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봉쇄 기행문 머릿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막막했던 10월, 11월, 12월이 지나고 벌써 1월이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한국이었고 2022년 새해맞이 티브이 프로를 뜨끈뜨끈한 거실 바닥에 누워 시청 중이었다. 아늑함을 느낄 여유가 드디어 생긴 것이다. 난 이 여유로움이 달아날까 서둘러 동네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고개를 들어 거리를 보았다. 순간 '헉' 하는 신음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아름다웠다. 그 거리는 몇 년 동안 그림과 사진 속에서만 보던 겨울 도시였다. 그 그림 속 겨울 도시가 실제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눈 온 뒤라 순백 같은 도시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난 어린아이처럼 아무도 밟지 않은 새 하얀 곳만 골라 한 발씩 꾹꾹 눌러 내디뎠다. 귀국한 지인들이 말하기를 '한동안, 아니 아마 일 년은 '여행자 상태일 거야'라는 말이 '이~뜻이었구나'를 새삼스레 다시 한번 느꼈다. 마치 잠깐 여행 온 듯한 느낌이랄까.
도서관을 향하는 줄곧 머릿속에 환희와 기쁨 그리고 그 말로만 듣던 '일상 속 행복'이란 꽃망울이 빵빵 터지고 있었다. 정말 머릿속에 온갖 몽우리 진 들꽃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가 활짝 피었다. 이제 더는 온라인으로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종이로 된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들이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상상만으로 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이젠 나도 작가들이 강연하는 강의나 세미나에 참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 때문에 기분이 더욱더 좋았다. 정말 강연과 강의 세미나에 갈 수 있다면 그땐 난 어떤 기분일까? 나이와 흘러가버린 세월을 잊을 만큼, 그 순간만큼, 난 감성에 흠뻑 젖어 있었다.
또, 맹목적으로 '한국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도서관이 한국에 있는 건물이라서 좋았다. 한국 도서관에 한국 책들이 있다는 존재와 도서관 건물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는 현시점이 눈물 나도록 감사했다. 더는 글로써 표현해낼 재간이 없다. 너무나 사뭇 치도록 그리웠던 도서관에, 눈 오는 날, 두 발로 타박타박 걸어왔다는 지금, 앞으로도 원하는 만큼 또 올 수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감정과 감성에 젖어 제대로 정신줄을 놓았다는 느낌.)
도서관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큰 창으로 햇빛도 들어왔다. 마치 영화 속 장면과 흡사한 그 속에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청바지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서 감탄만 연발 터트리고 있는 '나'. 우아한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주인공과는 약간 거리가 먼 아줌마이지만, 종이책이 가득 찬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빌리고 있는 나의 모습은 실제 상황이었고 현실이었다. 더는 상상과 꿈속이 아니었다. 난 빌린 책을 동여매고 집으로 돌아와 계속 읽었다. 이 책 저책 맘껏 읽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누워서, 앉아서, 엎드려서 굴러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난 석 달 동안 알람조차도 꺼버리고, 고의로 멀리한 브런치 '작가의 서랍'을 열었다. 그 속엔 호치민 완전 봉쇄 기간 동안 남겨놓은 글, 끄적이다 만 미완성 문장들, 중간 어디쯤 쓰다 덮어버린 기록들, 우울함과 슬픔이 뒤죽박죽 엉켜 징징거리거나 푸념 가득 찬 글들이 난무했고 황당하고 힘들었던 사건과 사고들이 기록되어있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넋두리도 그런 넋두리가 없더라.
그때 저 봉쇄 기간 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사실을 근거로 기록한 '글'이라지만 나 스스로가 매우 우울했었고 몸도 아주 좋지 않았다. 올린 글이 푸념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우려감, 또는 일기장이 되어 버릴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가득했다. 어쩜 다듬어지지 않은 저 글을 올리고 난 자폭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인지 그때 그 우울했던 기억들이 잘 떠오르지는 않는다. 신기하다. 정말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나 스스로가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국에 돌아와서 너무 바빴던 탓이기도 한 것 같다. 다시 읽어 보고 다듬고 수정을 거친 다음 이곳에 하나하나 한국 오기까지 과정을 그려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 한국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지만, 그래도 16년을 살다 떠나온, 나의 30대와 40대를 홀라당 받친 그곳에서의 마지막 나의 모습을 기록에 남겨두어도 추억이 될 것 같다는 혼자만의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것도 추억이니깐….
또 다른 한국행 새 출발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감정은 세상 어디를 가나..
나의 삶은 결국 '나 만의 삶' 임을 알아 가는 여정 같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