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딴짓 좀 하겠소_2
어른이란
'한몫'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몫을 맡아서 할 만큼 자랐다는 의미다.
아이로만 알았던 아들이 커서 아버지 대신
역할을 해낼 때 '이제 커서 한몫을 한다'라고 표현한다.
- 김준의《섬: 살이》중에서 –
사추기를 같이 지나고 있는 나가소사에게
어느 날인가 화장실에서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낯선 듯한 사내 얼굴을 볼 때가 있어. 그리고 나이를 기입하는 문서에 내 나이를 적게 되면 ‘어휴, 꽤 먹었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건가? 얼마 전에 휴일 날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흥미 있는 프로그램을 하나 발견했지. 요즘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리는 유명강사이자 작가들이 1시간가량을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어. 모 케이블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어쩌다 어른'이라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 프로그램 제목과 강사들의 강의 내용이 괜찮아서 방송 처음부터 한 편씩 골라볼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 웬만해서는 지나간 방송을 찾아보는 성격이 아닌데 프로그램 제목이 주는 느낌 자체가 요즘 내가 하던 고민과 딱 맞아떨어지고 재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줄 곧 보게 되었던 것 같아.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이 모여 앉아 19禁 이야기를 포함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거야. 기존 토크쇼가 연예인의 신변잡기를 나누는 것이라면 이 방송은 프로그램 제목 그대로 갑작스럽게 된 어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생활하다가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새 어른이 된 모습, 잊고 살았던 "나"를 발견하게 되지. 내 생각에는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는 제작자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아.
누구나 어렸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것도 잠깐, 자기도 모르게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왔던 거야. 그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지. 그 가운데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 현실이었던 것 같아. 오직 사회 분위기가 주위를 돌아보는 시간을 주기보다는 목표를 정해주고 그것을 달성하도록 요구했지.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생각이 심어졌고 그렇게 우리는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고 지금을 살아가는 생활인이 되었던 거야. 우리의 마음보다 몸이 목적지에 먼저 도달하도록 우리는 스스로를 다그쳐 몰아세우는 것이 일상으로 이어지고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고 대접을 받고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되었던 것 같아. 무엇이 잘한 것이고, 무엇이 좋은 건지 모른 채 말이야.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다 어른’이 된 것 같아. 특히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경제 발전을 이룬 것처럼 말이야.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보고 놀라워하는 것은 너무나 빠른 시간 내에 성장했다는 거지. 거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한 것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지. 다른 나라들이 몇 백 년 동안 이루어 온 일을 우리나라는 몇십 년도 되지 않아 이루어 내었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자랑이자 그것을 이루어 낸 우리 부모님 세대의 자랑이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빠른 성장의 부작용을 다음 세대나 문화가 겪고 있는 것 같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다 보니 빨리 하는 것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고 그런 것에 우리도 모르고 익숙해지고 길들여진 것 같아.
지금은 그런 과거의 영향으로 "어쩌다 어른"이란 부작용을 겪고 있지. 어른이 되는 과정을 착실히 준비하지 않은 갑자기 몸만 큰 어른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의 재미있는 추억을 쌓은 학교보다는 성적을 경쟁하는 학교에서 자라서 몸만 성장한 어른이 된 후유증이라고 할까. 몸과 마음의 조화롭게 성장해야 하는데 균형이 맞지 않도록 자라온 것 같아.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어른 노릇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지. 많은 것을 놓치고 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나도 많아. 10대에 해야 하는 방황과 고민, 20대에 해야 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추억 등이 있는 듯, 없는 듯 초스피드로 지나갔어. 제 때에 맞는 고통과 성장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성장만 한 것 같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다는 느낌, 삶과 생활이 조화되지 못하는 생활, 오직 바쁜 것이 선한 것이라 평가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은 아닐 거라는 말이지.
나는 이제라도 우리가 삶의 속도를 줄여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삶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삶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될 거야. 나중에는 그것을 후회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만 같아. 소설책의 결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첫 장부터 그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나가는지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데 우리는 건너뛰어 결론만 먼저 알기를 원했던 것 아닐까. 우리의 삶에는 때에 맞는 리듬과 박자가 있다고 생각해. 그 박자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몸으로 그 박자와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과정에서 우리 삶이 다시 살아나는 비결이 숨겨져 있는 것이라 생각해 왔는데 말이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의 트랙에서 때로는 내려와 두 발로 천천히 걸어가야 해. 오롯이 천천히 걷는 삶 속에 풍성함을 찾아야 하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가끔은 2년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을 때의 느낌처럼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나의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냄새를 맡고, 머리 위로 내려쬐는 태양의 강렬함도 느끼고, 걷다 힘들면 커다란 나무 밑 그늘에서 땀도 식힐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두 발로 내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자기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야. 때로는 조용한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자신과 대화를 하듯 말이야.
그리고 많은 사람과 살가운 대화를 하고 웃으며 떠들면서 즐길 줄 알아야 해.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지. 나와 같이 있는 가족과 친구, 그들과 이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거야.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허름한 주점에 앉아서 막걸리에 두부 김치를 먹는 여유도 부릴 줄 알아야 하지. 그러다 보면 우리 몸에 맞추어 우리의 마음과 정신도 어른이 되어가리라 생각해. 특히 살아가는 것이 조금씩 무엇인지 알 것 같고 인생길을 같이 걸어가는 당신과는 더욱 그래야겠지.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어른이 되는 법을 각자 배워야 해.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질 줄 알고, 슬퍼할 일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따스한 마음,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위하는 사랑하는 가슴 등을 배우면서 말이야. 어쩌다 맞은 40대의 나이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고 재정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 인생의 중간 정도를 살아온 마흔의 나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아야 하기도 하고. ‘어! 어쩌다 마흔이야’ 하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그리 반갑지도 않지만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마음속에서 늘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조바심 나게 했던 것이 우리가 인생의 치열한 한 여름을 지나고 있다고 알려주었던 것이 아닐까.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다만 그 어른이 아직도 자신 내부 속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자신에게 어른이 될 시간을 충분히 선물로 주지 않았고 기다려 주지 않았던 것 같아. 우리는 '어쩌다 어른'에서 '이제야 어른'이 변해가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살다가 어쩌다 인생을 마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깊은 우물물을 길어내어 그 물을 나누어 주고 참 물맛을 알아가는 어른인 40대를 살아가 보자.
이제라도 마흔이 주는 의미, 어른이 된다는 의미를 하나씩 찾아보자. 40대라는 때는 유혹과 불혹이 서로 넘나들고 그 경계가 모호한 시기인 것 같아. 그래서 40대가 더 살고 싶은 인생의 황금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 이제부터는 우리가 지나는 이 시기를 ‘어쩌다 마흔’에서 ‘이제야 마흔’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걸으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걸어가는 시간을 즐겨보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