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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음 Mar 13. 2021

사추기(思秋期)는 언제 오려나?

여보 딴짓 좀하겠소_1


 

조급해하지 마라, 
 늦은 나이란 없다.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게는 불혹이 아니라 '미혹'이었다.
 마음도 조급해졌다. 말로만 듣던 중년. 
 아! 지금까지 내가 이뤄놓은 게 뭐가 있지? 
 나는 지금 잘 사는 것일까?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새벽잠이 많은 편인데도
 새벽에 자꾸 깨기 시작했다.
 
 - 이주형의《그래도 당신이 맞다》중에서 –

사추기를 같이 보내고 있는 의 장 중한 람에게


학교 다닐 때 가끔씩 시험문제로 인생의 시기를 묻는 질문이 나왔던 때가 있었지. 나이 때 별도로 부르는 별칭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시험에 나오니까 아무 생각 없이 암기했던 것 같아.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40세를 가리키는 불혹(不惑)과 70세를 말하는 고희(古稀)라는 단어는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 시험에 가장 많이 출제되어 그런지는 몰라도 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단어들이야. 두 단어 중에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40세를 가리키는 ‘불혹’을 나와 당신이 넘은 지도 꽤 되었네. 


39세에서 40세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만 나이까지 들이대며 30대라고 우기다가 정말로 40대가 된지도 꽤 시간이 흘렀어. 40세가 되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인생관이 확고히 굳어질 줄 알았던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흔들리는 때가 40대 때라는 생각이 들어.  40세라고 하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든든한 자리매김을 하는 믿음을 줄 나이일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당신이 바라보는, 40대의 남편의 모습과 내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네. 당신이 보기에 내가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사는 남자로 보였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네


우리 아들 중 둘째가 한참 사춘기를 겪고 있지. 한창 몸의 성장이 자기도 모를 정도로 급격히 활발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를 사춘기라고들 하잖아. 아마도 봄 춘(春) 자를 갖다 붙인 것은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생각이 많아지고 호르몬 활동도 활발해지는 나이라고 해서 사춘기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아마도 따뜻한 봄이면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아지랑이처럼 피어 올라서 봄이라고 계절을 붙인 것 같아.


그러다 열정으로 가득한 청년의 시대를 살아가다가 조금씩 사회가 무엇인지를 알아가고 순응도 하는 나이 때를 맞이하는 것 같아. 40대를 언제까지 ‘불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유혹에 약하기에 “유혹”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  40대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인 것 같아.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각의 틀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까? 평생을 가지고 갈 생각의 틀을 다듬는 시기잖아. 또한 40대는 무언가 할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많은 실패와 좌절, 그리고 조금의 성공으로 인해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 같아.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다고 생각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을 잘했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것이 제자리를 잡지 않아서 많이 흔들리고 갈등하는 나이가 또한 40대라는 나이인 것 같아. 이때는 봄 춘(春)보다는 바람이 부는 가을 추(秋) 자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세상살이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많고 이런 생각을 정리해서 자기만이 갈 길을 정리하는 시기를 사추기(思秋期)라고 부르고 싶어.  


그렇다고 40대를 사추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생각이 성숙되고 남에게 충고할 만큼의 올곧고 제대로 된 생각들은 아니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고민을 하는 시기인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해. 10대 때에 하는 고민과 달리 아마도 실제적인, 실생활에 밀접한 고민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에 대한 고민과 밀접한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30대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문득 이제는 이런 관심이 자신에게 향하는 시기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아니면 이제야 정말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즉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가 진정한 사추기인 것 같기도 해.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가?'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죽음은 무엇인가?

