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를 친건지 집을 지은 건지 알 수 없는 첫 캠핑.

그도 함께 즐거운 날이 올까?

by Choi

호치민에서 부터 알고 지내던 이쁜 동생이 다시 하노이로 발령이 났다. 국제학교 선택을 고민하던 우리는 나의 하노이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유니스' 국제학교를 정했다. 현재 하노이 국제학교 '유니스(UNIS)'는 접수하고 기본 일 년 정도는 대기를 해야 입학할 수 있는 학교라고 엄마들 사이 입소문이 자자하다.


다급한 그녀의 목소리에 난 두 아이 학교 자소서와 추천서를 영어로 번역, 학교 측과 통화, 이메일 주고받음, 등등 허드렛일을 도와주었고 오전에 카페에서 학교 서류 작성과 절차를 함께 했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시험 날짜를 받았다. 기존 호치민에서 국제학교에 다녔던 경험과 학적 기록이 도왔던 것 같다. 영어 인터뷰, 작문, 구술시험 그리고 수학 시험 이후 다시 한번 영어 시험 요청을 들어왔다. 영어가 조금 못 미더웠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 놈은 합격했으나, 밑에 동생은 한국 학생 인원 제약으로 일 순위로 대기 중이다. 하노이 유니스에 입학하기 위해 수많은 통화와 고민을 이야기하고 잦은 만남을 가진 우리는 캠핑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고 마침 그녀는 짐 정리에 있었다.


하노이에 캠핑 도구를 가져가지 않을 거라는 결론.


난 캠핑 풀 패키지를 그녀에게서 아주 저렴하게 구입했고 캠핑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가고 있다. 사실 학교 입학 절차를 도와준 대가로 나에게 주고 싶다고 했지만, 받기에 너무나도 큰 풀 패키지였다. 그야말로 캠핑족들의 짐이었다. 믿을 수 없는 짐의 분량이었다. 캠핑인지 원룸 이사인지 알 수 없는 짐들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조차 없었다. 어릴 때 엄마 아빠와 함께한 캠핑과는 사뭇 달랐다. 추억 속 캠핑은 배낭 두 개 정도였는데 저 짐들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 길이 없었던 난 우선 받아서 베란다에 쌓아 두었다. 짐이 너무 많은 나머지 어디 들여다 둘 곳이 없었다. 베란다에 싸여있던 짐은 영광스럽게 우리 코코(고양이)의 놀이터가 되었고 덕분에 발톱인지 이빨인지 알 수 없는 구멍들이 슝 슝 뚫려 있었다. 털도 한몫했다.


드디어, 햇살 가득한 5월, 그녀의 첫 추천 '태안'으로 떠났다. 작년 10월, 코로나로 차 수급이 쉽지 않았다. 기다리던 SUV를 포기하고 자가용 세단을 구입했는데 최근 후회가 막심하다. 캠핑 짐이 다 실리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모든 짐을 차 안에 구겨 넣는데 1시간 남짓 걸렸다. 진땀을 뺐다.


남편이 사뭇 걱정되어 텐트 치는 동영상과 사진 그림 모든 자료를 넘겨주며 함께 공부했다. 함께 사는 이 남자 큰소리를 친다. 한번 보더니 다 알겠다고 한다. 간단하다고 한다. 쉽다고 한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네! 라는 식으로 자신만만하다. 원래 이런 거 잘한다며 어찌나 큰소리를 치는지 찰떡처럼 그를 믿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운전도 내가 하고, 볼트 나사, 배관교체, 샤워기 교체, 벽에 못 박는 전동 드라이버로 간단한 못 박기 등도 다 내가 하는 마당에 이 남자 이것만은 할 수 있겠지.' 굳건히 믿었다. 그를 의지하고 16년을 살았는데 아마 할 수 있겠지. 그래도 남자인데 나보단 낮겠지. '


태안까지 차가 막혔다. 처음 가는 길이라 이리 막히는 줄 몰랐고 그리 먼지도 몰랐다. 그렇다. 한국 지리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 살았고 대학교 때 잠깐 서울에 거주했던 게 다였기 때문에 사실 지리 위치 거리등 감을 잘 못 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요즘 한창 공부 중이다. 1박 2일을 하기에 태안은 진심 먼 거리였다.


두 번의 휴게소를 거쳐 도착한 태안. 이쁘고 깔끔했다. 아이는 곧장 방방이로 뛰어가서 놀았고 이 남자 차근차근 텐트를 펴기 시작한다. 믿었다. 그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첫 캠핑이니만큼 설레었고 얼마 만에 맡아보는 한국 바다 냄새가 콧구멍 속으로 밀려들어 오는데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야~ 캠핑이다!! 고기도 구워 먹고 말로만 듣던 넋 놓고 불구경도 해봐야지. 머릿속은 벌써 파전에 고기를 굽고 있었다. 점심도 대충 먹은 터라 배도 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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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땀이 줄줄 흐른다. 머리도 아프다. 텐트가 유튜브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정되어 힘을 받지 못한다. 아는 동생에게 전화했고 다른 동영상을 다시 보내왔지만, 우리 남편은 반복적으로 이상 하는 말만 했다. 1시간 30이 흘렀다. 노스 픽 텐트 설치 방법을 다시 읽어 보았다. 순간 집에 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미웠다. 그때만 해도 16년 남짓 함께 살아온 이 남자가 생에 처음으로 텐트를 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처음이었다. 어릴 때도 민박 혹은 당일치기를 즐겼다고 했다. 그 남자에게는 텐트를 치고 텐트에서 자고 장작에 불을 붙이는 이 모든 것은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나와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이 남자를 난 너무나 모른 체 함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잡아주고 도와주던 난 텐트 바닥 아래에서 양 사이드를 잡아주는 스트링 클립을 풀기 시작했다. 그것을 풀게 되면 텐트는 영원히 세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난 이것이 당겨지고 엉켜서 안 되는 줄 알았다. 어릴 때야 아빠 엄마가 텐트를 쳤으니 난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대참사가 일어났다. 텐트는 영원히 안드로메다 저 우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해파리처럼 허물 허물 아리무 세워도 고정이 되지 않았다. 2시간이 흘렀다.


