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딴짓 좀 하겠소_7
붉게 익은 저녁노을을 보아도
“아름답다’라고도
마음껏 외치지 못하는 너는 누구인가?
텅 빈 영혼만 가진
어설픈 중년의 여인일 뿐이란 말인가?
- 이순복의 <흔들리는 중년> 중에서 –
스스로 자신을 인정해가는 이에게
사람들은 사는 게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죽지 못해 산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아마도 이 말은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산다거나, 살기는 살아야 하는데 사는 이유를 모를 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우리 주변에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각자 처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몇 년 전인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TV와 신문을 뒤덮을 때가 있었던 것 같아. 이름만 대면 누구든지 다 아는 사람들인데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잘 모르지. 그런 분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단지 매스컴에 나오는 정도만 알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 나중에는 그 자살 동기가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야. 실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는 우울증이라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야.
어느덧, 마흔에 들어서고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가만히 있어도 왠지 불안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경험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런 상황이 가끔씩 반복되는 걸 나 스스로가 느끼기 시작했지. 괜히 화가 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도 하기 시작하고 살아가는 것이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라든가 모든 관련된 것에서 손을 떼고 홀가분 해졌으면 하는 기분이 가끔씩 들 때도 몇 번은 있었던 것 같아, 바로 이런 것이 직장인들이 겪는 우울증의 시작, 또는 증상이 아닐까?
회사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서 가끔씩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삼기도 했지만 증상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다 하고 있더라고. 다들 마흔이란 터널을 지날 때에는 이런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도 정작 당사자인 우리 중년들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 다만 서로가 비슷한 증상을 겪는 것 때문인지 자주 만나게 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 등의 신세타령을 하는 횟수는 늘지만 거기까지였어. 나아지는 것이 서로의 느낌이나 경험을 공유하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위안만 얻을 뿐이었던 것 같아.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는 맨 마지막에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 이였어. 여보, 중년 여자들은 어떤지 모르겠네. 실제로 남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엄청 친하지 않으면 이런 이야기는 하기 쉽지 않고 하더라도 꽤 드물지.
여보, 나를 포함한 내 또래 남자들이 겪는 이런 것은 경쟁사회를 살면서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살아야 하고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 없지만 피곤해도 맘 놓고 쉬지 못하는 우리 40대 중년 남자들이 겪는 집단 우울증 같은 것이라 생각해. 더군다나 남자들은 자기가 그러한 상태를 지나고 있는 것을 가까운 사람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경향까지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괜히 배부른 소리를 한다거나, 아니면 남자가 약해 보일까 봐 하는 자격지심에 그냥 그렇게 우울증 초기 증상을 몸과 맘으로 온전히 겪어내고 있는 것 같아.
반복되는 일상에 어디로든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출구조차도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이 스스로를 처량하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 같아. 반면에 중년의 여자들이 남자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 갱년기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알기 때문에 자기 아내가 갱년기를 접어들 때의 증상들은 신문이나 방송에도 많이 알려져 남편들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 또한 여자들은 자신들의 기분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다고 표현하잖아. 또한 사회적으로 알고 배려해 줄 수 있는 환경인 반면에 남자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을뿐더러 잘 알려지지 않아 그냥 소리 소문 없이 지나는 것 같아. 어떻게 보면 중년 남자들은 본인을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다고나 할까?
