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가희 Sep 17. 2020

시장에서 만난 루앙프라방의 삶

소박하지만 화려하게


루앙프라방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여행객으로 붐비며 언제나 활기를 띠는 여행자 거리의 얼굴. 그곳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강변과 골목길의 느긋하고 소박한 얼굴. 극명하게 다른 두 얼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서두름 없이 언제나 여유롭다는 점이다.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사람이다. 시간은 느긋하게 흐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순수한 미소가 반짝반짝 빛난다. 도시에 머물며 어느덧 내가 동경하게 된 그들의 삶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었다.    


우리는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내내, 저녁이면 어김없이 시장에 갔다. 여행자 거리에 기다랗게 늘어져 있는 야시장에는 직접 손으로 만든 아기자기한 수제품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데, 필요한 물건이 없더라도 그냥 걸으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곳엔 그들의 삶이 그대로 스며 있었다.            



정성으로 빚어가는 삶, 몽족야시장    


늦은 오후가 되면 여유로웠던 시사방봉 거리가 분주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리어카를 끌고 나와 노점을 펼칠 준비를 한다. 잠시만 눈을 돌렸다 다시 돌아가 보면, 어느덧 거리는 온통 빨갛고 파란 천막으로 물들어 있다.    


코끼리나 라오어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며 에스닉한 패턴의 원피스나 바지 등의 의류를 비롯해 각종 패션잡화, 열대과일로 만든 비누, 참파꽃 모양의 소품들, 나무 바구니 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이다. 작은 가방이나 파우치, 커다란 캔버스 위에 몽족 여인들이 직접 수를 놓은 아기자기한 문양들이 가득하다. 몽족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디테일한 표현력이 돋보인다.     


야시장 준비 중 / 왕궁박물관과 야시장


루앙프라방 야시장은 몽족야시장이라고도 불리는데, 몽족은 라오스와 중국, 태국 일부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이다. 라오스에 거주하는 몽족은 대부분 난민 출신으로 가난하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산간에 몽족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몽족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아주 어린아이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길가에 나와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본다면 조금 서글퍼질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눈을 한번 마주하면 절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야시장에서 만난 몽족의 모습은 달랐다. 피난을 와서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특유의 화려함을 잊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처럼, 시장에 앉아 장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밝고 활기찬 기운이 넘쳐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들이 나름대로 예쁘게 꾸미고 나와 수공예품을 팔기도 하고, 물건을 파는 남편 뒤에 앉아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사람도 있었다. 만삭의 여인이 구슬땀을 닦아가며 장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이 전혀 서글퍼 보이지 않았다. 얼굴마다 함박웃음이 넘쳐나고 있었기에.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과 함께, 큰 욕심은 없지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가장 신기한 건 다른 야시장들처럼 호객행위를 하거나 목소리를 높여 비싸게 물건을 팔려 하는 상인이 없다는 점이었다. 방비엥의 야시장에서 큰소리로 “매니 컬러~ 디스카운드 포유~”라 말하며 붙잡는 상인 때문에 난감하게 웃어야 했는데, 루앙프라방의 상인들은 손님이 먼저 관심을 보이기 전에는 절대로 어필하지 않는다. 그 행동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들에 대한 자부심처럼 보이기도 했다.     


삶.


루앙프라방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야시장 초입에 있는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시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기에 늦은 저녁 야시장을 철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머니를 도와 뒤에서 리어카를 미는 유치원생 남짓의 아이가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슬프기보다는 웃음이 났다.    


아픈 역사와 가난한 삶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날마다 캔버스 위에 형형색색의 실로 문양을 새기면서, 자신들만의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루앙프라방의 부엌, 아침 시장     


루앙프라방의 또 다른 백미. 모닝 마켓.    


야시장이 관광객들을 위한 시장이라면, 아침 시장은 현지인의 냄새가 물씬 난다. 이른 아침에만 반짝 열리는데 루앙프라방산 각종 식재료를 볼 수 있으며 전통적인 라오스식 문양이 새겨진 옷보다는 실제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기성품들을 많이 팔고 있다.    


사실 이곳에서 여행객이 살 물건은 딱히 없지만, 좁은 골목을 걸으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면 금세 시장 한 바퀴를 다 돌 정도로 구경은 재미있다. 옆에 있는 식당에서 쌀국수를 사 와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먹는 신발가게 아저씨, 사원 입구 계단에 앉아 과일을 파는 모습, 조금 생소한 모습의 길거리 음식들과 식재료들의 모습. 일상적이면서도 이질적이고 재미있는 풍경이다.    


루앙프라방 현지인들의 삶을 조금 더 깊게 보고 싶다면 아침 시장에 가보는 걸 추천한다.     


루앙프라방의 하루를 여는 아침시장



비-루-방 야시장 비교 TIP    


비엔티안:
메콩강변에 열리는 시장으로 걷다 보면 다리가 아플 정도로 규모가 크다. 라오스 특유의 공예품들보다는 공산품이 많다. 휴대폰 케이스, 나이퀴나 아디다수 옷 등이 있지만, 마그넷 같은 기념품도 있는데 그다지 유니크하지는 않다. 일정 중 마지막 날에 갔기에 선물용으로 참파꽃이 그려진 연필 장식품을 사려고 했는데. 가격을 물어보자 바로 대답하지 않고 눈을 굴리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빠져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시장을 벗어나 강변을 좀 걷다 보면 바비큐 노점들이 나오는데, 특별한 맛도 아니고 비싸지만 분위기가 좋아 한번 즐겨볼 만하다.     


방비엥:
여행자를 위한 작은 시장. 루앙프라방의 시장보다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여행 중 막 입을 수 있는 옷 등은 여기서 사는 게 좋다(비싸지 않은 가격이기에 최대한 빨리 사서 많이 입는 게 이득). 가격은 대체로 루앙프라방보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저렴하다. 참고로 파우치, 가방, 앞치마 등의 자수가 들어간 것들은 다 수제품이라 똑같은 색과 문양이 하나도 없으니 꽂힐 때 사는 것이 좋다! 루앙프라방에 가도 같은 모양은 찾을 수 없다. 북한 술을 (비싸게) 파는 곳이 있으며, 신닷 노점이 저렴하고 맛있다.    


루앙프라방:
가장 화려한 야시장. 기념품은 무조건 여기에서 사는 게 좋다. 예쁘고 독특한 것들이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 흥정은 무조건 반 이하를 깎고 들어가야 하지만, 계속 실랑이해도 안 깎아주는 건 깔끔하게 포기하고 제값을 내야 한다. 특히 커다란 캔버스에 새겨진 자수 작품들은 진짜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거라 다른 물건들에 비해 많이 비싸다. 그러나 가격을 심하게 올려 불러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눈탱이는 맞으면 안 되겠지만, 재미나 승부욕 때문에 지나치게 흥정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옷들의 재질이 괜찮아서 아직까지 실내복으로 잘 입고 있다.                    




※ 이 여행기는 2019년 11월, 누구나 마음껏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가깝지만 먼 과거의 추억입니다

이전 08화 인간과 신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