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더 편한 사람들의 사랑법』, 미하엘 나스트
서울에 비슷한 시기에 올라와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다. 학생 시절 때 여친과 데이트를 해야 한다고 돈을 빌려 가고, 취업이 안된 졸업 시즌에는 바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면접을 봤다. 정말 언제 철드냐고 나무랐지만 그에게 부러운 게 딱 하나가 있었다. 연애가 끊이질 않았고, 화려한 입담에 여사친이 많았다. 그런 그가 요즘에 프라모델에 꽂혀 만들어진 걸 카톡으로 보내온다. 자유분방하고 인싸기질이 다분했던 그가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건 내겐 신선했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너무 바빠서 외롭단다. 프라모델은 연고지 없는 타향살이의 힘듦을 견뎌내고 관계의 공허함을 채운다는 의미겠지.
작가는 연애불능 세대의 특징을 잘 짚어냈다. 빡빡한 사회에 적응하면 할수록 구석으로 몰리는 우리 세대에게 우리 주관은 사라지고 자극만 남는다. 시대가 강요하고 강조하는 사상에 적응하려고 아등바등 대다 보니 공허해진단다. 공허함은 유죄라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고 사회의 활력을 주기 위해 우리를 계속 자극한다고 말한다. 공허한 시간에 자신에게 부족한 건 무언가를 급급하게 채우려고 한다. 연인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기회가 많은 시기라고 말한다. 허기진 감정들은 sns와 미디어를 통해 대신 가득 채워지고 있다. 그 와중에 사랑이란 걸 나름의 공식으로 적응하는 게 바로 연애 불능 세대다.
경험이 쌓일수록 연애 기준은 견고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이고 길들여지면서 앞으로 나아가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다. 그래서 사랑도 과정이 아닌 확실한 결과만 보고 선택하는 성향으로 변하는 거 같다. 편의점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맥주가 진열된 가판대 앞에 서있는 것 마냥 뭘 골라야 할지 머뭇거린다. 선택 장애가 오거나 그날에 그 타이밍에 내가 끌리는 걸 고른다. 빗대어 말하자면 그 사람과 나는 맞냐 안 맞냐부터 자신이 주인공으로 짜인 완벽한 시나리오의 사랑을 먼저 바라고 기대하면서 사랑을 구매하는 거다. 정작 왜 골라야 하는 이유는 모른 채 그저 냉장고가 휑하게 비웠으니깐 채우는 거다. 충동구매같이 내 기준에 맞는다는 이상형을 찾았다는 오만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합리화다. 혼자만의 생각 속엔 정작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계속 갈구한다.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상대와 나의 거리를 적당히 두는 완벽한 계산과 저울질, 밀당은 상대에게 티가 난다. 상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구매했다는 착각은 그 속에 상대방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갈증을 채우려고 소금물을 퍼마셨었다. 독이 되는 관계를 질질 끌었던 건 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타인에 의해 인정받으려 했던 반증이었다. 나를 위하지만 타인에게 의존했던 모순.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이건 피할 수도 누군가가 완벽하게 채울 수도 없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삶은 고행이라 누가 그랬던가.
거참 마음열기가 쉽지 않은 나날이다. 그만큼 순수한 게 빛이 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겉치레를 벗겨내고 나의 지질한 밑바닥까지 보이며 지금의 감정에 충실할 때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상처받고 싶지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해를 받고 싶지만 남을 이해하기에는 에너지가 너무 소모된다. 공허함을 채우려고 만들어내는 생각의 모순 속에서 벗어날 때가 오길 바란다.
한줄평 : 읽으면 연애하기가 어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