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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들어도 좋은 말

by 고은유

#1.

보고싶어요


역시, 아주 잘했어요


고마워


우리는 잘맞는 것 같아


이름이랑 참 잘 어울리네요.


차례대로 연인, 직장 내, 부모님, 친구, 처음보는 사람으로부터 들었을 때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 같은말이라도 말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들어도 별 감흥이 없어진다.


예를 들어 연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 나를 보고싶다고 하면 ‘흠 그렇구나,’ 하고 끝난다. 부모님께는 다름 아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좋다. 그동안 받아온 것을 조금이나마 드리고 그 화답으로 받는 마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내 업적을 인정받는 게 가장 좋다.


심리상담을 갔을 땐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어요, 고생많으셨어요.’ 하는 말에 울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2.

평가자의 평가 내역을 얼마전부터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판도라의 상자, 과연 열건가 말건가?


나를 평가한 내역이라니, 살짝 긴장되긴 했지만 그래도 열어봐야 했다. 최근자부터 하나씩 열어갔다. 평가내역에서 평가자의 성향이 드러난다.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직장생활을 원했던 어떤 팀장님의 평가내역은 아주 간결하고 그 누구보다 짧았다. 특별한 내용 없이 무난한 평가였다.


즐겁게 일했던 모 부서에서의 평가는 얼마나 잘 평가되어 있을까(?) 하는 어느정도의 기대감이 있었고, 그 기대감은 충족되었다.


남은 내역이 줄어갈수록 점점 더 궁금해졌다. 2년차 시절의 내역을 열어본 순간 나는 자리에서 탄성을 질렀다. 칸칸이 까만 글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있었기 때문에.


당시 팀장님은 어떤 평가를 남기셨을까? 아끼는 책을, 끝이 있음을 아쉬워하며 읽을 때처럼 한자한자 천천히 아끼며 읽어내려갔다.


그 어떤글보다도 길었던 그 길은, 이 직원은 이렇게나 훌륭한 직원입니다, 그러니 눈여겨봐주세요(이런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지만) 하는 느낌까지 전해져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좋은말만 나열한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내용들이 세세히 담겨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점이 뛰어난지 기재되어 있었고, 그 지점은 당시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나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관한 것이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런 면을 알아차려 주시다니, 바로 위 상사가 아니라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이런 것까지 면밀히 다 봐주고 계셨구나. 상사로부터 듣는 칭찬은 언제들어도 힘을 나게 한다.


가슴속에 강하게 뿌리내린 칭찬은 항상 그 자리에서 빛을 내어준다. 그 빛이 너무 미미하게 느껴져 보이지 않을때도 있지만 충분히 밝아 어둠을, 무서움을 몰아내주기도 한다.


요즘 나는 아주 어둡지는 않은 이 길에서 가끔 정전을 경험한다. 갑자기 왜 깜깜해졌는지, 전기가 끊긴건지 갑자기 밤이 된건지 이유를 찾다 내 눈이 멀어버렸나 눈을 깜박여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다시 잘 보인다. 내 눈이 먼게 아니구나. 그래도 정전이 반복되면 다시금 생각한다. 진짜 내눈이 먼게 아닌건가? 정전이 반복되면 내 자신에 대한 의심도 반복되고 그 주기가 짧아지면서 의심의 크기도 커진다.


이 세상은 원래 밝은건데 한번씩 이유모를 어둠이 내려오면 왜 내눈이 멀었는지 이따금씩 생각하고 스스로를 의심해야하는건지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큰 깜깜함을 내가 몰아낼 방법은 없으니 가만히, 지나가기를 기다려야지. 전력수급도 나아지고 밝은 동네들이 모여들면 언제 깜깜했었는지 다시 밝음을 만끽할 시기가 분명 올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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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