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 타임, 이제는 잠시 멈춤_12
우리 모두 두 번 살 수 있다.
그리고 두 번 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얼마 전부터 '인생 이모작'을 꿈꾸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은퇴의 개념은 따지고 보면
"자식들도 다 길러냈고 근력도 옛날 같지 않으니 편히
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개 60세를 전후하여
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남은 인생을 정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은퇴를 하고 살아야 할 기간이
길어졌고 평생 건강을 잘 관리한 이들은
은퇴 후에도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게 되었다.
- 최재천의《당신의 인생을 이모작 하라》중에서 –
삶을 재정비하고 있는 나의 단짝에게
마흔이란 나이에 되어서 나의 생활이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어. 마흔이란 나이는 왠지 남자들에게는 출발점에 선 비장함이 들게 하는 나이기도 해. 나 같은 경우에는 말이야. 그동안 예선전을 뛰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40’, ‘마흔’이란 나이는 64강전부터 했다고 하면 32강전 16강 전을 치르고 이제는 본선에 들어서는 느낌이 들어 더욱 긴장하게 되는 것 같아. 월드컵이라고 하면 아시아 지역 예선을 치르고 이제는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 예선을 한다고나 할까?
마흔에 접어 들어서는 달라진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아.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집안일보다는 회사 일이 먼저였지. 늘 모든 것에 우선순위는 회사와 관련된 것에 집중되었던 것 같아.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산다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왜냐하면 잘 나가던 임원들도 연말이면 책상을 정리하고 타던 차를 반납하고 집에 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었거든. 그들도 나처럼 40대에 회사에 열심을 다하면서 살다가 임원이 되는 기쁨을 누린 것도 몇 년도 되지 않아 정말로 회사를 떠나는 일이 발생하더라고. 늘 영원할 것같이 일하다가도 어느 날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집에 가는 임원들의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더라고. 아마도 그때부터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한 것 같아.
여보, 무슨 생각이냐고? 그건 일면 나의 엑시트 플랜, 다르게 말하면 삶의 구조 조정안이라고 할 수 있지. 회사생활이나 나의 삶을 둘러보아도 어느 정도 중간에 들어섰고 월드컵 본선 경기라고 하면 조별 예선을 마치고 본선에 올랐으니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더라고. 이제는 회사 일을 포함해서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아. 조용하고 늦은 밤에 조용히 사무실에 남아서 생각을 하다 보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 같아. 현재 위치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생각을 하다 보면 한 두 가지만 생각하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직장에서의 나의 방향, 그리고 앞으로 우리 가족과 당신과 나의 재정 플랜, 아이들에 대한 계획 등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어. 우선 직장에서의 갈 길을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 직장이라면 임원을 달기 위해 일하지 않는 부장들은 없겠지.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거야. 하나에 집중하고 올인하기에는 중년 남자들이 삶이 너무 아깝고 소중하기 때문이고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지. 나름대로의 백업 플랜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오래전에 모시던 분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네 회사에서의 모든 일은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고 말이야.
임원을 다는 것도 운(運)이라는 것이 70% 정도 작용한다는 말이지. 그렇게 회사에서 임원으로 보낸 시기가 매우 길게 지내신 분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믿기 어려웠지. 나도 갑자기 내일이라도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야. 회사에서의 임원이 나의 모든 것을 결정해 줄 것은 아니잖아. 그래서 부장으로 회사를 나온다고 할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려고 해. 내가 아는 친구는 그동안 자기가 하던 일을 퇴직 후에 하려고 나름대로 알찬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고. 회사에서의 일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백업 플랜을 세우면서 왜 정작 나의 삶에서는 그런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나의 남은 삶인데 말이지. 내가 부장으로 퇴직한다고 하면 회사원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그냥 자유인으로서의 나의 계획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거지. 어떤 일을 할까 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나의 엑시트 플랜의 주된 고민이자 숙제야. 하고 싶은 10대 풍광, 10가지 꿈속에서 몇 가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엑시트 플랜 속에 포함되어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로는 국민연금을 받기 전까지 재정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거야. 아마도 이 문제가 시급한 것 일거야.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공부도 하고 책도 읽었지만 실제로 재정 구조를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그동안의 적금이나 투자, 증권을 다시 재편하고 있어. 내가 멋모르고 묻어 두었던 적금이나 잘못 쓰고 있는 카드나 투자에 대해서 다시금 정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1차 정리를 하고 다시 리빌딩을 하고 있지. 그래야 경제 활동을 하고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가 되기 전까지 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당신과 내 나이와 우리 두 아이들의 나이와 함께 적어 놓고 해마다 생기는 경제 이벤트, 적금이나 펀드, 투자 변동상황을 정리하고 있지. 일명 ‘나의 재정계획표’을 핸드폰 메모 속에 늘 적어두고 수시로 update 하고 있어. 그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 가정의 돈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어. 그리고 5년 단위로 준비하고 있어.
