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Mar 10. 2020

꿈을 꾼다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다

매일 '한 발 다짐'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간 꿈에 닿을 것이다

자꾸만 늘어나는 허리둘레와 몸무게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는 요즘. 적당히 찌다 말겠지 싶었는데 몸무게를 잴 때마다 인생 최고치 경신이다. 정녕 몇 해 직장 생활에 느는 건 눈치와 뱃살뿐인가. 경각심이 생겨 꼭 운동을 해야겠다 싶다가도 약속에, 야근에, 이런저런 핑계로 쉽지 않다. 이렇게 살다간 정말 빨리 죽겠다 싶어서 시작한 '계단 오르기'.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점심시간에 밥 먹고 사무실에 돌아갈 때 꼭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행위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사서 고생이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9층에 있다. 매일 하루 두 번씩 9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근데, 마냥 쉽지만도 않다. 왜냐하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니까. 명백하게 더 쉽고 편한 길이 존재하니까.


엘리베이터를 타나, 걸어 올라가나, 결국 9층 사무실에 도착하는 것은 동일하다. 아니, 엘리베이터를 타면 더 편하고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훨씬 경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계단을 오르길 선택하는 순간 게임은 시작된다. 처음엔 산뜻하게 출발하지만 5층 정도 지나면 후회가 밀려온다.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어중간하게 올라온 터라 다시 뒤돌아 내려가기도 애매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끝까지 가보자'. 그렇게 꾸역꾸역 한 걸음씩 내딛는다.


인생이 '죽음'이라는 종착역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면, 꿈을 꾸고 추구하는 것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것과 같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죽음에 도착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아니, 불필요한 고생길을 걸어 가느니 그냥저냥 되는대로 편하게 살다 가는 것이 더 이득일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한 번 살다 가는 인생인 것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꿈을 꾼다는 것은 굳이 고되고 험한 길을 일부러 선택하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이다.




2. 과정 가운데 성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 고생'인 길을 선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과정 가운데 성장과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계단을 꾸준히 오르면 다리에 근육도 붙고 폐활량도 좋아진다. 몸무게가 줄기도 한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본래 8층에 위치하던 사무실이 9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불과 한 층 차이. 그런데, 그 작은 변화가 체감상으로는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다. 한 층 더 걸어 올라가는 게 뭐라고 그렇게 숨이 차던지. 그런데, 그 또한 몇 주 반복하다 보니 점차 너끈해졌다. 이제는 중간에 멈칫하는 부분 없이 한 번에 9층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도 마찬가지로 성장이 있다. 개인적인 업무 역량과 전문성이 쌓일 수도 있고, 인격과 성품이 가다듬어질 수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며 지혜로워질 수도 있고, 간헐적이지만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낸 성취감을 한껏 누릴 수도 있다. 꿈을 좇는 과정을 누군가와 함께하며 맺어지는 끈끈한 유대감, 소중한 인연들, 그 또한 거친 꿈길 가운데에서만 쟁취할 수 있는 값진 자산이다.


계단을 묵묵히 오르는 일에도, 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일에도 분명 유익이 있다. 8층에서 9층으로 넘어가던 그 계단들이 참 높아 보였지만 이제는 한결 수월해진 것처럼, 꿈길 가운데 부딪히는 아픔에도 내성이 생겨 마침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힘든 만큼 성장하게 되니, 결국 그 아픔 또한 자라나기 위한 성장통인 셈이다. 




3. 꾸준함이 필요하다.


계단 오르기와 꿈길 여정의 세 번째 닮은 점은 '꾸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 반복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사실, 계단을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여러 번 결심을 했었고, 그때마다 나름 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항상 적당히 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엘리베이터와 계단의 기로 앞에서 매번 쉽고 편한 길의 유혹에 넘어진 탓에 나는 꾸준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며칠을 지속했던 상관없이 계단 오르기를 한 번 중단하게 되면, 다시 시작할 때에는 항상 처음의 체력 상태로 리셋이 됐다는 것이다. 잠깐의 시도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을지라도, 꾸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감정은 실제가 되지 못했다. 무의미한 도돌이표. 조금 나아진 거 같다가도 결국 제자리. 꾸준함과 연속성이 없다면 무거운 다리와 가쁜 숨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짐이다.


꿈길도 마찬가지다. 하다 말고, 시도하다 그만두기를 아무리 여러 차례 반복하더라도 그 노력들에 꾸준함과 연속성이 없으면 항상 제자리다. 아주 작은 결심이고 시도더라도 그것이 꽃 필 때까지 지속할 수 있어야지만 결국 열매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계단을 오르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결국 그 성패는 '나'에게 달려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어디까지 힘듬을 견딜 수 있는지'의 여부다. 외부적인 환경을 탓하는 것은 단지 포기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의지가 굳고 비전이 명확한 사람은 결국엔 버텨낸다. 꾸준함을 지속한다. 그리고 결국 빛을 보게 된다.




사서 고생인 길을 걸으며 성장해가기 위해서는 꾸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을 꾸는 것과 계단 오르기의 닮음이다. 그리고, 서로 닮은 이 두 행위 각각에서 낙오되지 않고 반드시 목표한 곳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바로, 목표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한 발 다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 계단에 한 발을 내딛는다. 그러면, 그 한 걸음이 아까워서라도 다시금 한 발 내딛길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다짐해가며 한 층을 오른다. 그러고 나면 다시 한 층 올라온 그 걸음들을 거름 삼아 다음 계단을 다짐하게 된다. 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 꾸역꾸역 다짐들을 쌓아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인가 목적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꿈길도 이와 마찬가지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발'이다. 오늘 하루의 과업, 지금 이 순간에 나에게 주어진 책임, 현재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한 발 한 발의 걸음을 옮기기 위하여 매 걸음 새롭게 다짐하고 발을 내딛는 것. 그렇게 매일의 '한 발 다짐'을 이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 


9층에 위치한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까지 총 190개의 계단이 있다. 그 말인즉슨, 매 번 계단을 오를 때마다 190번의 '한 발 다짐'을 할 수 있다면 절대로 실패 없이 언제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꿈길도 마찬가지다. 내 현재의 수준과 꿈 사이에 존재하는 계단 숫자만큼 새로운 한 발을 다짐할 수 있다면 나는 반드시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이 간격이 얼마나 벌어져 있는 것인지, 지금 내 위치는 어디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결국 도착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사실에 희망을 걸어봐야겠다. 언젠간 도착할 그곳을 소망하며 오늘도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최선을 다해봐야겠다. '한 발 다짐'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결국엔 꿈꾸던 그곳에 이르게 되길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