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는 어디론가 갔습니다.
분양받은 이튿날, 화장실 냄새는 고약했다. 죄다 감자밖에 없었다. 무슨 오줌 냄새가 그토록 지독한지 화장실 위치를 방 안에서 밖으로 하루빨리 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이틀. 아깽이 이름을 '실버'라고 지었다. 실버는 그다음 날에도 종일 잠을 잤다. 나와 함께 거실에 대짜로 누워 잠을 잤다. 실버는 나의 얼굴과 목에 자기 얼굴을 미친 듯이 비볐다. 그렁그렁 소리를 하루 종일 내고 다녔다. 어디든 따라다녔다. 실버의 친화력은 고양이가 아니라 강아지 같았다. 욕실 앞에서까지 지키고 서 있었다. 우린 고작 이틀 전에 만났을 뿐인데.
실버는 우리 집 아이가 숙제를 할 때, 공부를 할 때도 책상 위에서 늘 잠만 잤다. 힘없이 축 처진 상태로 잤다. 그렇게 정말 잠만 잤다. 원래 잠을 많이 자야 정상인 줄 알았다. 집안 곳곳을 점령한 실버는, 나의 침대 밑에서 자기 시작했다. 그렁그렁 소리에 한잠도 잘 수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틀 동안 모래에 반죽된 감자만 처리했지 직접 이 아이가 볼일을 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새우깡(똥)이 없다. 종일 잠만 자는 것도, 힘없이 어슬렁어슬렁 쫓아만 다니는 것도, 딱히 놀아본 기억이 없다.
토요일 저녁, 아이방에 우연히 들어가게 되었다. 한 두어 시간 머물렀다. 마침 실버가 화장실을 사용했다. 설사다. 아이가 물 설사를 줄줄 하고 있었다. 힘없는 발로 고스란히 덮었다. 10분 있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간다. 구토를 하기 시작한다. 내 눈으로 믿을 수 없었다. 구토를 하기 위해 굳이 화장실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소변도 대변도 아닌 구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는 고양이가 몇이나 될까? 구토를 하고 눈물을 흘리고 침까지 흘렀다. 상태가 심각했다. 난 그 자리에서 얼어 버렸다. 침만 꼴깍 삼켰다. 그동안 공부한 모든 고양이 상식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옷을 주섬주섬 걸쳐 입고 차키를 잡았다. 남편은 영문도 모른 채 헐레벌떡 소파에서 일어나 따라나섰다.
난 모든 걸 놓치고 있었다. 실버는 아픈 고양이었다. 그렁그렁 소리는 아프다는 이야기였고 날 쫓아다닌 이유는 자기 아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난 몰랐었다. 아깽이라서 잠을 많이 잔게 아니라, 아파서 힘이 없어서, 탈수 상태가 진행 중이 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지 않은 이유는 다시금 계속 설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느낀 좌절감은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지 않을까. 죄책감까지 동반되었다.
토요일 저녁 9시 40분.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10시까지 올 수 있냐고 물었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하필 부슬비까지 내리다니. 대로를 가로질러 질주를 했다. 일요일 오전 브런치를 마치고 온 가족이 면회를 갔다. 실버는 웅크린 채 있었다. 몸에 힘이 전혀 없었다. 금식을 시키고 있었다.
실버는 병원에서 5일 동안 머물렀다. 5일 동안 아침 운동 후 매일 병원을 들러 실버 상태를 확인했다. 유산균을 복용 중인 듯했다. 닥터 당은 제발 집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5일 차 되는 날 닥터 당은 오프였고 닥터 'Nam'(남) 실버를 케어하고 있었다. 집으로 데려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실버는 나의 껌딱지가 되었고 더욱 잠만 잤다. 회복된 것이 아닌 듯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2일 차부터 다시 설사를 시작했다. 심각했다. 이전 설사이후 몸이 회복이 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설사를 시작했다. 쾡한 눈과 살이 빠져 목이 기다랗게 보였다. 베란다로 참새를 보고 있는 실버 뒷모습은 암울했다. 집안의 기운이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반려묘가 아픈 것은 고통이었다. 말없는 실버는 더욱 힘들었겠지.
