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 3일차_코히마르_산티아고 데 쿠바
우리는 내친김에 헤밍웨이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작품, 그를 노벨 문학상을 받게 함으로 전 세계 유명한 소설가로 만든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작은 시골마을로 향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바나에서 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코히마르(Cojimar)’라는 곳이다. 이곳은 실제로는 아주 작은 어촌마을이다. 실제로는 별로 볼 것이 없지만 단지 노인과 바다, 그리고 헤밍웨이로 인해 일약적으로 쿠바에서 유명해지고 많은 관광객들이 한 번씩은 들러가는 곳이다. 버스는 우리를 그 마을에 들어서 어느 바닷가 근처에 내려주었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할 식당이다.
식당에는 우리가 먹을 테이블이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다른 관광객도 없었고 노래를 불러주는 밴드도 없는 작은 어촌마을 레스토랑이었다. 오랜만에 한 줄로 세팅되어 있어 18명이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 얼굴을 마주 보며 식사하게 되었다. 선택 음료를 시키고 나니 오전에 협동농장에서 본 야채가 테이블에 오른다. 한 보따리 사온 야채를 점심 식당에서 잘 씻어서 놓으니 보기만 해도 좋고 다들 자기 접시에 양껏 덜어 놓는다. 이렇게 쿠바에서는 싱싱한 야채를 먹기 힘들었던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바닷가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푸르게 펼쳐진 바다와 새파란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한층 더 들뜨게 하는 것 같다. 바닷가 어촌 마을이라서 그런지 여기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 것이 많지는 않았다. 방파제 근처에는 나이 든 할아버지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낚시를 하고 계신다. 우리 누님들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스카프를 날리면서 인생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어디를 찍더라도 멋진 사진이 카메라에 담긴다. 조금 있다 보니 멀리 헤밍웨이 흉상이 바다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기타를 든 한 중년 남자가 합류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타나메라’의 노래를 부르고 접근한다. 어제 배운 살사의 리듬이 기타 노래에 맞추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나기 시작한다.
낮술도 하지 않았는데 헤밍웨이 흉상 앞에서 우리는 흥겨운 댄스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이어진 남자의 관타나메라는 ‘원달러 내라’로 들리기 시작했다. 보통 쿠바에서는 식당이든 아니면 관광지에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이 있다. 이런 악사들에게 반드시 팁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기분에 맞게 보통 1달러, 또는 1 쿡을 주곤 한다.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인데 여행 3일 차인 우리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서 원 달라를 잘 건네게 되었다. 길거리 악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이제 공항으로 향해야 한다. 국내선을 타고 오늘 목적지인 공항으로 향해야 한다.
공항을 가기 전에 빠드리샤가 한 곳을 들러야 한다고 데려간 곳이 있다. 그곳은 ‘존 레논 공원’이다. 영국에서 태어나서 비틀스의 멤버로 유명했던 존 레논, 멤버에서 탈퇴 후 여러 가지 기행으로 유명하기도 했고 오노 요코와 결혼 생활 후에 결국은 미국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 카스트로는 존 레논의 노래를 금지시켰는데 몰래 가지고 들어와서 듣는 음악까지는 막지는 못했다. 존 레논이 한때 미국을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자 존 레논의 노래를 해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존 레논의 죽은 20년 후에 존 레논의 동상을 만들어 이곳에 레논 공원을 만들었다. 공원은 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평범한 공원인데 공원 중앙에 존 레논의 형상을 한 벤치와 일치화된 동상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존 레논이 앉아 있는 벤치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사이에 한 분의 할머니가 갑자기 다가오더니 레논 동상에 화룡점정을 하신다. 레논의 은테 안경을 동상 코 끝에 걸쳐 놓는다. 안경을 씌어 놓으니 정말 레논이 앉아 있는 것 같다. 관광객들이 하도 안경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평소에는 동상에 안경을 걸치지 않다가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을 찍을 경우 조용히 나타나 동상에 안경을 씌어준다. 물론 이 할머니도 공무원이다. 하루 10시간 정도 근무하면서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다. 존 레논 동상 밑면에는 유명한 ‘이매진’의 가사가 적혀 있다.
