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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단식, 그 후

by 고은유

원래는 일주일 간 하려고 했던 저녁 단식이었다. 잠시 내 식생활을 환기하기 위함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어서 며칠 더 연장하게 되었다.


퇴근길에는 보통 저녁으로 뭘 할지 혹은 뭘 살지 생각하기 마련이었는데 그 대상이 사라지니 고민없이 바로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대신, 집에 가서 무얼 먼저 할지 생각해놓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사천리로 숙제들을 끝내고 평소보다 빨리 하루의 끝, 여유를 맞이했다.


'저녁은 없다'라고 생각하니 식욕을 참는 괴로움이라는 존재 자체가 생기질 않았고, 배고픔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언제 찾아올지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동안 안먹어도 될 음식을 먹었던 건가?


그렇게 저녁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아주 개운하다. 아침에도 역시 허기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녁 시간을 아끼고, 여러모로 가벼워지는 이 저녁 단식이 참 좋았다.


기간 중에 저녁 약속도 있었는데 주로 차를 마셨다. 감기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는 걸 위안 삼으며 저녁밥 없이 약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일 없었다.)


그렇게 10일차 저녁, 카페에 들러 역시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뱅쇼를 서비스로 주시는 게 아닌가!


'이걸 마시게 되면 내 10일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을까?'


'이미 10일이나 했는걸. 뭐 별일 있겠어?'


잠시 고민을 했다. 그런데 사장님이 직접 끓이신 거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 손수 직접 만든 것에 약하다.


'뱅쇼... 는 먹어야지.'


빈속이라 조금 걱정됐지만 감기 기운이 있을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반 정도를 마신 것 같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데 다음날 바로 회귀본능이 발동했다. 10일간 유지해 온 단식이지만 한번의 예외를 취급하자 10일의 장벽이 무너졌다.




원래는 7일만 하려고 했던 거였고, 리프레쉬 개념이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했지만 그래도 좀 더 지속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후로 다시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다만, 그 전보다는 가볍게 먹게 되었고 죽과 같은 부드러운 음식을 찾게 되었다.


역시 어떤 행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을 해야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하고, 어떤 상황에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한번 예외를 취급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해보려고 하면 그 전보다 수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노력해온 것들을 그만두려고 하면, 잘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는지? 그동안 어떤 노력들이 쌓아왔는지? 여기에서 그만두어도 괜찮을지. 잠시 중단했다가 재개하려면 얼마나 어려운지를 떠올려봐야 한다.


저녁 단식을 영원히 할 생각은 없지만 한번씩 하기에는 생각보다 할만하고 그 효과는 꽤 크게, 그리고 바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이따금씩 해봐야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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