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음 Mar 22. 2021

어떻게든 될 거야?

여보, 딴짓 좀 하겠소_10

 

 배를 정박시킬 때
매어두는 도구가 닻이다. 
 그 닻과 배를 연결하는 줄을 닻줄이라 한다. 
 닻은 배가 조류에 끌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닻줄은 파도와 너울에 배가 적당히 흔들리며 
 수평을 유지하게 돕는다. 닻과 닻줄은 
 뱃사람의 생명을 지켜주는 기본 
 장비이기에 배에 늘 여분을 
 가지고 다닌다. 
 
 - 김준의《섬: 살이》중에서 –



여행의 맛을 알아가는 친구에게


여보, 우리 첫째가 대학 가기 위해 준비 중인 것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이 들어.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준비했던 때가 불현듯 생각나게 해. 참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과 어떻게 이 시기가 견디어내면 나도 대학생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견디어 낸 것 같아.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전공 공부를 하면 전문가가 되는 줄 알았어. 학문을 연구하는 곳, 상아탑이라는 말을 듣고 입학 한 대학 현실은 전혀 달랐어. ROTC를 하면서는 임관하면 조국에 충성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멋있는 육군 장교가 되는 줄 알았지. 임관을 하고 훈련을 받은 뒤 군대에서 생활이 1년이 지나니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던 것 같아. 책임감과 주어진 병사들을 건강히 제대시키고 나도 전역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지만 말이야.


회사에 한번 입사하면 죽을 때까지 한 회사에 뼈를 묻고 정년퇴직까지 일을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거야. 하지만 현실은 확연히 달랐어. 입사한 지 1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신입사원으로서 기본기를 다치고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옮기게 되었지. 처음에 머릿속으로 생각한 회사와 내가 처한 회사의 분위기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지. 그 후로 벌써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네.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던 것이 20대 때의 나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 물론 학창 시절은 정해진 순서대로 지나갔어. 공부하고 시험 보고 학년이 올라가다 보니 때가 되어 졸업했지. 회사도 별반 다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신입사원 때는 일을 배우느라 바쁘게 지나갔고 대리가 되어서도 과장이 되어서도 신제품을 개발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지낸 것은 당신이 옆에서 보았으니 더 잘 알 거야. 그러다 보니 어느새 40을 넘었고 직장생활도 그럭저럭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마흔이란 나이를 넘어서 보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겁이 나기도 시작하는 거야. 그것조차 생각하기가 싫어 잠깐 고민하다가 뒤로 감추어 놓은 것이 곪아 터져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 1년마다 반복되는 생활과 그 끝이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면 서서히 겁이 나기 시작했지.




여보, 난 그것이 아마도 ‘사추기’의 시작이었던 것이라 생각해. 지금까지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과 무조건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말에 더 이상 의지해서 살 수는 없었어. 오히려 그런 막연한 믿음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지금까지의 살아온 것과 앞으로 남은 삶은 달라야 했어. 지금 내 또래의 남자들은 젊었을 때처럼 창창하지도 않고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정이 보장된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현실을 살아가기에 막막했던 것 같아. 마흔이 넘도록 이런 생각이나 준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아. 변명 같지만 생각할 시간조차, 여유나 짬을 낼 생각의 시간도 없었어. 내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살아왔고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 속에서 살아온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 그러나 큰 착각이었던 것 같아. 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40대들의 생각이 비슷한 것 같고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는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여보, 우리 가정에 쓸 것을 공급하는 월급을 누군가는 직장인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약이라고도 했다는 것 알아? 그런데 매달 입금되는 당근과 같은 월급과 해야 하는 일이 이런 고민을 할 시간을 빼앗아 갔던 것 같아. 아마도 40대 남자가 느끼는 불안감은 어떨까? 문득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이 오지 않은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 누우면 곧바로 잠을 골아떨어지는 사람이 잠자리에서 뒤척일 줄은 나도 몰랐던 거야. 벌어 놓은 재산이 많지 않고 직장도 오래 다닐 수 없는 직장 현실은 답답함을 더해 왔지. 30대에는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목숨을 걸고 일에 매진했지만 40대에는 더 이상 그럴 수는 것이 현실이지. 이런 상황들이 40대 중년들을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아. 나는 예전부터 회사원들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잡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화초가 아니고 왜 잡초냐고? 회사라는 온실 속에서 잘 자랐지만 그 온실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지. 화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라도 있고 상품가치라도 있지만 온실이 없는 상태의 잡초는 아무런 관심이나 상품성이 없어서 아무에도 쓸 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여보, 이제는 어떻게는 되겠지 하는 착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아.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는 무계획, 무대책에서 벗어나서 다가오는 미래를 위해 준비라는 것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 막연한 것에서 먼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해. 내가 접해 있는 환경을 이용해서 하나씩 준비를 해야 하지. 마흔이 넘은 우리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경제력’부터 접근을 하려고 해. 경제라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상투적인 말이라면 변명이 되려나.



여보, 그동안 우리가 벌어 놓은 재산, 재산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결혼하고 들어 놓은 보험, 적금, 예금 등을 이제는 한눈에 보이게 정리할 필요가 있어. 그리고 매달 들어오는 수입을 어떻게 분산하고 정비를 해야 할 것인지, 저축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공부를 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채, 그리고 매달 지출되는 곳이 어디인지, 혹시 우리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수입의 허점을 잘 보아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많지는 않지만 튼실한 주머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너무나도 ‘경제’라는 속성을 모르고 그 판 위에서 지내온 것 같아. 사회 모든 곳곳에 숨어 있는 경제 논리를 먼저 공부해야 해. 그것도 치밀하게 말이야.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경제공부와 개념 용어, 금리, 환율을 포함한 것을 1년 정도는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면 조금,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아. 그래야 얼마 모으지도 못한 자산을 포함하여 막연한 미래를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여보, 가장 중요한 우리의 후반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늦었지만 이제부터 준비해야지.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실제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지금 다니는 현업에서 이직을 할 건지? 현재 직업에서 확장해서 나갈 건지 말이야. 다른 것을 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야. 막연히 퇴사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아.


해마다 회사 일을 하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공감하는 것이 하나 있어. 연말마다 항상 내년 사업계획을 세우느라 바쁘잖아. 회사 경영 계획은 해마다 치밀하게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면서 정작 중요한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은 며칠간 준비를 하고 살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거지. 차년도 계획은 전해 11월부터 여러 가지 버전으로 준비하고 고민하고 작성하고 고치기를 여러 번 하면서 내 인생의 계획은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정작 내가 사는 인생 계획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이 후회가 될 때가 많아. 무작정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진 분위기, 집단에서 벗어나야 해. 그것은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포함한 우리 가정의 미래 계획도 마찬가지라고 봐. 인생을 너무 힘들게, 재미없게 살아간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 회사일과 같이 그렇게 수정하고 계획하고 여러 번 고쳐야만 세운 계획을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한번밖에 없는 인생이기에 무계획보다는 하나씩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정리해야 할 때인 것 같아. 그 계획 속에서 우리의 인생이 꽃피게 될 것이라는 거지. 지금까지 무계획, 즉흥적인 임기응변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계획과 체크를 해나가는 사람의 삶이 더욱 풍성해질 거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싱어게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