이 와중에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 보호판이 산산조각 났다. 덕분에 액정도 기스가 났다. 지금이야 웃으면 글을 적지만 5월인지라 해가 짧았고 드디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었다. 아이가 놀다 지쳐 돌아왔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아직도 텐트를 못 쳤냐며 울먹였다. 그 아이도 많이 기대했던 첫 캠핑인지라 엄마 아빠가 버벅거리고 있으니 걱정이 많이 되었단다. 바람은 매서웠다. 바닷가라 차가웠다. 마음도 서글펐다. 배도 고프고 아이는 서러워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혼자서 놀기에 지치고 지친것이다.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난 다시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춥고 슬펐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그 남자는 말없이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러더니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다. 관리소에 다녀온것이다. (순간 정말 남편이 황당했다. 저 남자가 지금 할아버지를 왜 모시고 왔을까? 차라리 옆이나 다른 텐트에 가서 도움을 청하면 될 것을, 왜 할아버지를 모시고 왔을까? 아. 이 남자... 정말 지금 진심 힘든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나에게 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고, 설령 내가 옆 텐트에 가서 도움을 청할까 싶어 계속해서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 이 남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텐트 중심이 어디인지, 어디가 문인지 물었다. 당연히 우린 어디가 문인지 앞인지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를 알 리가 없다. 우리도 이날 처음으로 이 텐트의 실물을 보는 상황이라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주변을 매의 눈으로 스캔했다. 갑자기 곧장 우리 텐트와 같은 텐트를 치고 여유를 부리며 한없이 우리를 애처롭게 쳐다보던 가족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들 좀 도와주시오" 한마디 툭 더 지고선 할아버지는 사라지셨다.


대각선에 계시던 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슬리퍼를 신고 달려와 주셨다. 사모님도 함께 와주셨다.

"안 그래도 사실 도와주고 싶었는데, 혹시 또 몰라서..."

"아이도 어리던데...이거 금방 칠 수 있어요..."


그녀는 아래에 지탱으로 버텨야 하는 클립이 다 풀어진 것을 보고선 깜짝 놀랐다. 우리는 끝과 끝을 찾아 다시 이어 클립을 끼웠다. 이것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폴대를 세웠다. 나와 우리 신랑이 전혀 몰랐던 것은 폴대 아래에 철심 클립을 폴대 안으로 끼워야 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것은 텐트의 기본이기에 그 어떤 곳에도 설명서에도 그 클립을 폴대 안으로 끼워야 한다는 설명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화면으로 보여줬을 뿐. 하지만 우리 남편은 그것을 보고도 알 리가 없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구조였던 것이다. 클립을 끼우는 순간 텐션을 받아 텐트는 탄탄하게 세워지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4시간가량이 흘렀다. 뼈대가 다 세워졌다.


이너텐트가 뭔지, 밑에 어떻게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어디가 앞인지, 두 부부가 친절히 알려 주었다. 외부 텐트를 쳐주고 가시더니 다시 돌아오셨다. 이너텐트를 들고 어디가 앞인지 몰라 헤매고 있는 우리를 다시 목격하신 거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 쳐주시고 가셨다. 팩을 박는 곳도 알려 주셨다. 해는 떨어졌고 어둑어둑 한 곳에서 짐을 풀었다.


급한 대로 파전을 굽고 그분들께 후다닥 가져다드렸다. 배고픈 남편과 아이를 뒤로 한채 그분들께 먼저 달려 갔다. 매우 좋아하셨다. 다행히 파전을 먹고 싶었다는 말도 덤으로 듣고 왔다. 가슴이 훈훈해졌다. 고마웠다. 고마웠지만 말로 다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수있는 것은 따뜻할때 그분들께 파전 한판 드릴수 있는 것이 전부였다.


졸지에 노숙자가 될뻔한 우리 가족에게 집을 지어 주고 가신 분들이었다.


갯벌도 못가 보았다. 바다는 멀리서 살짝 구경만 했다. 의자와 캠핑 도구를 그냥 밖에 내버려 둔 채 잠을 청했다. 캠핑인지, 텐트를 친 건지, 집을 지은 건지 알 수 없는 우리의 첫 캠핑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짐을 밖에 두고 자면 이슬을 맞아 척척하게 된다는 것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텐트에서 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단순해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짐을 다시 패킹 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시 우린 캠핑하러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남긴 채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는 차는 더욱더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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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캠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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