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생활부적응자의 불교적수행

by 수 안

토니 페르난도의 저서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보니' 는 마음챙김의 진정한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마음챙김이란 마음과 몸이 순간순간 무엇을 경험하는지 알아차리고, 주의를 기울이고, 깨닫고, 온화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친절과 연민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사람은 생각을 멈출수는 없다. 마치 숨을 쉬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한다. 뇌는 끊임없이 사고하게 만들어졌고 그 출발점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것 부터다. 그러나 나처럼 외부자극에 예민한 사람은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주관적이라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람이나 상황이 나의 자율성을 해치고 간섭하며 내가 존중받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여길때가 많다.


'다들 자기 마음대로 해. 갑이 되려고 해. 나는 그냥 따라주는 사람으로 취급해.'


자극이 버거워 살기 힘들어질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외부출입을 극도로 제한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은 체 3년을 보내니 사소한 자극조차 용납이 안되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명절때 아무곳도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유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은 달콤했지만 문제는 내 안에 있었다.


뇌가 일을 덜 하고 편안히 쉬기를 바랐었는데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모르는 뇌는 평화롭게 반복되는 단순한 집안 환경에 만족하지 않았다. 곪았던 옛상처들이 있었다. 과거 트라우마 기억이 매순간 시도때도없이 떠올라 매일 괴로웠다. 심지어 과거에 맡았던 냄새와 피부감각까지 기억나서 오감조차 현재에 있지 않고 방황했다.


그런 내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코로나가 끝나자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세상에 나를 던져놓은것이다. 처음에는 지하철 탈때 공황증세가 나타났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약을 먹고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니 하나부터 순차적으로 하자 마음먹고 무엇이든 시도했다. 처음에는 빈집에 방문하여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시키는 알바부터 했다. 사람을 마주치지 않으니까 긴장할것도 없다. 개를 능숙하게 다루고 교감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2년정도 지속하고 동물병원에 테크니션으로 잠깐 근무했었다. 동물병원 맞은편에는 약국이 있다. 그곳에 근무하는 약사 아내가 퇴근하면 동물병원에 들르는데 한번은 내가 강아지 위생을 마치고 손님께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주는 자세와 코멘트를 따갑게 지적했다. 아내는 동물병원의 또다른 상사였다.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는 20대 테크니션은 무엇이든 능수능란했다. 그러나 뒤에서 그녀를 험담하는 수의사의 태도는 마치 이중인격자 처럼 껴졌다. 나한테도 일을 잘해주어서 한껏 고맙다고 하다가 몇시간도 안되 무섭게 째려보는 상사니 적응이 안됬다. 나는 그냥 펫시터나 해야겠 라는 생각 들어 그만버렸다.


자기마음대로 하는 이유는 정확하다. '내 사업장이고 내가 돈을 주니까. ' 저 나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적응을 못할까 자책 뿐이다.


나의 뇌가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도록 모든것을 차단하고 집에 갇혀있으면 과거의 트라우마 기억으로 괴롭고 현재의 무수한 자극을 처리하도록 하면 그것이 버거워 과부하가 걸린다.

'세상 사람들을 이해할수 없어. 나는 부적응자인가봐.' 로 귀결될 뿐이다.


'마음속의 모든 생각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이것이 마음챙김의 기본이다. 사람은 타인의 시선 처럼 나 자신을 바라볼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평소로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주의를 돌려 현재감각에 집중해야 한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바라보고 다시 호흡이나 감각으로 돌아온다. 생각이 일어나는 패턴을 관찰하다보면 동시에 감정도 일렁이는데 몹시 버거울때가 많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바라볼 정도의 쉬운 감정이 아니였는지라 엄청나게 걷고 몸을 쓰는 것으로 감정을 관찰하고 흘려버렸었다.


'나는 사람에게 적응을 잘 못해서 화가나'

라는 생각이 올라오는구나.

좌절감과 수치심 그리고 분노라는 감정도 함께 느껴지면

빠르게 걸으며 호흡하고 바람을 맞는다. 감정의 농도를 옅어진다. 한껏 강력했던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스르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내가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였는가 라는 생각이 들지만그렇다고 집 나간지 3년 된 남편에게 생활비 전부를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다. 언제 돈이 끊길지도 모른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번뇌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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