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아란 자투리들

by 김키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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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전의 이월을 지나 고슬고슬의 삼월이 왔다. 봄이다. 봄인가 드디어.


홀로코스트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이들은 커피로라도 몸을 씻은 자들이라고 하던데 겨울의 무기력은 전신의 축이 되어 가장 기본의 돌봄마저도 흐들거리게 했다. 머리도 감지 않은 채 우수수 지나가는 몇의 하루들 사이로 검정치마의 antifreeze가 흘러나온다. 아스라함으로 풀풀 대는 여기저기를 향해 이것저것을 되묻는다.

Night dancer-시원하고 무심한 노래가 몇의 때를 상기시킨다.

기분 좋게 취해서 녹여먹던 새벽 길바닥의 더위사냥, 우리의 휴일 조휴일의 사인을 받아 들던 민트페스타, 다 함께 불러대던 antifreeze와 수십의 영화를 스친 그 모든 아트시네마가 그러하다. 극장 앞 몇천 원짜리 국밥과 20여 분의 흑백 무성영화, 함께 본 에릭 로메르와 경계도시, 시답잖은 농담과 시시덕거리며 나눠먹던 나의 첫 서대문 기름떡볶이가 그러했다.

다르덴의 로제타와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성냥공장 소녀에게서 받아 든 위안은 여전하고 결과 불안을 다독이던 씨네코아는 사라졌지만 보는 내내 벅차게 울고 웃던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기억한다.

나라는 인간을 공고히 하는 구조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틈과 틈을 비집고 불쑥불쑥 되새겨진다.

무신경하던 시간의 개념과 지양하던 사회적 순서들, 무성의한 타인의 소음들 사이에서 자분자분히 걷고자 하던 나의 작고 심드렁한 안간힘을 그 틈을 흘러든 감화를 되새겨본다.

단단하기도 하고 첨벙 대기도 하는 그 고슬한 어제의 흙들을 뒤로한 채 언제나처럼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나만의 방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