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딴짓 좀 하겠소_6
당신은 정말로
완벽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인가?
완벽함은 애초에 가능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것도 아니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존재다.
- 조영은의《왜 나는 늘 허전한 걸까》중에서 –
나가소사에게
당신은 어렸을 때 부모님을 포함하여 누군가로부터 칭찬받은 기억이 얼마나 있어? 아마도 누구나 그런 기억들은 최소한 한 두 가지는 있지 않을까? 잊지 못할 칭찬 같은 것 말이야. 커서 나중에도 혼자 미소 지을만한 칭찬을 받은 기억 같은 것 말이야. 초등학교 때 시험을 잘 봐서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받았던 경험이나 착한 일을 해서 부모님에게 ‘내 아들밖에 없다’, ‘믿는 놈은 너 밖에 없다’라는 경험 말이야. 이런 경험의 하나씩 쌓여 청소년 시절을 지나서 청년 시기를 지나 회사생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아. 아마도 이런 기억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존감을 키워주거나 혹은 스스로를 열심히 하게 했던 힘이었는지도 모르지. 누구에게나 사람에게는 매슬로우가 말한 인정의 욕구가 자리 잡고 있어 이를 늘 증명하고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아. 물론 나와 당신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해.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부모님의 칭찬이 나를 좀 더 공부하게 하고 곁길로 가지 않게 했던 것 같아.
우리는 어느덧 부모나 형제, 또는 친구들에게 받는 인정과는 다른 사회생활에서의 인정이 필요한 시기로 접어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 직장생활에서의 인정이란 것은 나를 포함한 중년 남자들을 서서히 변화시켰던 것 같아. 어렸을 때처럼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고 인정해주는 것과는 달리 직장에서의 인정이란 것은 다르게 다가왔지. 우리를 다른 사람보다 더 우위에 있게 하고 심리적으로도 다른 무언가가 더 가지고 있거나 더 힘이 있는 것 같게 느끼게 했지. 어떻게 보면 매우 중독성이 강한 것이기도 했어.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좀 더 바쁘게, 좀 더 여유 없는 삶으로 살게 만들어 가기 시작했어.
직장에서의 인정이란 것이 업무평가, 고과점수라는 것으로 연결되어 이것은 승진, 남보다 빨리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했지. 최근처럼 연봉제를 시행하는 기업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연봉, 더 많은 액수가 월급 통장에 입금되기에 ‘인정’이라는 것을 중요시 안 할 수 없는 거지. 거기에 모든 것을 올인(All In)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남자들에게도 모든 것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우리 중년들은 너도나도 더욱 경쟁과 인정이라는 진흙탕 싸움에 뛰어든 것 같아. 대부분의 직장인들을 다른 사람보다 더 직장에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까지 남아 있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주말도 반납하고 휴일에도 근무하는 분위기로 만들어 갔지. 회사나 조직에서는 ‘인정’이란 단어로 직장인들을 경쟁으로 내몰기도 했지만 거기에 우리들도 자연스럽게 따라간 것 같아. 그런 분위기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고 하는 직장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경쟁에 뛰어들었고 누구보다도 ‘인정’이란 단어를 신봉하는 사람들로 변해갔던 거야. ‘인정’이라는 단어는 직장 사회에서 ‘직위’, ‘직급’, ‘연봉’이란 단어로 이해되었고 우리 40대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신을 내맡기고 순응해 온 것 같아. 오직 그것을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야. 오직 하나만 믿고 달려온 것처럼 말이야.