여보,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사추기를 언제부터 시작한 것 같이 보여? 나 스스로 언제부터 시작한 지를 생각해보면 정확히 그 시점을 정확히 꼬집어서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로 회사 일을 하느라 바빴고 아이들을 키우고 돈을 벌어 집을 사는데 정신없이 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마흔이라는 고개를 넘고 있던 나를 발견했던 것 같아. 그러면서 정말로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속에서 던져지기 시작했지. 거기에 맞는 답을 찾는 과정이 바로 이때, 내가 격은 제2의 사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비슷하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증상을 나만이 겪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내 또래 친구들이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고 있는 것 같아. 평소에는 서로 이런 마음을 내비치지 않다가 어쩌다 술 한잔을 마시는 회식자리나 조용하게 커피 한잔을 하게 되면 누군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서로 격하게 공감을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은 것 같아. 알고 보면 서로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아. 다 같이 사추기를 정도는 다르지만 각자만의 방식대로 혹독하게 겪는 것 같아. 다만 그것을 남자들은 여자들과 달리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을 뿐이지.


사춘기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심하게 겪기도 하고 아니 봄바람처럼 간단히 겪기도 하는 것 같은데 중년 남자들이 겪고 있는 사춘기는 좀 다른 것 같아. 인생에 대한 생각과 걱정, 지나온 날에 대한 회한, 그리고 현재의 위치의 걱정, 다가올 중년시대에 겪어야 할 많은 걱정들로 인해 힘든 시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 때로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 우리는 좌절하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도하기도 하지. 매번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기도 하고 사추기의 증상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아. 당신도 눈치를 챘는지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우울모드로 들어서는 것 같기도 하고 괜한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해. 내가 당신과 아이들에게 그러는 것을 나 스스로가 느꼈을 정도니 말이야. 그런 시기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타나다가 어떤 때는 조용히 사라져 실제로 그것을 겪고 있는지 모를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사추기는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사는 남편, 아내 그리고 내 친구들이나 형제들도 겪고 있지.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이를 누군가가 지켜봐 주고 격려해준다고 하면 그처럼 고마운 일이 없을 텐데 말이야. 하지만 그런 시기를 겪고 있는 우리마저도 그 증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모른 채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따뜻한 말 한 마디나 같이 들어주는 잠깐의 여유가 서로에게 참 도움이 되는데 말이야. 이 시기가 우리 인생에 있어, 나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 줄 알지 못하고 서로서로 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많은 인생의 선배들을 보면 이런 사추기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좀 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


어떤 사람은 이 시기를 생각만 하다가 보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동안 삶을 다시 한번 반추하여 삶의 방향을 변환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는 것 같아. 이런 시기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목소리를 들어보고 자신을 찾는 ‘절대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이런 고독의 시간을 잘 보낸 ‘월든’의 작가나 스콧 니어링의 부부처럼 아무도 없는 한적한 숲 속으로 들어가 은둔의 시간을 가진 것처럼 나에게도 이러한 절대 고독의 시간이 바로 이때가 아닌가 해.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당신도 비슷한 시간을 거쳐야 할 것 같아. 아니면 당신은 벌써 그런 고민의 시간을 끝낸 건가. 여자들은 대부분 갱년기라는 시간을 통해서 겪어내고 있는지 모르지. 아마도 남자들과는 다르기는 할 거야.


아침에 한 생각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가 저녁이 되면 아닌 것 같고, 몇 달 전에 정리된 것 같기도 한 생각들이 계속 바뀌고 수정되어 가는 과정이 바로 사추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아. 이 사추기를 통해 내가 살아온 40여 년의 생활이 좀 더 성숙되고 멋있는 삶의 방향을 바꾸었으면 해. 지금까지는 의무로 살아왔다가 하면 이 절대 고독의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고민하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오히려 이런 느낌은 10대 때 사춘기에는 느껴보지 못하는 어떤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느낌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인 것 같아. 여보, 인생에 있어 이런 사추기가 나와 당신에게 주어졌음을 고마워하자. 이런 시간, 40대의 사추기를 혹독하게 겪은 만큼 우리 인생도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좀 더 높은 고도에서 나의 삶을 돌아보면 중요한 방향 전환의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잖아. 여보 앞으로의 삶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기대하며 살자. 마음과 고민이 던져주는 불안의 실체에 대해 생각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해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무르익어 가자. 그리고 해야 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삶의 지도를 그려 나가자. 우리 둘이 같이, 또 각자 따로 말이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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