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놓는 자와 벽을 쌓는 자"_어디서 살 것인가

by Jianna Kwon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유현준 교수님의 책은 두 번째다.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로 인해 일반인들의 건축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훨씬 깊어졌으리라 짐작한다. 나에게 그랬듯이. 지난 1월 초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Falling water)'과 프랑크게리의 '댄싱하우스'를 처음 봤다. 어찌나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던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던 괴테의 말에 동의한다. 그 안에 멜로디와 리듬, 하모니와 스토리가 있다. 골목길 예찬,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자연 및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의 중요성, 삶과 추억이 함께 담기는 공간건축이라는 저자의 글들은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의 골조를 형성했다. 예쁘고 좋아 '보이는' 것을 참아내며 살아야하는 건축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자연스러운 건축이 더 가치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도 스머프 마을과 같은 학교와 마을을 꿈꿔본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에 더욱 절실하게 꿈꾼다. 1학년 때에는 삼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2학년이 되면 연못이 있는 마당에서, 3학년이 되면 빨간색 경사 지붕이 있는 교실 앞마당에서 놀 수 있는 학교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해진다. 마음이 열리는 건축 속에서 살고 싶다. 같은 동에 사는 사람 얼굴 보는 일은 엘리베이터에서 어쩌다 한 번 씩이 전부고 아파트 정원을 걸어도 아는 얼굴 흔히 보기 어려운, 삭막하고 폐쇄적인 고층아파트에 사는 현실과의 괴리다. 아파트 내부는 점점더 휴먼스케일에 맞춰지고 있지만, 건축들은 휴먼스케일을 크게 벗어나는 상태로 지어진다. 권위와 위압감이 도시를 누르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도시의 상황이 이러하니, 자꾸 낮은 건물이 있는 거리를 걷고 싶어지는 것이다. 북촌의 골목길을 좋아한다. 연남동의 공원 옆길을 좋아한다. 차를 가지고 가고 싶지 않은 거리를 좋아한다.


어디서 살아왔나.

성인이 되고 나서 살았던 곳들을 쭈욱 짚어본다. 주인아주머니가 반찬을 맛깔나게 잘하는 하숙집에 살았었다. 집에서 나와 살던 그때의 방 한 칸은 나에게 자유였고 없는 게 없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15평 원룸으로 옮겨 결혼하기 전까지 나의 젊은 날은 그곳에 겹겹이 발렸다. 지상에 차가 없다는 대단지의 신축 아파트에도, 20년은 훌쩍 넘겨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에도, 이름도 화려하고 30층이 넘는 주상복합 아파트에도, 테라스가 딸린 1층 아파트에도 살아봤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지금 넓은 풍경이 보이는 높은 아파트의 높은 층에 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본 집들의 색깔이 다 다르다. 살기 힘들었던 집도 있었고, 유지하기 힘들었던 집도 있었고, 생각했던 꿈같지 않은 집도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 평생 살고 싶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겐 늘 일이층짜리 우리 집과 마당을 갖는 것이 소망이었다. 테라스가 있는 일층집에 살면서 그런 주택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으리라는 걸 짐작하고 마음을 조금 접었지만,(일조시간 부족, 벌레, 식물 가꾸기 등이 내겐 좀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래도 불쑥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럼, 어디서 살 것인가.

자연이 가까운 곳이 좋겠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정원도 괜찮지만, 걸어서 갈만한 곳에 야트막한 산이라도, 개울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낮은 집들이 많은 집에 살고 싶다. 그 낮은 집들 사이의 낮은 집에 살고 싶다. 집에 모든 게 있지 않아 공동으로 사용할 것들이 많은 마을에 살고 싶다. 놀이터가 많고 커뮤니티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마을이라면 좋겠다. 동네서점이 한 두 개쯤 있는 곳에 살고 싶다. 슬리퍼 신고 갈만한 곳에 작은(!) 서점 하나나 둘이 있다면 좋을 거다. 도서관은 좀 큼직한 걸로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겠다. 장보러 가는 마트가 멀지 않아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슬쩍 들러 장을 보면 배달까지 해주는 마트가 있으면 좋겠다. 미술관이나 영화관 등을 이용하기에 너무 멀지 않은 지역이면 좋겠다. 택배를 주문할 때 아저씨들이 배달을 힘들어하지 않을만한 곳이었으면 한다. 남편 출퇴근 시간이 삼사십 분 내외면 좋겠고, 아이들 학교가 지척이라 하교할 때 친구들 우루루 몰고 우리 집 들러서 얼음 동동 띄운 물한잔 들이키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나는 지금도 그런 곳을 찾는다. 모든 바람을 만족시킬 곳은 좀처럼 만나지질 않아 어떤 것은 포기한 채 살 곳을 선택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 <블랙 팬서>에 나오는 한 문장 때문에.


현명한 자는 다리를 놓고,
어리석은 자는 벽을 쌓는다.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벽을 쌓지 않고 다리를 놓는 나로 살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응답해 갈 인생길의 큰 줄기를 잡아준 한 문장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문득 나의 살던 고향이 그리워졌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 한동안 걸으면 짜잔하고 나타나던 나의 어린 시절의 집, 백구가 나를 향해 사정없이 꼬리를 치며 뛰던 마당, 눈이 쌓인 멀고도 너른 풍경, 개구리 소리가 나던 논밭 오솔길,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백색 소녀 동상이 있던 국민학교 교정이 스친다. 가고 싶다. 지금에 비하면 부족한 것 참 많았던 그 시절에,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고 넉넉했던 나날들을 기억한다. 가야겠다. 30년이라는 시간동안 참 많이 변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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