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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가희 Sep 17. 2020

인간과 신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

루앙프라방의 탁발과 왓 호씨앙 사원


신이 우리를 만들었을까,
우리가 신을 만들었을까.


영화 <세 얼간이>의 자리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작품 중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라는 영화가 있다. 자기 별로 돌아가는 리모컨을 잃어버려 지구에 남겨진 외계인 피케이가 그 리모컨을 찾아 인도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다. 그 리모컨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는 지구인들의 말을 듣고 피케이는 리모컨이 아닌 신을 찾아다니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사기꾼 ‘가짜 신’을 만나며 좌충우돌을 겪는다. 영화는 우리가 믿는 ‘신의 존재’에 대해 신랄하고 코믹하게 의문을 던진다.


영화 <피케이 : 별에서 온 얼간이>


나는 그 어떤 신도 믿지 않지만, 대부분의 종교를 지지하는 편이다. 한때는 꽤나 신실하게 교회를 다닌 적도 있지만, 작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말도 없이 일하다 보니 점점 교회와 멀어졌다.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솔직히 ‘꼭 해야 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정해두고 강요하며 나를 컨트롤하려는 종교 자체에 조금은 신물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때로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래서 사람에게 종교가 필요한 거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교를 갖는다는 건 신중해야 할 문제였다. 사실은 종교가 아닌 신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신은 사람이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라오스에서 조금이나마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돌아왔다.             



조금도 거룩하지 않았던 탁발    


여행을 가면 대부분의 날들을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그랬던 우리가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새벽 4시 반에 기상했는데, 루앙프라방의 탁발을 보기 위해서였다. 발우를 든 승려들이 행렬을 이뤄 지나가면 사람들이 낮은 자세로 앉아 각종 음식을 공양한다. 루앙프라방의 탁발은 특히 대규모로 이뤄져 장관을 이루기에 꼭 경험해봐야 할 문화로 손꼽힌다.     


조금 서둘러서 5시가 채 되기도 전에 거리로 나섰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은 거리는 고요했다. 텅 빈 거리의 가장자리로는 낮은 의자들이 줄을 맞춰 놓여있었고, 공양할 음식들을 파는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해줬다. 가장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는 왠지 모르게 엄숙해져 탁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거리. 탁발 준비.


조용하던 거리는 하나둘 사람들로 채워졌고, 어느덧 북적북적해졌다.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탁발을 보기 위해 새벽의 거리로 나왔는데 한국에서 온 패키지 여행객들과 중국인, 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서양인들은 대부분 탁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사진을 찍었다.    


5시 40분이 되자 주황색 옷을 입은 승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줄로 서서 사람들 앞을 지나가면 사람들은 자신의 바구니에 담긴 음식을 조금씩 배분해서 그들의 발우에 담는다. 이때 주의할 것은, 여자는 스님과 신체가 닿지 않게 해야 한다.     


여행 전 경험자들에게 들은 감상에 의하면, 주홍빛 행렬이 파도치듯 거리를 지나는 것도 장관이고, 승려들에게 먹거리를 나누다 보면 ‘비움’을 배울 수 있으며 마음이 경건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다. 북적북적 시장통 같은 거리에는 유난히 시끄러운 중국인 관광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는데, 도무지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느낄 틈도 없이, 눈앞을 지나가는 발우에 음식을 담다 보니 금세 내 바구니의 음식은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공양을 끝낸 우리는 길가를 따라 아직도 이뤄지고 있는 탁발을 구경하며 걸었다. 지나치게 가까이서 사진을 찍거나 플래시를 터뜨리는 게 금지되어 있는데, 승려의 얼굴 코앞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가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고 셀카봉을 들고 승려의 바로 옆으로 가서 찰나를 포착해 함께 셀카를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기대했던 거룩함과 경건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리는 빨리 이 거리를 벗어나 그냥 동네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조용한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조금씩 밝아오는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만끽했다. 탁발 덕분에 일찍 일어나 아침 공기를 쐴 수 있게 된 건 좋았다.        


이제는 여행상품화가 되어버린 루앙프라방의 탁발.



