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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즈맨 Apr 08. 2023

병원 근무 중에 칼에 찔릴뻔했어, 나는 무슨 죄?

이런 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략 10년 전 이야기다. 마감 3~40분 전쯤에 내선으로 치료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떤 환자가 올라갈 테니, 조심해서 치료해 달라는 말만 하고는 턱 끊는 게 아니겠는가?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금세 올라온 환자분을 딱 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붉게 타오르는 듯한 얼굴, 불안한 눈동자, 엄청난 술냄새를 풍기며 치료를 받으러 왔다고 말씀하셨거든. 잠깐 처방을 봤는데, 도수치료를 잘 부탁한다 라는 코멘트와 알코올 중독자라는 말까지 같이 덧붙여 있었다. 솔직히 그때까지는 큰 문제는 없겠지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웃으며 협박을 하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는가?


"야, 나 지금 어깨가 너무 아파, 그런데 너 이거 못 고치면 넌 나한테 죽는 거야"


순간 장난치시는 건가 싶었다. 가끔 매너 없이 반말로 툭툭 던지시는 분이 많아서, 평소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나를 툭 밀치더라고.


그러고는 메고 있던 가방을 던지더니, 그 속에서 신문지로 감싼 기다란 물체를 꺼내더라고. 순간 몽둥인가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가늘었고, 손잡이가 검은 형태인 것으로 보아 흉기인 게 확실했다. 몸이 덜덜 떨렸다. 목에 소름도 쫙 돋쳤고.


"이거 보이지? 너 나 못 고치면 이거에 찔리는 거야? 알아?"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순간 눈앞이 하얘지더라니까. 어떻게 할까 고민을 엄청했는데, 일단 달래 보기로 했다. 칼을 든 상대에게 함부로 했다가는 진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일단 그거 내려놓고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그래야 제가 치료를 해드리죠"라고 말하니까 신문지를 벗겼다. 기다란 사시미가 보이더라고. 순간 머릿속으로 와 조졌다. 진짜 조졌다. 어떡하지 라며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너 죽는다니까? 라며 협박을 하는데, 분노와 공포가 왔다 갔다 했다.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나 싶었다. 슬금슬금 다가오는데, 일단 계속 달래 봤다. 되든 안되든 일단 이 상황부터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니 말이야.


"환자분 어깨가 많이 아프시죠? 그걸 들고 계시면 제가 치료할 수가 없으니까, 일단 치료받고 절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세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침대에 탁 앉더라고.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재빠르게 칼을 든 손을 세게 툭 쳤다. 일단 내가 살아야 되니까 말이지.


쨍그랑 소리와 함께, 칼이 떨어지고 그걸 밖으로 멀리 차버렸다. 주변에 동료들이 그걸 줍고, 나는 일단 그분을 침대에 눕혔다. 발버둥을 치며 다 죽여버린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 일단 신고를 해서 그분은 어찌어찌 밖으로 나가셨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게 되더라고.


동료들은 고생했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도와주고 싶지만 괜히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가는 더 흥분해서 칼부림이 날 수도 있으니, 못 들어갔다 했지만 내심 서운한 건 어쩔 수가 없더라. 만약 내가 그 틈을 못 노렸으면, 진짜 찔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그런 손님이 온다면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건은 일단락 됐다. 솔직히 만약 여자 선생님이나, 겁이 많은 치료사였다면 어쩔 뻔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뉴스에서도 간혹 정신병 환자들이 칼부림을 내어 무고한 생명을 잃었다는 사건을 종종 보는데, 정말 화가 난다.


아픈 당신들을 치료해 주는데, 왜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말이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생생할 정도로 떠오른다. 만약 현시점에서 그런 분을 또 만나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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