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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OUND> 어라운드 vol. 58 Architecture
어라운드
이번 호 테마는 '건축(Architecture)'이다. 건축에 대한 관심이 내 안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건 3년 전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안토니 가우디>전을 본 후부터였다. 그 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추천도 있었지만, 이 전시를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스페인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 정도로 급격한 욕망을 일으킬 정도로 그의 건축물은 환상적이어서 곧 나의 로망이 되었다. 건축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준 사람이 가우디였다면, 건축과 도시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사람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님이었다. 유현준 교수님과의 북토크가 예정되어 있어 이 매거진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그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는 인터뷰 기사가 인상적이었다. 유현준 교수님의 생각에 동의한다. 나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도시와 사람, 도시와 자연이 모두 화목하게 어우러지는 도시에 살고 싶다. 균형과 조화, 선택과 집중은 모든 선택의 중요한 화두다. 아파트 안의 방들에서 거실 쪽으로 창문을 내는 아파트에 대해 특허를 내놓았다는 글을 읽으며,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는 커다란 창이 달린 우리 집을 상상해보았다. 개방을 원치 않으면 닫고, 평소에는 늘 열어둘 수 있는 창이 많은 집. 바람이 통하듯 마음도 흐를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더욱 살고 싶은 집이다.
박선아 작가의 글을 읽었다. 이름이 낯익었다. 어디서 그녀의 글을 읽었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 <20킬로그램의 삶>이라는 책의 저자라는 게 떠올랐다.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단박에 기억할 수 있었던 그 책의 저자가 박선아 작가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오래된 것들의 삐걱거림과 냄새, 낡아짐이 그리워졌다. 그녀의 사진 속 오래된 것들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그녀의 글은 긴장감으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토닥여주는 것 같은, 혹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빠져나와 느긋하게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나는 낡은 호텔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어.
오래된 호텔에는 주름이 있거든?
유독 아름다운 주름이 진 호텔들이 있는데,
거기에 누워 그 결을 하나씩 세어보는 일을 좋아해.
낡은 호텔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가 된 사람. 오래된 호텔의 주름을 볼 수 있고, 그 주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 결을 세어볼 수 있는 사람.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오래된 것의 주름이란 자고로 유적지 같은 것이나, 위대한 건축물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특별한 장인이 살았던 역사가 아주 깊은 곳이라면 모를까 낡은 호텔 따위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숙박비를 감당할 여력만 된다면 당연히 신식의 번쩍거리는 로비와 커다란 욕조, 그리고 깨끗한 베딩으로 향기까지 날 것 같은 호텔을 선택하지 않겠는가. 낡은 호텔을 찾아다니다니! 선택해서 그런 곳을 간다는 것이 내겐 이상한 일처럼 보였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녀가 보는 그 주름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아름다운 주름이란 어떤 것일까.
"카메라를 갖다 대는 한 쪽 눈가에는 반대편보다 짙은 주름이 질까?" 그녀의 글을 읽으며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흉내내보았다. 셔터를 누르기 전 자연스럽게 한쪽 눈을 감은 채 뷰파인터를 통해 피사체를 주시한다. 한쪽 눈이 찡그려진다. 주름이 깊게 잡힌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양쪽 눈의 주름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수없이 남기는 사진이 쌓이는 속도와 함께 눈가의 주름이 깊어진다. 셔터를 누르는 횟수만큼 주름이 늘어난다. 결국 늙은 호텔도, 카메라를 눈앞에 댄 사람의 한쪽 눈가도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은 주름을 가지게 된다. 세월만이 자연스러움을 보장해주는 주름, 시간의 자취들이 남아 역사가 되는 주름, 그러므로 인생이 담긴 주름, 아름다운 주름.
아직은 내 것이 아닌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한 주름을
미움 없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이 글을 읽으며 난 그녀의 글에 잠겨버렸다. 읽고 또 읽었다. 입을 벌려 읽고, 마음으로 읽고, 생각으로 읽고, 결국엔 새겨두었다. 이 부분을 읽기 전엔 그녀의 생각에 매료되었다면,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녀의 책을 더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나도 아직은 내 것이 아닌 깊지만 우아하고 미소 띤 주름을 '미움 없는'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나이 듦을 미워하지 말아야지.모든 주름들이 아름답도록 살아내야지.
오모테산도 힐즈가 떠올랐다. 오래된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새 건물을 세우는 것에 반대하고, 이전 건물의 한쪽을 남겨두었다. 역사와 추억을 대하는 한 사람의 의지가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그 주위를 걷다가, 남아 있는 오모테산도 힐즈의 옛건물을 보았다. 하얀 건물에 초록 이파리들의 푸르름이 가득했다. 새로운 건물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밀려와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잊히지 않도록 남아있어 준 그 오래됨이 아름다웠다. 한 몸 안에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을 모두 가진 오모테산도 힐즈에서 늙어감을 생각했다. 젊음 안에 있을 때에는 그보다 전에 내 사는 곳을 떠받혔던 나이든 이들을 생각해야지. 나이 들어 갈수록 인생이 낡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젊음들에게 그 오래된 주름으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지. 나이듦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주름에서도 향기는 나니까. 깊은 주름은 누군가에겐 눈 밑에 웅덩이가 고이는 감동을 주니까.