몸에 갈비뼈와 쇠골이 다 드러났다. 눈에 초점도 없다. 걸어 다닐 힘도 없어 보였다. 잠을 자는지 쓰러 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다시 설사가 멈추었다. 실버는 음식을 스스로 중단했다. 다시 병원으로 실버를 들고뛰었다.
실버는 다시 병원에 5일 동안 머물렀다. 고양이를 분양받고 이틀 만에 설사, 구토, 침 흘림 증세를 보였고 그 뒤로 실버는 병원 철장 안에서 생활을 했다. 1키로그램 겨우 되던 아이는 700그람으로 탈수가 심했고 깃털보다 가벼웠다. 식빵 자세로 웅크린 체 앉아 있던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워 말없이 다가왔다.
병원을 더 이상 방문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난 견딜 수가 없었다. 실버는 병원에서 지냈다. 병원에서 연락이 없다. 4일 차 되던 날 전화를 했다.
닥터 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요. 실버는 분양이 힘들 것 같습니다."
"환불받아 가십시오."
2주 동안 집과 병원을 드나들며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4일 만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닥터 남이 있었다. 실버는 '빈혈'수치가 심하게 낮다고 했다. 피검사를 진행했고 유전 문제라고 했다. 백혈병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고 했다. 베트남 브리더들 중 과하게 임신을 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어미묘에게 항생체를 대량 투입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새끼는 항생제가 들어간 모유를 먹고 한동안 건강한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실버처럼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까지 간다고 한다.
그렇게 간단했다.
의사는 처방전에 '환불'이라고 적었다.
분양받을 때 1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환불 절차 역시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환불' 처방전을 적고 있는 의사에게 지금 내가 사고 환불받는 게 물건이냐고 물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시뻘겋게 충혈된 나의 눈을 보고 의사는 말했다. 그래서 환불을 백 프로 다 해주는 거라고 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들도 몰랐다고 했다. 치료가 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집에서 내가 돌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닥터 남은 실버의 하얀 잇몸을 보여 주며
'고양이를 위해서 환불해 주는 겁니다.'
'집으로 데려가면 고양이가 위험에 처합니다.'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병이 호전되지 않고, 탈수가 심합니다. 잇몸 하얀 거 보이시죠?'
'죄송합니다. 집에서 케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살아난다고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 고양이는 앞으로 평생 아플지도 모릅니다.'
'고양이는 병원에 머물러야 합니다.'
'브리더에게 연락을 취할 것이고, 브리더가 도로 데려가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집으로 데려오면 고양이가 더욱 위험하다는 말,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
미친년처럼 의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저 두 마디는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고 빈 케이지를 들고 병원 문을 돌아 나왔다. 난 열흘 동안 난 외출을 하지 않았다.
집이 조용했다.
어두운 기운은 더 이상 없었다.
눈부시게 내리쬐는 태양이 미웠다.
2주 뒤 샵을 다시 방문했다.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생사가 궁금했다.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브리더가 이미 도로 데려갔다고 했다. 난 지금 실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줌바 친구들과 주변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 마음조차도 힘들었다.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고양이 잘 있어?'가 인사였다.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주변인들은 '이제 좀 어때?'라고 물었다. 그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일주일 동안 줌바는 가지 않았다.
다른 친구로부터 최근에 들은 말이다.
' 최근 내 친구도 거기 펫 샵에서 고양이 분양받았는데, 너와 증상이 똑같았어.'
' 그 친구도 환불을 받고 한동안 우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지.'
'그래서 유기묘 입양했어.'
'그 펫 샵은 정말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 있어'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캠프에서 돌아온 아이는 텅 빈 집을 보고선 항상 그렇듯 책만 들여다본다.
우리 가족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미안했다.
나의 실수 같았다.
아닌 것도 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도 안다.
하지만.
아팠다.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