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수술을 받는다는 것
너무나 아플 때 이를 표현한 예술가의 작품은 그 무엇보다 그 고통의 상태를 뚜렷하게 대변함을 느낀다. 예술가는 자기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프리다 칼로도 그러했다. 프리다 칼로는 교통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불편함 몸을 갖게 되었다. 그녀를 괴롭힌 통증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그녀의 그림에서 여실히 잘 드러난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을 보면 아픈 사람의 삶과 그 고통이 느껴진다.
일생 동안 나는 두 번의 심각한 사고를 당했습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서뜨린 전차입니다. 부서진 척추는 20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죠. 두 번째 사고는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
그녀는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그녀의 자화상을 보면 사고로 인한 통증과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러한 그녀의 말대로 부서지듯 고통스러운 그림은 뭔가 불편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고 진실이다. 자신의 몸에 못이 박힌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만큼 아프지 않고서야 그릴 수 없다. 그녀의 남편 디에고도 이렇게 말하였다.
프리다의 자화상은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을 초현실주의로 분류하였으나, 그녀는 그러한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오직 사실만을 그렸다고 강조하였다. 그녀의 자기인지, 아픈 자신에 대한 느낌은 그러한 것이었다.
가슴을 절제한 여성들의 상실감도 그에 못지않은 고통일 것이다.
가슴은 여성성, 모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느 환자분의 이야기는 이러한 부분을 잘 나타낸다.
“내 가슴은 빈 둥지 같았어요. 인조유방을 하면서 채워진 느낌이에요.”
‘빈 둥지’라는 말은 충격적이지만 가장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표현에서 느껴지듯 가슴을 잃는다는 건 단지 신체의 일부를 잃는 것 이상이다.
어느날...
하루는 인상이 좋아서 기억에 남았던 한 환자분이 다녀가셨다.
밖에서 만났으면 친구가 되었음직한 내가 좋아하는 인상을 가졌다.
그분은 가슴 한쪽 절제를 받았다.
오늘은 인조유방에 대해 물으러 나를 찾아오셨다.
미련하게도 나는 단지 인조유방을 보여주며 맞추는 방법과 어디서 살 수 있는지만 계속해서 말했다. 당연히 맞추는 것이 좋지 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번이나 정말 괜찮은지 몸에 무해한 지를 물으셨다.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괜찮다고 얘기했다. 그래도 나갔다 또 들어와서 정말 몸에 무해하냐고 물었다. 너무나 간단한 원리로 착용을 하는 것인데 젊은 분이 자꾸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묻고 또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실까?
이해 못할 분으로 보이지 않는데... 왜 그러실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이 나가고 잠시 후 아차 싶었다.
물건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슴을 찾으러 오신 것이었다.
그 마음을 조금만 헤아려 드렸다면, 또는 해로울 것 같이 보이냐고 물어봐 드렸더라면 아마 정말 하고 싶을 얘기를 하셨을 것인데
난 시간에 쫓기고 매너리즘에 빠져 이러한 역할을 못한 것이었다.
실리콘 인조유방이든 솜이든 잃어버린 나의 신체, 나의 여성성을 되찾아 줄 수 있는 기대를 가지고 찾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 사러 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무엇을 찾기 위해 인조유방을 원하는지... 그것을 알았어야 했다.
진 왓슨의 <간호학>에 상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되어있다.
상실은 자아와 신체-사적이며 사회적인 정체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상실로 견주어질 수도 있다. 이는 신체상과 체격 및 자기표현의 상실과 연관될 수도 있다. 그러한 연관과 함께 자아, 가치, 아름다움, 욕망, 유능감 및 기타 특별한 능력에 대한 자기 정체감, 자아개념, 아이디어 및 감정과 관련된 상징적, 추상적, 심리적, 사회문화적 의미가 존재한다.
따라서 상실은 심리적(자아개념, 자존감, 정체감의 상실), 사회문화적(사회적 정체감, 사회적 역할, 가족 구성원 및 문화유산의 상실), 신체적 용어(신체 기능 또는 구조의 상실, 가치 있는 신체 속성의 상실)로 개념화될 수 있다.
가슴의 상실은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개념, 여성성, 아름다움, 균형 등에 대한 상실이기도 하고, 자아개념 자존감과 같은 심리적인 상실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진단 이후 여러 가지 치료에 의해 약해진 신체는 부부, 가족, 직장 등 사회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방암 진단을 받은 여성과 대화를 할 때에는 이와 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유방암을 진단받으면서 인해 건강과 안위의 상실을 경험한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오던 사람이 한순간에 중대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 충격과 절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스피노자는 절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절망이란 의심의 원인이 제거된 미래 또는 과거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공포에서 절망이 생긴다.
