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중년의 시기에 멈추어 서서
" 누구도 어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성장하는 내 몸은 알을 깨고 성숙하라고 소리쳤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젊은 날의 화두가 다시 말을 걸어오는 마흔은
그래서 제2의 사춘기이다."
살아가는 방법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스스로 살아간다. 커다란 강줄기에 흘러가는 배처럼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 사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을 지나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 청년이 되어서는 학교를 나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많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시작한다. 남들보다 멋있게 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잊어버리고 어느새 모르는 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지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벌서 나이가 40대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많은 책임과 의무감 속에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은 더 이상의 발전도 없었으며 오히려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앞 뒤 막혀 있다는 느낌과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과 앞으로는 어떻게 살까 하는 고민으로 몸부림치는 시기가 바로 제2의 사춘기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런 고민을 들어주고 명쾌하게 이렇게 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여기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가 있습니다. 아침에 다른 사람보다 사무실에 일찍 출근하여 하루의 일과와 그날 처리해야 할 일을 구분해 놓고 모든 것을 계획적으로 사는 직장인이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도 모자라 토요일까지 출근해야 안심이 되는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뒤지는 것을 싫어하고 농땡이를 부린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쉬는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동선은 오직 집, 회사, 교회로 매우 단순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아침, 거실에서 자다가 급히 일어났는데 나도 모르게 넘어지면서 거실의 장식장 모서리에 이마를 부딪혔습니다. 갑자기 머리에서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응급실로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스무 바늘 이상을 꿰맨 후에 일하기 위해 출근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그날 쉬었을 텐데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오직 ‘성실’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 일어났습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생이 나에게 어떤 시그널을 주는 것일 텐데,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였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나의 생활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히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일주일 이상 휴가를 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장장 14박 15일이란 휴가를 내고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한 번 걸어 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걸어온 제 인생길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은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군대를 갔다 오고 회사에 입사하여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결혼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기르고 결혼 생활과 직장생활을 아무 문제없이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 허전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인생의 질문에 답을 스스로 찾을 시간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오직 걷는데 집중했습니다. 하루 20km의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지금까지 걸어오던 길이 제대로 된 길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걸어갈 길이 많이 있고 오직 지름길이나 큰 길만 있은 것이 아니라 곁길과 샛길도 있었고 그 길로 걸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가던 길에서 속도를 서서히 늦추고 다른 길이 있는지를 살피면서 가끔씩 샛길로 들어갔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조금씩 곁길로 가는 재미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삶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입니다.
삶에 정답이 있는 건 아니고 오직 주어진 책임에 열심히 하는 것은 진정한 삶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삶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제각기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순례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배낭을 메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걸어갑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풍경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무장을 하고 오직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무작정 걷는 사람, 길을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길을 가는 사람, 혼자서 묵묵히 800km를 걷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이 길을 걷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배낭을 꾸리는 방법도,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게 걷는 방법도, 알베르게를 쉽게 잡는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이 그 길을 걸으면서 방법을 배워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삶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40대 중년들은 지금까지 책임과 의무로 된 삶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자신의 꿈,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눈길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통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당신에게, 제2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당신에게 다르게 살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고 늦기 전에 방향을 전환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것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재미가 많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는 산티아고 여행 후에 자신의 삶에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한 40대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회사와 가정에서 인정받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것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느낀 점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행에서 만난 좋은 인연들, 인생의 선배를 통해서 배운 삶의 모습, 그리고 여행 후에 행복하기 위해 시도한 여러 에피소드와 노력이 담겨 있습니다. 평일 저녁에 미술관에 가서 생소한 그림을 보기도 하고, 금요일 오후에는 혼자 영화관이나 가까운 근교로 가서 바다를 보고 오는 생활을 삶의 활력소로 맛보고 있습니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한 경제관념 바로잡기,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글쓰기 공부, 몸의 욕구에 충실하기 위한 명상과 춤, 그동안 별나라 이야기만 알고 지냈던 그림 공부 등 많은 시도들이 들어 있습니다. 일과 책임 이외에도 재미난 것을 찾기 위해 오늘도 눈을 반짝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재미나게 살아야 하는지 어려워하는 40대 친구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저의 변화된 삶의 모습과 방법은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20대 후반에 만나서 20여 년을 같이 살아온 인생의 동반자, 아내에게 나의 마음을 하나씩 꺼내어 보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 늦은 밤에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살던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의 보이지 않던 고민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이 무엇인지, 어느 날 갑자기 멈추어 삶의 방향을 뒤돌아 보게 되는 저의 변화의 과정을 하나씩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그리고 사위와 큰 아들의 위치를 살아내기 위해 살고 있는 저의 마음을 아내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 내편이고 나의 이야기에 늘 맞장구를 쳐주던 내 편이 말입니다.
30대까지의 삶은 정말 열심히 사느라, 사는 방법을 배워가야 했기 때문에 잘 모르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중년에게 주어지는 책임감과 자신도 모르게 시작되는 방황을 같이 길을 걸어가는 아내가 이해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제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 없이 들어주고 제가 느꼈던 모든 것을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하리라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죠. 같은 길을 걷기로 약속한 아내도 저와 중년 여성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중년을 넘어서면서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안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잘 모르고 서로가 남이 되어갈 수도 있는 때가 지금 이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잘 이해시키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정말로 중년의 정글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음을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마친 후에 제 삶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아내에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중년 남자의 마음을 아내가 이해해주고 지지해 준다면 저의 삶의 변화가 더욱 힘을 얻고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온, 샛길의 재미를 하나씩, 하나씩 아내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이고자 합니다. 한적한 오후에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중년 남자의 마음속에, 삶의 고민과 재미,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내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둘이 걸어갈 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변화된 삶처럼 아내의 삶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먼저였습니다. 친구로 만나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어서 다시 친구처럼 인생길을 가는 남편과 아내가 중년의 변화를 서로 이해하고 같이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시기의 중년 남자들에게 더 늦기 전에 잠시 멈추어 서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방향을 전환하여 걸어보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목적이라고 충실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