산티아고 데 쿠바로 가기 위해서는 국내선 공항인 호세 마르티(Jose Marti) 공항에 도착했다. 크지 않은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수화물의 부치고 여권을 보여주고 비행기 티켓을 받았는데 황당했다. 티켓에는 전자식이 아닌 공항 직원의 수기로 좌석번호 등을 적었다. 아무리 그래도 비행기 티켓팅을 사람 손으로 직접 기재하다니 이건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아기를 안은 여성이 우리 일행을 무시하고 티켓팅을 한다. 여기는 어린 유아를 데리고 있으면 프리패스로 가장 먼저 티켓팅을 해준다고 하니 이런 점은 우리 본받을 만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일반 국민의 월급이 약 $20 수준인데 먼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비행기를 탈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실제 국민들을 위한 비행기 좌석은 약 10-20%를 배정하고 금액도 외국인 금액이 아닌 국민을 위한 금액으로 따로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키 티켓이 구하기도 쉽지 않고 금방 동이 나기 때문에 우리 가이드도 국민용 티켓으로 이동을 한 기억은 별로 없다고 한다.
티켓팅을 하고 소지품 검사를 하러 가는데 그렇게 세밀하게 하지는 않는다. 일행 중에는 들어가다 티켓에 미 기입된 것이 있어 다시 티켓 창구로 가서 정정을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미안하거나 머쓱한 표정은 없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열 받은 관광객들을 대한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곳은 그다지 특별한 것이 없다. 오래되어 균형이 무너진 철제 의자와 한쪽에서는 비닐 종이컵에 파는 커피와 중간에 햄 한 장 정도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판다. 이것이 국내선 공항의 편의 시설의 전부이다.
비행시간이 되어 내려가니 비행기만 공한 중앙에 한 대만 있고 거기까지 걸어가야 했다. 비행기는 제트 엔진이 아닌 프로펠러가 달린 쌍발기이다. 좌석도 고속버스처럼 2-2로 되어 있다. 일부 불안한 마음을 앉고 저녁 6시 40분 발 비행기는 하늘로 높이 올랐다. 야간 비행기에서 땅을 내려다보면 불야성 같은 것이 보이는데 쿠바의 전력상황이 좋지 않은지 아바나를 포함해서 어느 도시를 지나가더라도 대부분 캄캄하다. 약 2시간 만에 쿠바의 동쪽 끝 산티아고 데 쿠바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카스트로의 혁명기지이며 혁명의 근원지로 유명하다. 늦은 시간에 호텔로 들어가는 호텔이 도시 한 중앙에 있어 대성당이 있는 공항에 짐을 내렸다. 각자 자기 짐을 끌고 호텔로 이동해야 하는데 약 200m 정도는 이동해야 한다.
늦은 저녁에 도착해서 호텔 식당이 문을 닫기 전에 우리는 먼저 식사를 주문했다. 메뉴는 이제 익숙하다 4가지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주문했다. 61년생 경자년 누님 중 파란님이 각 테이블마다 와인 한 병씩 쏘셨다. 저녁 10시 정도가 다 돼서 먹는 저녁도 거기에 와인 한잔을 걸치는 우리의 저녁은 즐거운 저녁 만찬이었다. 이 저녁 만찬이 오늘 밤을 더 불태울지는 아무도 몰랐다. 최소한 이때까지는 말이다
저녁을 먹고 갑자기 야간 모임이 급조되었다. 각자의 방에 있는 잔을 가지고 호텔 루프 탑으로 모이라는 지령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부부도 잔을 들고 방을 나서니 벌써 옥상으로 올라가기 위한 우리 일행들이 보였다. 호텔 루프 탑은 영업을 끝냈고 우리 일행이 테이블을 모아 자리를 세팅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소주와 작은 전기 포트와 여러 술이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안주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필라르 형님은 한국에서 포기김치 1kg를 공수해왔다. 거기에 식가위까지 가지고 오니 더할 나위 없는 다름 아닌 진수성찬 술자리가 열렸다.
우리는 이제야 제대로 통성명과 여행을 오게 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밤하늘에는 달이 떠 있고 테이블에는 한국 소주와 안주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해도 술술 넘어가는 소주에 술술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러 상황극과 전국 각지에서 온 사투리 말투는 그동안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했다. 먼 타국의 호텔 루프탑을 전세 놓고 이렇게 한국 사람들끼리 이야기와 써니 누님의 멋들어진 노래가 더해지는 사이 밤은 깊어만 갔다. 호텔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서는 이 밤을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지 젊은이들이 즐기는 클럽이 건물 꼭대기에 있는 것 같다. 거기도 아마도 호텔의 맹 상층인데 거기에서는 젊은이들이 여기에서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이 밤이 쉬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