라오스에 거지가 없는 이유


탁발에 조금은 실망한 우리는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모닝 마켓에 가는 길에 비로소 ‘탁발의 진짜 모습’을 만났다. 길가에 앉아 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는 남자아이 둘이 보였다. 조금은 비루한 차림의 아이들 앞으로는 커다란 바구니에 찰밥과 과자 등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그런 소년들의 바구니야말로 탁발의 진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원래 탁발은 수행자가 꼭 지켜야 할 규율이자 생활수단이다. 승려들은 상업 활동과 생산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인데 욕심과 고집을 없애고 덕을 쌓기 위한 행위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의 탁발에는 ‘나눔과 평화’라는 의미가 더해져 있다. 불교가 국교인 라오스 사람들은 수입의 일정 부분을 무조건 신에게 헌금하거나 공양해야 하는데, 이에 불평하지 않고 섬길 수 있음을 그저 감사하게 여긴다고 한다. 아침마다 거리로 나가 승려들과 먹을거리를 나누는 것도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승려들은 또 이를 불교를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는다. 공양받은 음식들을 또다시 다른 이들과 나눈다. 가난한 도시의 아이들, 그리고 지나가는 개들까지도 이 공양받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필요 이상의 음식들을 사들이고 냉장고에서 썩게 만들었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웃어주던 아이들.


라오스에는 거지가 없다. 이전 글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되찾은 이야기를 썼을 때, 야시장에 ‘거지들이 많았다’고 표현했던 것이 사실 조금 마음에 걸렸다. 달리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해 거지라는 단어를 썼지만, 사실 그들은 거지가 아니었다. 먹을 것을 구걸하지 않고 그저 남아서 버리게 되는 음식을 가져갈 뿐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저지하지도 않았다. 루앙프라방에서 그건 그저 당연한 행동일 뿐이었다.    


나는 평소에 많이 벌고 많이 쓰자는 주의였다. 몸을 혹사시켜가며 많은 양의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은 술을 마시는데, 옷을 사는데 펑펑 써버리는, 철없는 시간을 반복해왔다. 계속 그렇게 많이 쓰고 살기 위해서는 먼저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므로 더욱 열심히 일했다. 루앙프라방 뒷골목의 아침 풍경은 그런 나의 탐욕에 일침을 가했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그곳에서 가졌던 여유로운 마음은 점점 잊혀져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왔지만, 지금은 적게 벌고 아껴 쓰며 ‘일’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으니 확실히 그 여행으로 인해 나는 조금은 변한 것일까.         



라오스가 신을 대하는 방법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오후, 커피를 마시고 이름 모를 사찰에 들어갔다. 라오스의 스타벅스라 불리는 조마베이커리 바로 건너편에 있는 조그마한 사원인데 관광객들은 잘 들어가지 않는 곳이었다. 이름도 모르고 들어갔지만 나중에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Wat Hua Xiang, 왓 호씨앙이라고 불리는 사원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불공을 드리는 사람들로 사찰이 붐볐다. 잘은 모르겠지만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인지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리고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동자승들은 앞마당에 자유롭게 앉아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웃음이 가득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여유로워 보이던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신성한 사원으로 손꼽히는 대표 사원, ‘왓 씨엥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온통 황금빛과 화려한 모자이크로 빛나는 왓 씨엥통은 세계적인 관광지인 만큼 수많은 여행자들뿐만 아니라 라오스 곳곳에서 순례를 온 승려들이 많았다. 왓 씨엥통이 커다란 규모로 시선을 압도한다면, 왓 호씨앙에는 일상적이고 소박한 풍경이 있을 뿐이다. 평화의 풍경이었다.


불공을 드리는 라오스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범한 옷차림과 새카만 손톱들이 보였다. 괜스레 코끝이 찡했다. 그들은 ‘잘 살기’ 때문에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나누는 거였다. 라오스인들이 신을 섬기는 방법에는 ‘서로 간의 나눔과 사랑’이 포함되어 있었고, 왠지 모르게 그들의 삶이 조금은 부러워졌다.     


어쩌면 신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 또한 자기만의 신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같은 종교라도 국민성에 따라서 조금씩 그 규칙이나 신의 모습이 다른데, 라오스 사람들이 만든 그들만의 부처는 어디에서 본 부처보다도 너그럽고 착한 얼굴이었다. 라오스의 신은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고 섬겨야 하는 신이 아닌,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소통하는 신이었다.


서로에게 좋은 향을 주는 신과 인간, 가장 이상적인 관계였다.     


사람도 신을 섬기고, 신도 사람을 섬기는 곳. 신에게 바친 음식이 다시 사람에게 돌아오는 곳. 스스로의 신과 평화를 만들어가는 그들이 있는 곳. 그런 곳에 살면 정말이지 행복할 것 같다.


화려함이 돋보이는 왓 씨엥통.


소박하지만 신성한 왓 호씨앙.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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