세 번째로는 당신과 나, 그리고 두 아이들의 갭이어(Gap Year) 자금을 준비하고 있어.
내가 회사를 퇴직하고 당신도 일을 그만두었을 경우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고 있지. 아마도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금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는 거지. 예전에 할머니께서 밥을 준비할 때 가족 한 명당 한 숟가락의 쌀을 덜어내어 일주일을 모아서 교회에다 성미(聖米)로 내시던 모습에서 생각한 거야. 우리 수입에서 표시 안 나게 조금씩 덜어내어 모아두면 언젠가는 그것이 우리가 미뤄 두었던 것을 할 수 있는 자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할 수 있는 쌈짓돈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그것이 조금씩 어느 통장에서 조금씩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젊었을 때 자신의 진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갭이어 자금도 모으고 있지.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 전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여행하고 무언가를 해 볼 활동자금이라고 할 수 있어. 내 월급날이면 두 아이들에 통장에 조금씩 자금이체를 하고 있지. 두 아이들의 나이 한 살당 만원에 해당하는 자금을 모아 두고 있어. 각자 앞으로 모아둔 갭이어 자금을 언제 인출할지는 두 아이들에게 달려 있지만 그때까지 우리가 부모로서 해주는 최소한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씨앗자금이라고 할 수 있어. 이렇게 우리 가족 각자를 위한 자금 마련을 준비하고 있어.
네 번째로는 정말로 당신과 내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기도 하면서 지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조금씩 준비하려고 해.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죽을 때까지 해도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어. 그 일을 하면서 내가 즐거워하고 남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겠지. 그것은 나 혼자 하는 일도 필요하고 당신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한 두 개쯤은 있어야 할 거야. 그래야 건강하게 같이 할 수 있지. 앞으로 같이 있는 시간이 적잖이 많을 텐데 말이야. 아이들도 다 커서 우리 둘 만이 있을 시간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있어.
앞에서 이야기한 크게 네 가지 방향에 다른 것들을 덧붙어 나가려고 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지. 현재의 삶도 중요한 만큼 거기서 어떻게 잘 이어서 새로운 삶으로 이어갈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
내가 어느 날 회사를 떠나게 되더라도 나름대로의 백업 플랜이 오히려 더 새로운 삶을 살게 하고 거기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속에만 묻어 두었던 오래된 것을 꺼내어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심되고 가슴이 벅찼으면 하는 상상을 하곤 해. 내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예측하고 있는지 말이야. 여보, 나의 엑시트 플랜에는 무엇보다도 나의 짝꿍인 당신이 열렬한 지지가 필요해. 그리고 뒤에서 조용히 봐주기도 하고 옆에서 같이 응원해주는 응원군이 되었으면 해.
지금까지 삶이 살아가는 방법도 모르고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좀 더 우아하게 자연스럽게 살아보자. 많은 실수도 했기 때문에 이제는 무엇이 실수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지. 중년의 엑시트 플랜에 이어질 노년으로 가는 나눔의 플랜을 세울 때까지 잘 살아보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