여보, 우리 40대가 간과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회사에서는 ‘인정’이란 단어로 직장인을 줄 세우고 경쟁을 시켜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게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경쟁이 나중에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인데 말이야. 언젠가는 누구든지 회사라는 곳을 떠나게 되어 있고 회사를 떠나면서 우리를 인정해주는 단어는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아. 이제는 우리 중년들은 ‘인정’이라는 단어를 재정립하고 다시 찾아야 할 때라도 생각해.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직장에서의 인정’을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인정의 범위를 넓혀가야 나중이 행복할 것 같아. 그 방향은 다름 아닌 ‘자신’, ’ 가족’, ‘사회’의 3가지라고 생각해.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정’이 아닐까? 우리는 지금까지 남의 기준에 의해서 살아왔잖아. 학교에서는 시험이란 기준을 가지고 우리가 규정되어 왔고, 직장에서는 능력, 성과라는 것을 통해 규정되어 왔잖아. 이러한 것은 내가 세운 기준이 아니라 남에 의해서, 조직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에 나를 맞추어 나갔다는 거야. 마흔이 넘은 중년들은 이제까지 남이 세운 기준에 충분히 살아왔다고 생각해. 그것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말이야. 이제는 나만의 기준을 마련하고 내가 인정해 줄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가 세운 기준으로 나를 인정하고 칭찬해줄 때가 되었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나의 결정에 따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살아온 전반전이 남이 세운 기준으로 살아왔다고 하면 이제부터 후반전은 내가 만든 기준으로 나를 인정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연봉이 얼마나 되는지, 몇 평에 사는지, 몇 천 CC자동차를 타는지는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만족하고 즐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나의 삶을 남의 기준에 맞추어 살면 힘들 수밖에 없잖아. 내가 만족하는 기준, 내가 인정하는 기준에 따라 살게 되면 삶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흥이 생기지 않을까? 내가 만족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 이제는 나만의 인정 기준을 만들어나가면서 거기서 느끼는 만족을 즐기면서 살려고 해. 무엇보다 자신만의 인정 기준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나 할까?
두 번째로는 ‘가족의 인정기준’을 만들려고 해.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내가 세운 기준을 달성해야만 가족이 나를 인정해준다고 착각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렇기 때문에 내 능력 범위를 초과할 정도로 앞만 보고 달려 오지는 않았는지 모르지. 앞으로는 내가 사랑하고 나를 아껴주는 가족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해. 오히려 가족들은 우리 가장들이 돈만 잘 벌고 많이 벌어오면 인정해준다고 생각을 했을까? 나도 당신의 마음을 알고 배려해주고, 아이들의 관심사에 아빠가 같이해주고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지. 이런 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만으로 가족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닌가?
이제는 착각에서 벗어나 중년들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아마도 40대를 놓치게 된다면 그런 관계는 소원해지고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있지 않기 때문에 바로 지금이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해.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인정해주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나를 칭찬하고 나를 인정해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거라고 확신해.
세 번째로는 내가 속한 모임, 사회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이런 모임은 내가 돈을 버는 직장이 아닌 내가 좋아서 참석하고 내가 돈을 내고 의미 있게 활동하는 모임을 말해. 40대에는 다른 것보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을 더욱 확대시키고 더욱 깊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어. 그 모임이 친목일 수도 있고 종교적인 모임, 봉사 모임을 가질 수 있지. 거기서 내가 만나고 삶을 나누는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도 인생에서 소중한 의미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40대 이후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건조해지기 쉬워질 것 같지. 어느 모임에 나가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으로 살기보다는 꼭 나와주어야 하고 나오지 않으면 보고 싶고 그 사람이 그리울 정도의 사람이 되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도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삶의 참 방향이 아닐까 생각해.
여보, 남자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어,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도 있듯이 말이야.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40여 년의 삶이 불분명하고 일정치 않은 남의 인정을 구걸하다시피 살아왔다고 하면 이제는 차원이 다른 인정의 삶을 살아야 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하는 기준, 내가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인정을 위해서 남은 후반전을 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내가 태어나서 내가 지키고 돌본 가족들의 인정이 없다고 하면 세상의 어떤 인정이 우리 삶을 의미가 있게 하는지 생각할 때가 되었어. 거기에 내가 속해 있는 모임에서의 인정까지 더해진다고 하면 얼마나 재미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아직도 회사에서의 인정에 목숨 걸고 모든 것을 올 인(All In)하는 중년들이 있다고 하면 더 이상 삶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인정 기준을 다시 만들면 어떨까 해. 그래야 인생 후반전이 더욱 흥미진진해질 거라고 생각해. 이런 경험은 자신이 실패하고 얻게되는 게 아쉽기만 할 뿐이지만 더 늦지 않게 알게 된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 그래서 남은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