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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드름웨어하우스 Jun 19. 2020

기사의 하루

중세에 살다가 현대에서 깨어난 기사는 오늘도 출근을 준비한다.

낡은 운동화를 꺼내신고, 한 손에는 텀블러를 들었다.

갑옷만큼 무거운 점퍼는 어깨를 두드린다.


전쟁터로 이동하기 위해 횡단보도에서 회색 눈동자를 번뜩인다.

얼마전 불타버린 시장을 지날때는 검게 탄 냄새를 피해야 한다.

머리가 하얗게 된 다른 기사가 지나친다. 아마도 담배로 아침 식사를 했나보다.


그의 무기는 검은색 유리검. 그게 깨질까봐 케이스로 보호해야 한다.
비가 와서 흩어진 꽃잎 만큼이나 시선을 둘 곳이 마뜩치 않다.

오늘은 어느 성주를 만나야 할까
결국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아니면 이제야 말이 통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지만 결론은 없다. 


탈탈 먼지처럼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술 대신 커피를 물처럼 마셔서 입냄새는 커피찌거기 같다.

우르르 쾅쾅

기대하지 않았던 불길한 일들은 어느 순간 코 앞에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럴 때는 반응하지 않는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슬픈 뒷모습은 모르는 척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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