통 다른 곳의 호텔 조식과 비슷했다. 빵과 햄, 그리고 열대 과일 주스와 과일 여러 가지와 오믈렛 정도이다. 처음 보는 듯한 음식은 그냥 넘어가고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아내와 호텔 조식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다. 어제 긴 하루에 먹은 끼니 수만 해도 5끼가 넘으니 시장하기보다는 아침이라 그냥 넘어가기가 아쉬운 것이다. 참새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우리와 같이 아침을 즐긴다. 이곳저곳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20200202_074027.jpg [ 쿠바 호텔에서의 첫 조식, 생각보다 메뉴는 다양하지 않다 ]


간밤의 피로가 다 풀렸는지 모르지만 로비에 제대로 다 모인 것 같다. 우리 부부도 그랬지만 아직 피로가 덜 풀린 것 같이 보인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아바나시에서 외국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미라마르(Miramar)이라는 곳이다. 호텔 주변의 도로는 차들이 정차되지 못하고 대사관들이 모여 있는 다른 아바나 동네보다 깨끗한 곳이며 신시가지에 속한다. 아바나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만큼 오래된 건물과 새로운 건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은 옛날 건물보다는 현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여기가 쿠바인지 다른 도시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곳이다.

Four season 호텔_1.jpg [ 호텔 주변에 늘어선 건물들, 대사관 지역이라 현대식 건물들이 꽤 많다 ]


아침에 처음으로 방문할 것은 쿠바 한국 문화원이다. 아직 쿠바와는 정식 수교가 되지 않아 대사관이 없고 멕시코에서 이곳의 행정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공식 기관이 아직 없다고 봐야 한다. 비행기로 만 15시간 이상 걸리는 먼 타국 땅에 한국 사람이 살까 했지만 실제로 한인 후손들이 약 1천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20200202_091805.jpg [ 쿠바의 호세 마르티 한국 쿠바 문화 클럽, 한인들 모임의 중심지이자 모든 곳 ]


그 아픈 역사는 약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 멕시코 농장주들은 부족한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중국인들을 데리고 와서 일을 시켰다. 이것도 여의치 않아 일본에 노동력을 구하다가 일제 시대에 힘들게 살던 한국인들이 거짓 구인광고에 속아 1,033명이 1905년 4월 4일 인천을 떠나 배로 한 달 반 정도가 걸리는 멕시코로 오게 된다. 오자마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노동과 가시 돋친 에네껜이라는 선인장 농장이었다.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노예에 가까운 삶을 그려낸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깽’이라고 한다.




고생하던 농장에서 1909년에 계약이 끝나자 288명은 1921년에 쿠바의 마나띠에 도착하게 된다. 당시 쿠바는 사탕수수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으나 사탕수수 값이 폭락하자 다시 에네껜 농장으로 다시 일하기 위해 마탄사스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머나먼 타국 땅에서 일한 것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나라의 독립자금으로 보냈다고 한다.

쿠바속의 한국인.jpg [ 쿠바 속의 코리아나 @Artistway : Travel for Life ]


쿠바의 혁명과 공산화 과정 속에서도 한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오고 있다. 2014년 8월에 한국 쿠바문화 클럽이 세워지게 되었다. 약 1000명에 해당하는 한인 후손들의 결속을 다지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묶었던 호텔에서 약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 오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한적하고 조용한 주택단지에 한국 쿠바문화클럽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버스가 정차하니 맞은편 흰색 2층 건물에 두 분이 우리를 맞이하러 나와 계신 모습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 한 분은 한국 사람이고 한 분은 쿠바 현지인처럼 보인다.


쿠바한국문화원장과 따님.jpg [ 한국 쿠바 문화 클럽이 안토이오 김과 그분의 딸 ]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분은 안토니오 김이란 분으로 이곳에 책임을 맡고 계신다. 실내로 들어서니 민족의 영웅인 호세 마르티와 카스트로 사진과 아울러 한국 지도가 걸려 있다. 다른 편은 고운 한복과 한국을 상징하는 탈이나 붓글씨와 경복궁으로 보이는 모형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최근의 발전한 한국의 사진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한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레시피를 알려주고 건강 강좌를 열고 있다고 한다. 여행 가기 전에 로이스가 이곳에 기증한 물건들을 가져다 달라고 한 부탁을 전부 잊지 않고 이곳에서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여행 가방 안에 그득히 담아온 우리들의 마음이 안토니오 김 선생님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 방명록에 쓰신 글들을 보면 같은 민족이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한국문화원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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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속의 한국인을 위한 발음기호.jpg
한국문화원의 한복.JPG [ 그리운 고국인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 현대와 전통에 관련된 것을 전시하여 한인 자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


이곳 쿠바에서의 한인들은 약 1068명이 전국 각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공산국가라서 이방인이라고 교육이나 의료에서 차별은 없이 쿠바 현지인들과 동등하게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인종과 결혼하지 않고 한국사람들끼리만 혼인하여 생활하시는 분도 25명이 계신다고 한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자신의 핏줄을 잊지 않고 그 후손들에게 뿌리를 알려주고 그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는 이곳에 우리 정부나 많은 지방 단체의 후원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조국은 이들을 잊었을지 몰라도 이들은 떠나온 조국을 잊지 않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힘들게 번 돈을 보냈으니 이제는 조국이 이들을 기억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쿠바의 관광의 문이 열려서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오게 되면 쿠바를 여행하기 전에 이 곳을 먼저 방문하는 통과의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게 짧게 약 1시간의 만남을 마치고 돌아가게 되었다.


한국문화원에서 단체사진.jpg [ 한국 쿠바 문화 클럽을 위해서 가져간 여행친구들의 선물과 단체 사진 @Artistway - Travel for Life ]

쿠바에서 첫째 날의 여행은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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