아닐 거라고 한 가닥 가졌던 희망이 무너지고 사실이 확인되는 그 순간 느끼는 그 느낌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불확실성이 확실한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꿈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다시 부정을 해보지만 확실히 사실이다.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의식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므로 이 순간에도 나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말을 혼신의 힘을 다해 찾는다. 작은 희망의 말에도 감사하고 그 말에 기대게 된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집과 회사에 돌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갑자기 멀게만 느껴졌던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면서, 집안일과 회사 일에 지장이 생기곤 한다. 이러한 상황은 최소 한 두 달 동안 겪게 된다. 그러니 말하고 싶지 않아도 내가 이러한 진단을 받았다는 것을 숨기기 어려운 상황도 생긴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주는 말들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회적인 나의 역할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진단을 받은 순간 또는 얼마 후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가 직장에 계속 다녀도 되는지 여부이다. 상담을 하면서 가급적 그만두지 않도록 권유한다. 건강이란 내 의지되는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이러한 일은 닥칠 수 있다.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또한 항암 화학요법을 하지 않는다면 수술로 인해 일에 지장을 주는 시간은 길어야 약 한 두 달 정도이니 양해를 받을 수 있다면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한다.
상담 이야기...
수술한 지 육 개월 정도 지난 분이 오셨다. 심장이 타는 듯이 아파서 응급실에 찾아갔더니 몇 가지 검사 후 정신과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몇 군데 병원을 다시 찾았는데 마찬가지 의견을 들었다. 그러다 결국 나에게 까지 온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모른 채 환자분의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나도 혹시 우울증일 수 있다고 얘기드렸다.
그분은 진단을 받았을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가정환경인 상황도 다 받아들였고 오히려 잘 극복해야겠다는 생각만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의 의지를 한 번에 무너뜨린 것은 통증이었다. 항호르몬제를 복용하면서 시작된 관절통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자 급격하게 우울해지더란 것이다. 그때부터는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울, 통증, 수면부족, 가족과의 불화가 더욱 뒤엉키며 커져만 갔다고 한다.
그분에게 건강이란 가고 싶은 곳에 어렵지 않게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신체의 고통 없이 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상실한다는 것은 더 이상 혼자의 의지로 감당하기 벅찬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닌 것이라 생각되었다. 결국은 종양정신센터의 도움을 받기로 결론 내렸다. 일단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중 하나라도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실을 겪을 때 보편적으로 부인, 분노, 우울, 회복의 순으로 비탄 과정을 겪게 된다. 진 왓슨은 비탄 단계에 따른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 있는 나 자신이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부인(충격), 분노(자각) : 부인과 분노를 하는 단계에서는 그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주변 사람들도 역시 정서를 표현하도록 해 주고 수용해 주어야 한다.
- 우울(포기) : 우울 단계에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때 새로운 정보를 접하고 같은 경험을 한 사람과의 교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 회복(해결) : 회복 단계에서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협력하는 단계이다. 자선적 기부 등 상징적 활동을 원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에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활동들을 계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나 유방암을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너무나 슬프고 분노에 찬 눈빛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아서 사실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왠지 그런 감정을 안 느끼게 해야만 할 것 같은 괴상한 직업의식이 생긴다. 그러나 당연히 그러한 감정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의 나는 초라하기까지 하다. 슬프다. 슬프다. 그러나 나는 슬픈 표정을 짓거나 감정에 빠지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없어... 이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보호자도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간호사도 보호자도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바로 지금 그 시기에 가장 필요한 공감이다. 그 시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일은 바로 공감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감하려고 하는 마음을 굳이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답게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면 지금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했을 것이다. 환자도 보호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굳이 억누르려고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흘러가게 놔두다 보면 이러한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치유는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진 왓슨은 자기이해, 자각, 상실에 대한 수용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고 하였다. 지금 나의 감정을 어떤 것인지, 지금 나의 상태는 어떠한지 아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첫걸음이 시작된다.
이를 위해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감정을 48가지로 나누었다. 철학자 강신주는 <감정수업>에서 이러한 감정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였다. 이 책을 권장하고 싶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48가지 감정은 비루함, 자긍심, 경탄, 경쟁심, 야심, 사랑, 대담함, 탐욕, 반감, 박애, 연민, 회한, 당황, 경멸, 잔혹함, 욕망, 동경, 멸시, 절망, 음주 욕, 과대평가, 호의, 환희, 영광, 감사, 겸손, 분노, 질투, 적의, 조롱, 욕정, 탐식, 두려움, 동정, 공손, 미움, 후회, 끌림, 치욕, 겁, 확신, 희망, 오만, 소심함, 쾌감, 슬픔, 수치심, 복수심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이 롤러코스터와 같이 회오리치며 몰아닥칠 때가 있을 것이다. 무의식 속의 내가 마구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럴까? 폭풍 같은 감정이 나를 괴롭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때 내가 지금 이러한 상태라는 것을 알려 줄 지침서가 필요하다. 일단 알면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위의 감정 중 나에게 유독 끌리는 감정을 툭 펴서 읽다 보면 눈물도 나고 감동도 받으며 치유되는 기분이 들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해설한 강의도 있으니 강의를 먼저 들어 보는 것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