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에 대하여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의 시대적 상황과 흑인 민권 운동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인 앨라배마주의 공간적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퓰리처상을 수상하였으며 미국 교과서에 실릴 만큼 영향력 있는 소설로써, 당시 시대적 문제의식인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1931년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은 흑인 청년들이 백인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거짓 주장에 대해 20년간 소송이 진행된 사건으로 이 책의 영감이 되기도 하였으며, 1955년 버스에서 흑인과 백인을 엄격하게 구별하게 앉게 하던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로자 파크스의 버스 보이콧 투쟁, 1955-56년의 흑인으로서는 처음 앨라배마 대학에 등록하려고 했다가 백인들의 반대로 입학을 포기했던 여성인 오서린 루시의 사건은 알아두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다. 경제 대공황으로 인하여 미국 국민들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닥쳤고, 백인과 흑인이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겪으며 백인이 흑인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 대한 이해도 이 책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된다. 아주 뿌리 깊은 정서적, 실제적 흑인차별은 노예제 폐지 후에도 아주 오래 지속되어왔고, 이 책은 그 차별에 대한 한 사람의 용기 있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란다
이 책의 주인공 스카웃(진 루이스)는 6세의 여자아이로서 이 책의 화자이다. 6세에 시작된 이야기가 9세까지 이어지는 성장소설로, 당시의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화자가 남자아이인 것과 매우 차별화되는 책이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캘퍼니아 아줌마와 다정하고 이해심 많으며 포용적인 아빠의 손에 의해 길러진 스카웃은 꽤나 발랄하고 사회적 관습에 매이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나는 여자아이이다. 네 살 위의 젬 오빠 및 친구 딜과 모험을 즐기기도 하고 나이에 맞는 어리고 천진한 아이다움을 가지고 있는 아이지만, 때로는 용기 있게, 때로는 호기심 가득하여, 때로는 진지하고 통찰력 있게 삶을 마주하기도 하는 아이이다. 아빠인 애티커스 핀치는 변호사로서, 가난하고 볼품없고 인정받지 못하고 배운 것도 없는 백인인 밥 유얼 집안의 큰 딸이 흑인 톰 로빈슨에 의해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거짓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변호하며 톰 로빈슨을 보호한다. 이 사건에 대한 애티커스 핀치의 변호로 인하여 핀치 가족과 메이콤 마을에 발생하는 일들에 대한 것이 이 책의 모티프이다. 이 책에서는 흑인차별, 남녀 차별, 혼혈 차별에 대한 이슈들이 등장하고 의도적으로 자신의 편견을 확증하고 타인을 판단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을 다룬다. 이러한 편견은 가치 충돌을 일으키고, 결국은 편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가치는 위조된다. 또한 이 책은 이러한 차별적 환경 속에서 차별과 관계없이 찾아오는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한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 사람들에게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존재를 의미한다. 앵무새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열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총으로 다른 새를 쏘더라도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것. 그것이 지켜지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풍자가 <<앵무새 죽이기>>라는 제목으로 표현된 책이다. 결국 톰 로빈슨이 배심원들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게 되지만, 모두가 안다. 모두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다수결 원칙으로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음에까지 몰고 갈지라도 인간의 양심은 그 모든 것에 대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넌 부 래들리가 왜 집에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달아날 곳이 없기 때문일 거야..."
톰 로빈슨이 자신의 결백을 더 처절하게 고백했어야 했고, 강간을 의심받을 그 현장에서 도망쳐서는 안되었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몸부림이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마음으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도망치고자 해도 달아날 곳이 없는 부 래들리처럼.
누군가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불린다고 해서
모욕이 되는 건 절대 아니야.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차별하는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인간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모욕적인 언행과 처사로 우리가 겪는 일이 있을 때에 내가 그걸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의 못난 정도를 알려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쓰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런 상황에서 상처를 받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암묵적 동의를 수반한 것이라면 그 상처를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사회 전체의 편견에 의한 것이라면, 그 무게를 누군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까 하고. 그러므로 이 글은 한 엄마가 상처받은 자녀에게 위로로 건넬 수 있는 말로 사용되는 정도의 이상적인 의미만 가진 건 아닌가 하고.
책의 말미에 모디 아줌마가 남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책이 남기고자 했던 의미도 이게 아닌가 싶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역시 걸음임에는 틀림없어."
한 여성 작가가 이 책을 통해 걸을 수 있는 한 걸음을 걸었고, 책 속의 한 사람의 변호사가 걸을 수 있는 한 걸음을 걸었다. 로자 파크스도, 오서린 루시도 한 걸음을 걸었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스카웃과 그녀의 오빠 제러미도 언젠가는 그 걸음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한 걸음을 걷게 되는 것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지만 가치있는 움직임이다.
나는 내가 선 이 자리에서 걸어야 할 최선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 보폭의 크기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그 걸음을. 나의 걸음이 누군가의 마음-그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 할지라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움직이는 걸음이라면 그 걸음은 헛되지 않다. 그 걸음이 힘겹고 때로는 모두에게 잊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충분히 그것은 가치가 있다.
The Well-beloved
아무도 가지 않는 길도 걸을 수 있는 용기 있는 내가 되고 싶은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