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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삼킨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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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 Aug 29. 2020

XYZ: 얽힘이 아니라 가벼운 만남.

어떠한 노동이라도 가볍게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X, Y, Z 얽힘이라기 보단 X, Y, Z의 가벼운 만남이라 칭하고 싶다.


얽힘 이란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뒤얽혀서 풀기가 어렵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치 만나서는 안 되는 어떤 무엇들이 서로 엉키고 설키어 풀 수가 없는 상태. 혼란의 상태. 뒤엉킨 상태. 헝클어진 상태이다. 긍정의 뜻 보다 부정적 의미가 강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하는 단어이다. 가벼운 만남이라 칭하고 싶은 이유는 사회 노동형태가 어차피 변화하고 있는 중이었고 우리가 좀 더 서둘러 그것들과 만났을 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도 아니며 나쁜 것도 아니다. 앞으로 수많은 변화를 마주칠 것이고 그때마다 우린 가볍게 그 만남들을 이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다. 저절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예로 유튜브와 인스타 그램 플랫폼 노동 시장이다. 이 파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나름 유명세와 이름을 떨치고 있는 교수나 강사들은 마치 그 시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지금 우리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은근히 강조한다. 지금 사회에서 부여하고 있는 노동의 가치는 플랫폼, 온라인 즉 접속을 통한 시장에서 이루어지니 하루속히 무엇이든 시작을 하라고 부추긴다. 그럼과 동시에 그들이 직접 리더와 멘토 역할을 자칭하며 팔 로워 수를 늘림과 동시에 이익과 인플루언스라는 명성을 얻고 있고, 일반인들은 돈이 된다고 하니 너도 나도 온라인 사업에 모여들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 핸드폰을 보면 전 세계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안에서, 페이스 북안에서, 유튜브 안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는 알람이 뜬다. 각 나라별 시간 차가 있기에 가상의 세계가 분주하다. 그들은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스스로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각을 하지 못한 채 가상의 사회를 너도 나도 다투며 지금 만들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빠른 과학 발전과 인공지능 AI 그리고 최첨단 기술. 우리 인간이 원해서 그 모든 것을 만들고 개척했다. 근본 적으론 세상의 진화는 인간 자체가 만들어 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시간이 지나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이 발생하고 그 노동의 가치를 따라가기 위해 우리는 다시 분주해진다. 우리 자신의 삶과 색깔을 망각한 채로. 마치 쳇바퀴 속의 햄스터처럼.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세상이 변한다고 바뀌고 있다고 느끼며 사회를 부추긴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일의 본질은 삶의 의미이자 목표였다. 인간은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한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쳤다. 밤샘 야간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느끼고 보람된 성취감을 느꼈는가? 시대가 변하는 속도에 맞추어 새로운 노동의 형태가 나타나면 우리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자기 계발을 했다.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돌진했다. 사회가 원하는 (자본주의) 가치관에 나를 맞추고 아울러 지게끔 틀 안에 끼우기 위해서. 그 어디서도 우리를 위한, 우리의 정체성을 위한, 삶의 본질을 찾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서. 내면을 돌보지 않은 체 허덕 거리며 더 잘살기 위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더 나은 삶이 저 끝 어디에 라도 있는 듯 너도 나도 서둘러 쫓아가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번 2020년, 썩은 동화 줄과 같은 코비드 19 덕분에 전 세계의 X, Y, Z 가 모두 비슷한 처지와 환경으로 변한 세계를 만났다. 그냥 변화 중이었고 그 변한 세상을 좀 더 빨리 X, Y, Z가 만난 것이다. 제 아무리 잘 사는 나라, 강대국 일지라도 모두 진흙으로 뒤덮인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돈이 많고 경제가 부유한 나라도 경제가 탄탄치 못한 나라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갑작스러운 퇴사, 사업 붕괴, 더욱 좁아진 일자리 기회, 능력 제한, 폐업하는 가게와 식당들. 이 모든 사태가 불과 7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로 동일하게 마주한 현실이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우리 노동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사회가 바라는 가치와 뒤틀어지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노동의 틀을 만든 곳은 교육현장이다. 학교다. 모든 X, Y, Z가 동일하게 거쳐온 교육기관. 세월이 흐르고 시대는 변했지만 변함이 없었던 교육 과정.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를 창출하기 위한 일괄적이고 획일화된 교육이 쭉 진행되어 왔다. 나름 통합식이다, 모둠 수업이다, 경험 위주다 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육의 발전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씩으로 보여만 주었다. 기업과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 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우리 사회는 교육현장을 공장 처 럼 가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동자를 창출하는 학교의 교육 과정 가치관이 유럽, 미국, 아시아 가 다르게 구분이 되어 있다. 왜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는 미국에서는 아이들의 학교 교육은 특히 아시아 쪽과 눈에 띄게 다르다. 왜냐하면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노동자 창출 중에서도 리더로서 의 노동자를 배출하는데 중점과 초점이 되어 있다.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 철학, 명상 수업, 내면 강화 수업이 학교 교육 과정 중 최고로 우선시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나를 찾는 법. 나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주변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용기. 도와줄 수 있는 넉넉함. 학교 생활의 적극적인 참여 유도.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지름길. Risk taker를 강조. 책 읽기. 글쓰기 수업. 운동. 음악시간 악기수업. 이 모든 것을 현재 2020년 실행 중이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교육관을 강조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인성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라는 슬로건은 학교에서 내세운다. 학교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 부모와 함께 노력한다. 그리고 공부와 온라인 플랫폼 교육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반면에 아시아 싱가포르, 홍콩, 중국, 한국 등의 교육은 리더로서의 노동자 창출 시스템이 아니라 경영, 경제 등 리더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노동자 산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학교에서 수학, 과학, 국어, 영어 혹은 제2 외국어 등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을 배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일등을 해야 하고 좋은 기업에 취업해야 한다. 혹은 판사,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서. 회사에서 원하는 인간상이 되기 위해서. 사회가 바라는 가치관에  선택받기 위해서. 지식 위주의 교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과하게 한 곳으로 치우친 나머지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겪을 수 있는 성장의 기회를 우리는 박탈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지금 성인으로 성장하여 사회의 한 일원이 되었고 갑작스러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 변화에 병들고 아파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삶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노동이란 하나의 도구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억울하고, 분노하고 아파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겐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그 내면의 힘은 사회,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길러진다. 달라진 노동의 형태에 놀라거나 충격을 받을 게 아니라 새로운 것에 신속히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힘. 나의 색을 찾고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내 적힘을 스스로 생성해 낼 수 있는 힘. 다양한 나를 만들어 앞으로 언제 어디서나 시시 각각 변하는 사회에 흔들림 없이 충분히 발맞추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인간상을 우리 교육이 배출한다면, 그 인간을 가진 나라가 리더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 X, Y, Z가 그 어떤 노동의 형태와 마주치더라도 가볍게 만나고 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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