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4.
선희는 잔뜩 지쳐있었다. 갑자기 화가 나고, 한순간 무기력해져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었다. 이러한 선희의 증상은 한 단어로 아주 쉽게 정의가 가능했다. 선희는 ‘이별’을 하는 중이었다.
선희는 이별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주는 사랑, 숨기느라 급급한 사랑만 해왔다. 자신이 준 사랑을 다시 돌려받는, 상대방이 먼저 건네는 사랑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설레고, 행복했고, 매 순간이 당황스러웠다.
선희는 자신이 차인 이유가 ‘서툴러서’라고 생각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속도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 상황과 사람에 취해 있었다. 처음 술을 마신 스무 살처럼 정신없이 취해버렸다. 그리고 눈 뜨고 정신 차려 보니 속이 잔뜩 아픈, 난생처음 겪는 헝클어진 아침이 선희를 맞이했다.
산책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 친구의 한마디에 번개 맞은 듯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막상 남자친구와 걷던 동네 길을 혼자 걸으니, 가슴이 아려왔다. 사랑이 이런거라니! 짝사랑할 때도 이랬나? 또 다시 센치해진 선희였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졌다. 그래서 벤치에 앉았다. 벤치에 앉으니 맞은편 화단의 무궁화가 시야에 들어왔다. 요즘은 길에도 무궁화가 많네. 무궁화가 원래 여름에 피는 꽃이던가? 평소 꽃을 좋아하던 선희였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려던 그때, 선희 앞으로 복권을 잔뜩 산 대학생 무리가 지나갔다. “저기가 진짜 명당인 거지?” 명당? 우리 동네에 복권 명당이 있었나? 선희는 호기심에 자리에서 일어나 대학생들이 지나온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곳엔 정말 1등 배출이라는 표시가 잔뜩 붙은 로또 판매점이 있었다. 선희는 흥분되는 마음으로 2만 원어치 자동을 긁고 나왔다.
그리고 마침 복권 가게 옆에 있던 닭강정 집 냄새에 홀려 치즈 닭강정 1인분을 포장했다. 집에 가서 맥주랑 먹어야지. 맥주를 사러 우연히 들린 편의점에서는 테이블 아래 앉아있는 고양이를 만났다. 맥주와 함께 고양이 간식을 사서 주었다. 먹는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사진을 찍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선희가 가장 좋아하는 손톱달이 떠 있었다. 선희도 모르는 새에 선희 자신에게 사랑을 잔뜩 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