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의 색)
작물이 가지는 고유의 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적당한 끼니와 이 정도면 뭐-의 식사가 즐비했고 맛있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딱히 일정 너머의 시간을 에너지를 쏟지는 않는 편이었다.
건강에 대한 새로운 플랫폼이 절실해진 이후에서야 먹을거리를 챙기기 시작했고 하루가 가고 두어 달이 지나 반년이 넘어가는 동안 하루 걸러 하루 끼니를 짓다 보니 어느 순간 작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고유의 색과 특유의 식감들, 각각의 질감 하며 어우러지는 서로들까지, 다채로운 투성이이다. 그중 유독 마음이 갔던 것은 색이다. 자기에게 가장 자기 다운 색을 지니며 그것을 드러내고 살아지는 존재들, 애써 애쓰지 않고 지지부진해하지도 않으면서 소모적이고 덧없는 비교로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않는다. 지리멸렬한 독으로 가득 찬 비루함 같은 건 그네들에게서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평온하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좋은’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오늘과 내일은 어떤 것일까. 그 하나의 답을 그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애쓴다고 꾸며지는 것이 아니고 꾸민다고 가져지는 것도 아니다. 남루하지 않게 반짝이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을 그렇게 작물에게서 배웠다.
생선이 도착한 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생선과 기타 해산물들을 주문한다. 인터넷으로 생선을 주문한다는 것에 반신반의였는데 받아보니 꽤나 만족스럽다. 신선도 높은 양질의 생선에 더불어 퀄리티 있는 사이드 제품들까지 갖추고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톡톡하다. 생선가게의 주문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다. 비릿한 달콤함이다.
이전에 한번, 연말이고 기분도 낼 겸 오징어 먹물 바게트를 주문한 적이 있는데 내부 사정으로 품절이 되어 급한 대로 그네들 마음대로 일반 바게트를 보내주었다.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한 입 베어 문다. 맛있다.
아무래도 밀 자체를 프랑스에서 가져와 만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한들 냉동 인스턴트보다 못한 우리 동네 빵집의 바게트랑은 비교도 안되게 훌륭했다. 괜찮은 바게트를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고서도 받아 들 수 있다니 충분히 기쁘다. 아쉽게도 편차는 있었다. 구멍이 없을 수 없다. 이번 달에 받아 든 두 번째는 지난달과 같지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동네 빵집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본 그곳의 에끌레르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곱씹을 만큼 인상이 깊다. 생애 가장 맛없던 2007년 영국의 식빵 조각이 떠오르는 맛이다. 그 불쾌한 종이짝의 잔상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뇌간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동네 마지노선의 맛, 한 사회가 수용하는 최하점의 맛이 그 집단의 핵심이 되기도 하다. 완전히 썩어버리지 않은 최소한의 바닥을 유지할 것 그게 한 인간과 사회의 기본이자 전부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