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호치민 국제학교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습니다. 저 또한 교육자 이기도 했었고, 해외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경험을 토대로, 저의 시각으로 글을 연재했습니다. 호치민에서 유별난 부모였고, 또 한편으로는 불만 가득한 학부모 이기도 했습니다. 때론 어떤 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것이 삶을 고달프게도 했습니다.
계속해서 호치민 국제학교편 글을 기억에 의존해서 이어가고 싶지만,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이라 현실감각이 부족할것 같아 이 글을 끝으로 책으로 묶어 발행하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왜 한국에 와서까지 아이를 기어코 국제학교에 입학을 시켰는지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불안정한 정서로 인해 중학교 때 많은 방황을 하며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 아이큐 검사를 다시 할 정도였습니다. 다시 했더니 저는 상위 몇 프로 안에 들었습니다. 자랑은 아니고 그 정도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 그리고 학교에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모든 행동만을 콕콕 골라서 했습니다. 성적순으로 우리를 판단하는 한국 교육이 진절머리 나도록 싫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란 제 인생과 먼 이야기였습니다. 머리도 숏 커트였습니다. 반항의 눈빛, 우울의 눈빛, 분노로 똘똘 뭉쳐진 학생이었습니다. 집에서만 맞은 게 아니라 학교에서도 자주 맞았습니다. 한 번은 국사 선생님께 뺨을 맞은 기억도 있습니다. 시험 성적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국사 선생님이 미웠습니다. 그녀가 교실을 나간 후 그녀에게 쌍두문자 욕을 날렸는데 열린 창문으로 그 소리가 새어 나간 겁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녀에게 싸대기를 미친 듯이 맞았습니다. 진정 질풍노도의 시간을 겪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잘한 건 없지만, 그때 그 시절에 '매'는 어디든지 허용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매'라고 까지 했으니까요. 이러한 경험을 아직까지 고이 간직하고 있다 보니 작년에 아이 학교를 결정할 때 별다른 고민이 없이 바로 국제학교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해외에서 그렇고 그런 국제학교에서 우등생으로 거듭납니다. 국제학교 교육 방식이 운 좋게도 저의 성향과 맞아 떨어진 거죠.
학교의 중요성, 교육의 중요성, 선생님의 중요성을 그 사춘기 나이 때 몸소 경험을 하게 되었고 무슨 인연인지 저희 아이는 태어남과 동시에 호치민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습니다.
결론은 그래서
저는 한국 공교육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육, 한국 학교, 한국 학교 선생님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학교 교직에 있었냐고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가르치는 일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꾸역꾸역 했습니다. 저는 학교 선생님이 도대체 왜 공무원이어야 하는지 아직도 우리나라 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올해 잠깐 기간제로 근무했던 고등학교에서 다시 연락을 받았지만 저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교사라는 캐리어를 이제 마감하려 합니다.
여기서 한국학교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제가 왜 기필코, 기어코, 굳이, '국제 학교를 선호하는지?, '우리 아이는 선택의 여지없이 왜 국제학교에 보내졌는지?'에 대한 저의 변명이라 보시면 됩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그럼 이제 이야기의 요지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베트남에서 다녔던 국제학교와 한국에서 다니고 있는 국제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곁들여 전해 드리겠습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