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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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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Feb 02. 2024

'거절'을 했는데 눈물이 났다.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아, 나란인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안정감을 느낀다. 친근함이 불편하고 다가옴이 부담스럽다. 시간을 항상 필요로 한다. 느릿한 달팽이처럼 나에겐  넉넉한 시간과 여백이 필요하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항상 불안감을 느낀다. 심리학측면에서는 내가 상대의 기대치에 맞추어 나의 존재감이 우월하기 바라는 마음이라 본다. 인간관계에서 철저한 '개인주의'를 선호하는 나의 병중 하나다. 난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다. 그 벽안에 사람을 잘 들이지 않는다. 


최근 나의 화두는 '정말 내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남에게 빈틈없어 보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지 계속 생각했다. 개성이 강하고 사고 자체가 좀 4차원적이긴 하지만 남에 시선 속에 내 삶을 투영하는 사람이 아님은 확실해졌다. 그렇다. 난 멋대로 내 맘대로 살 자유를 나에게 허락한 후 좀 홀가분히 살고 있다.


삶이란 게, 인생이란 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니지만 흘러가는 삶 속에 난 매 순간 결정하고 결심하며 산다. 똑같은 날의 반복 같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매일을 멍하게 보내기도 하고 빡빡하게 보내기도 한다. 순간순간 나의 결정하에 인연이 맺어지고 흩어짐을 알았기에 더욱 자유롭고 싶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최근 인간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나의 공포와 불안감의 원인이 '거절'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편에게 미안함, 죄스러움을 남들보다 과하게 스스로 부여하고 있다. 착한 코스프레도 아니고 신데렐라 콤플렉스도 아니고 단지 멍청함이다. 아직 극복하지 못한 과제중 하나다.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가정에서 자란 나의 유년시절이 한몫한다. 항상 순응적이고, 순해야지만 했던 어린시절. "순하다, 순하다", "착하다, 착하다"라는 말을 365일 듣고 난 그래야만 되는지 알았던 어린 시절. 

그 뒤에 숨어서 난 나 자신을 칼로 난도질하고 있었다. 모자란 년..


운동센터를 새로운 곳으로 이동할까 고민 중에 있다. 그곳 정해진 스케줄과 수업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평일 금쪽같은 나의 시간을 새로운 스케줄에 맞추어 조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변수가 들이닥쳤다. 새로 등록할 사람 시간이 안 맞아서 변경이 가능하냐는 거다. 이유인즉, 아기가 너무 어려서였다. 아... 황당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버거운 시간조절이다. 내가 만약 '안 돼요'라고 거절을 하면 그 육아맘은 수업을 못 듣게 될 것이고 원장의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이쯤 되면 나의 발작은 시작된다. 

가슴이 쪼여온다. 눈물이 꾹꾹 차오른다. 종일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진다. 평일시간 버겁게 허거덕 거리면서 그 육아하는 엄마의 시간에 나의 시간을 맞추고 싶지 않다. 새로운 원장님에게도 미안하다. 


분명 나의 잘못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틀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있다. 숨이 가쁘고 호흡이 힘들다. 머릿속 화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뒤죽박죽 실타래처럼 엉켰다. 


마음이 쪼그라들고 목구멍에 돌덩이가 박힌 것 같다. 

입장을 바꿔 생각했다. 


나라면? 나라면 정해진 스케줄에 맞춘다. 왜? 단체활동이니까.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고 구구절절 나의 개인 사 정 까지 이야기해 가며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깔끔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다면 다른 기관도 알아보던지 이번 기회를 포기한다. 


원장님께 내가 왜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사업이고 그녀의 재량 아닌가? 육아하는 엄마에 맞춰 수업을 하나 다시 개설하던지, 아니면 개인수업을 하던지...


그렇다. 나란 사람은 지극히 개인주의다. 딱히 피해 주고 싶지 않고 피해받고 싶지 않고 안되면 나는 내가 포기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다. 항상 그랬다. 조용히 움직이고 소리 없이 행동한다. 나의 이런 행동에 서운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극히 개인사정인데... 왜 그토록 밀착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아무래도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나 보다. 


현 나의 시점은

여전히 가슴이 달달달 떨린다. 결국 '환불'을 요구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뻗친다. 마음이 부서졌다.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 '내가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아서 그런 거야?'라고 반문해 본다. 하지만 현재 나는 '아니야'라고 말한다. 정해진 스케줄표가 있었고 그것에 동의 하에 등록한 거다. 육아엄마가 원하는 시간대가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시간대면 괜찮지만, 그 시간으로 인해 나의 평일 시간이 엉망으로 꼬여버리고 체력까지 바닥나 버리게 되면 나의 직업 '주부, 엄마'로써 역할에 까지 타격을 받는다. 


이젠 더 이상 남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이해 많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버겁다. 내려놓고 싶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아무리 주부라지만 시간이 넘치고 남아돌아 아무 때나 어느 누구에게 다 맞추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한발 내딛었을 뿐인데 이렇게 평일날 직업도 없고 집안일만 하는 주부라서 시간을 좀 조정해달라는 부탁은 제발 삼가해 줬으면 좋겠다. 나 역시 쉽지 않은 등록이었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시시콜콜 '나 책 읽어야 해요, 글 써야 해요,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요, 오후에는 아이 학원 라이딩까지 해야 해요. 낯 잠잘 틈도 없어요.'라고 일거 일투족 저 시답잖은 일 때문에 시간 조정이 도저히 안된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학교도 일반학교와 달라 행사도, 마치는 시간도, 방학도 모든 것이 다르다는 이유까지도 말하고 싶지 않다. 작가도 아닌데 책은 왜 읽는지, 글은 왜 쓰는지도 말하고 싶지 않다. 어쩔 땐 체력이 한계에 부딪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친정부모님이 올라오거나 병원을 모시고 다녀야 하는 날에는 편도와 입술이 다 부르튼다고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난 정해진 시간에 운동만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조용히 있고 싶다. 

가만히 있고 싶다. 

나의 개인 프라이버시가 존중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이틀을 심사숙고하며 눈물로 보낸 뒤, 난 센터에 가서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도저히 시간조정이 안될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다른 분께 피해가 가서 어떡하죠? 정말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원장님:

"뭐가 죄송해요.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먼저 등록하신 분에 맞춰야죠. 기존 약속한 시간 그대로 하면 됩니다. 걱정 마세요." 

라고 말했다. 


지옥 같은 이틀이 지나갔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거절'을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고

나에게

위협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협박하지도 않았고

나에게

소리 지르지도 않았고

부정적인 악담도 하지 않았다. 


난 어릴적 위에 해당하는 모든 과정을 매번 겪으며 성인이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한동안은 들어야만 했다. 지금도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며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렸다. 전화로 소리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옆에서 듣고선 할머니가 무섭다고 한다. 뭐, 이젠 그러려니 한다. 


사거리를 지나 걷는 도중  두꺼운 패딩 팔뚝 소매로 눈물을 씩 닦았다. 쪼그라들었던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안도감과 긴장감이 소리없이 내려앉았다. 


두 입을 꼭 다물고 스스로 '잘했어'라고 했다.


by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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