그동안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을 되짚어 보면 이렇게 우울한 상태로 회사에서의 일하게 되면 일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매우 민감하게 직장 후배나 동료를 대해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회사 후배나 동료들도 가끔씩 피하는 경우도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 본인도 자신들이 정상에서 조금 벗어나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것을 남을 통해 깨닫게 되면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도 상처를 입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이 잘 되지도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몇 해전인데 후배가 업무 중에 이야기할 것이 있다면서 상담을 요청했었지.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뽑아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휴직을 하고 싶다는 거야.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어. 내가 상사로써 무엇을 잘 모르고 있나? 아니면 집안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예상 밖의 말이었어. 자기가 우울증 약을 먹은 지 꽤 되었다는 거야. 지금은 약을 먹기보다는 잠시 휴직을 하고 일에서 떠나 있으라고 의사가 처방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 후배가 기분이 좋을 때는 정말로 웃는 얼굴로 남의 일까지 맡아서 해줄 때도 있고 때로는 저기압 상태로 말도 잘 안 할 때가 있었다고만 생각했지, 우울증을 앓고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었지. 잠시 참고 더 일을 하면 어떨까 이야기를 했지만 그 친구는 힘들다고 휴직을 하겠다는 것이었어. 결국 6개월간 휴직을 하면서 조용한 곳에 가서 몇 개월간 살기도 하고 여러 곳을 여행하고 돌아다녔다는 하더라고. 휴직을 끝내고 왔을 때는 겉으로 보기에는 휴직 전보다 얼굴이 좀 밝아졌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을 느끼지 못했었지.
후배의 경우는 심해서 약을 복용하거나 휴직을 했을 뿐 40대를 지나는 중년들은 정도만 다를 뿐이지 다 같이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후배가 휴직을 하면서 특별히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한 것은 없다고 해.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가 보니 경치 좋은 곳을 여행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고 다닌 것이 전부라고 하던데. 어쩌면 그 후배는 자기 마음과 정신이 지쳐서 아픈지 모르고 지내는 다른 남자들보다 더 현명하게 자신을 치유한 것 일수도 있어.
나도 여기서 예외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약 몇 개월 동안 많은 책을 사서 읽어보고 공부를 했던 것 같아. 여러 책을 읽고 거기서 권하는 처방은 간단해.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취미를 하나씩 가지거나 또는 운동을 배우라는 것이었어. 그렇게 되면 괜히 앉아서 걱정을 하고 고민을 하는 시간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가 생겨 우울한 생각으로 빠지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다는 것이지. 그리고 더욱 좋은 것은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사람들보다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만들라고 충고하더라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게 되면 자신을 알리고 남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우울한 생각이 줄어든다는 것이지.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생활이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우리 생각도 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이에서 오는 불안감과 신체적으로 느끼는 우울증이 우리를 감싸는 것이 주원인이었던 거야.
여보,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 스스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취미나 운동을 시작하게 되니까 삶에 아주 사소한 재미와 즐거움이 생기고 우울한 기분을 싹 몰아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것 같더라고. 아마도 내 나이 또래 중년들이 하는 걱정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거잖아. 그런 걱정과 고민에서 우울증이 출발하는 것 같아. 우울증은 미래의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하는 대출과도 같은 마음의 빚과 같은 것이라 생각해. 그러한 빚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자리 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삶의 중간중간에 재미를 불어넣어 걱정이 자리 잡을 자리를 없애는 거지. 그것은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어디 하나에 자신의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아마도 우리 사회가 중년 남자들이 재미를 가지고 자신을 온전히 쏟아놓을 무언가를 마련해주는 것이 있으면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해. 신문이나 방송에서 누구는 집 짓는 취미를 가지고 있고 누구는 주말에는 공방에 가서 주말 내내 나무를 깎고 다듬는 활동이나 새로운 것을 찾는 중년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탈출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해.
여보, 아마도 여기에는 경제적인 희생도 조금은 필요한 것 같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려면 당신을 포함한 아내들의 용돈 인상도 불가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내들의 생각들은 어떠하신지? 내 안에 미래의 걱정이나 불안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더 이상 우울해하지 말고 삶에 좀 더 밝고 유쾌한 음악을 불어넣도록 살려고 노력하려고 해. 중년 남자들이 비슷하게 회색 빛의 얼굴을 하고 그루미 하게 사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삶의 무게도 지고 가기 힘든데 말이야. 좀 더 웃고 또 웃자. 이것이 우리가 지금 40대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때인 것 같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