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
올해 4월부터 채식을 시작하고 벌써 8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객관적으로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그사이 많은 변화가 생겨났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그 과정 동안 나의 변화를 글로 기록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글에 투자할 시간적 여유가 넉넉하지 않았다.
혹시나 그런 건 다 핑계라고 반박한다면 쿨하게 인정하겠다.
그동안의 나의 채식 일상을 한 단어로 공유하자면 "완벽하지 않음"이다.
가능한 집에서는 비건 식단을, 외부에서 역시 락토-오보 식단을 유지하려고는 하지만
아는 맛의 유혹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나를 완벽함이라는 단어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바쁘게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도중 마주한 편의점.
간단하게 편의점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편의점을 들어가 제품들을 살펴보면 아무리 단순한 에그 샌드위치라도 고기가 들어있다.
계란 샌드위치에 고기가 어디 들어가냐고? 조미료 성분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완벽하고 착실한 채식주의자는 아쉬운 마음을 남긴 채 그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편의점을 나왔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완벽하고 싶다는 욕심조차 없어 일탈 한번 하는 마음으로 쿨하게 결제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샌드위치를 먹어치운다.
그리고 한 마디 내뱉는다. "아 겁나 맛있다"
연말을 맞아 친구 집들이 겸 송년회를 위해 지방에 놀러 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비건 식당을 찾아본다. 그나마 한 군데 있던 비건 식당은 얼마 전 문을 닫았다고 한다.
서울이 아닌 이상 비건 메뉴, 비건 식당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건은 포기하고 화덕피자를 먹기로 한다. 메뉴를 보니 화덕피자와 파스타, 리조또, 스테이크 등 다양한 메뉴가 있다. 락토-오보 메뉴라도 찾아보는데 피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고기 혹은 해산물이 들어간다.
"그냥 먹고싶은 거 아무거나 시키자. 같이 나오는 고기랑 해산물은 너네 다 먹으면 되지"
그렇게 마르게리따 피자와 새우가 들어있는 오일 파스타, 베이컨이 들어있는 버섯 크림 리조또를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초중고 동창을 만나는 술자리에 참석했다.
안주로는 어묵탕과 옥수수 구이를 주문했다. 필자는 어묵탕의 무와 면, 국물을 흡입하고 버터에 볶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었다.
근무하는 회사의 오프라인 행사를 무사히 마치고 모두와 기분 좋게 회식을 하기로 했다.
동료들은 나를 배려해 채식 메뉴가 있는 식당을 찾아보지만 주말 늦은 저녁 문을 연 식당들은 대부분 고깃집이다.
나는 그냥 아무 곳이나 가자고 한다. 고깃집에도 사이드 메뉴는 있으니까.
그럼에도 결국 멕시코 식당을 찾아냈다. 버섯 파스타가 메뉴에 쓰여있다.
오랜만에 치즈와 우유의 맛이 잔뜩 느껴지는 버섯 크림 파스타를 먹는다. 간이 좀 짰지만 아주 맛있다.
그런데 먹다 보니 느껴져서는 안 되는 식감의 무언가가 씹힌다.
제대로 살펴보니 베이컨이 숨어있었다. 베이컨은 고기다. 즉, 나는 고기를 먹었다.
과연 나는 죄책감이 들었을까? 아니.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다음부터 베이컨을 빼고 먹었다.
정말 철저하게 식단을 지키는 채식주의자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비난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름의 공존'이 너무나 중요하다.
위에 있는 상황에서 내가 완벽함을 고집했다면 나는 고기를 먹는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 참석했다면 혼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자리를 지켰을 것인데 그렇게 되면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이건 내가 원하는 채식 일상이 아니다.
나는 내가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채식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지거나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비건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로 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결론이냐고?
'비건 커뮤니케이터'는 채식, 비건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비건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역할이다. 원래 존재하던 직업은 아니고, 기후캐스터 주희 언니의 조언을 토대로 나를 정의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사람들에게 채소의 맛, 비건의 매력을 전달한다면 관련 제품과 식당의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꼭 비건 식당이 아닌 일반 식당에서의 채식 옵션도 대중화될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다름의 공존'을 더욱 쉽게 만들 것이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타협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도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내가 굳이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은 그중에 하나인 '다름의 공존'에 대해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